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녕 Oct 18. 2023

패션 챌린저들은 저리 가주세요

올해 들어 유독 "챌린지"란 단어가 싫다. 정확히는 지긋지긋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알던 챌린지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성취하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역경, 고난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노래에 맞춰 춤이나 묘기에 가까운 특정한 동작을 보여주는 컨텐츠를 '000 챌린지'라고 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지만 그래도 요즘 세대들에게는 그정도가 챌린지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챌린지 본연의 의미로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조깅을 하거나 한 달에 한 권은 꼭 책을 읽거나 하는 것처럼 자기 계발을 위해 틈틈히 시간을 활용한다. 이 중에서도 '나 이만큼 했어요' 보이는데만 치중하고 SNS에 인증하기에 바쁜 사람들도 있다. 나도 종종 인스타 스토리에 내 근황을 시간 단위로 올릴 때가 있어서 그 심리를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여러 명이 같이 있는 자리에 혼자 행동을 하면 불편하다.


최근에도 이런 묘한 불편함을 경험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무조건 인증 사진을 찍는다. 단순 친목이라도 서로가 만난 목적이 있을텐데 모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오늘 여기에 왔고 사진을 남겨 놓으며, '하는 척'을 티 내면 끝이다. 정작 나, 상대방은 당신이 이 모임의 순간에 충실하길 바라는데 말이다. 


그들은 나의 불편함을 털어놓아도 이해하지 못했다. 대답조차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말문이 막혔다. 대화가 통할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하고 더이상 이야기 하지 않았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왜 그걸 서녕님이 불편하세요? 제 생각이잖아요."


나는 너를 만나고 있는데, 너는 지금 인스타그램 속 팔로우들과 만나고 있구나. 네 앞에 내 감정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무언가 열중하는 행위는 정사각형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만 있고 실체는 없다. 공감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겉으로만 하는 척 하고 실체는 없는 사람, 바로 눈 앞의 타인의 감정은 전혀 보지 않는 사람, 앞으로는 이런 패션 챌린저들을 구별하고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하여자 → 상여자로 거듭나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