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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쁘다 Feb 28. 2018

결혼 필수 관문

부딪히거나 피하거나 포기하거나 배우거나



예민하고 민감한 성향의 여자가 아내로, 아내에서 엄마가 되어가는 성장 에세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도움이 되었던 책이나 강연, 글들도 공유해봅니다.



 나는 다소 예민한 편이다. 감정변화에 매우 민감하고 주변의 미묘한 공기의 흐름도 곧잘 느껴 사람이 많은 공간이나 불편한 자리에 있으면 체력이 쉽게 고갈되곤 한다. 최근에 유행처럼 떠돌던 highly sensitive people, 혼자가 편한 내향적인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책과 강연이 많이 나왔는데, 그 내용을 보아 하니 나와 남편이 그런 사람이더라.(그래서 그런지 서로를 잘 이해해주고 조심해주는 편이다.) 내가 이상한건 아닌가 생각했던 부분들이 나를 대신하여 설명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주변에서 나를 예민하다고 평가하곤 해 가끔은 그 말이 너무 부정적으로 느껴졌었는데 이제는 섬세한 혹은 민감한 것이라고 정정해주며 나의 성향을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친한 친구들 중에서 뭐든 조금 늦은 편이다. 그렇다보니 결혼과 임신도 친구들보다 늦어졌다. 오히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을 사람처럼 다니곤 했다.  그들의 세계는 나와는 다른 세계라고 생각하며 치부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떤 친구는 그런 내게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너도 한번 때가 되어 봐~하는 친구도 있었다. 늘 현재의 기분에 충실했던 나는 그들의 고충이나 걱정을 전혀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했다니. 다들 축하는 하지만 걱정스럽고 의아해하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어떤 사람은 나같은 이가 결혼을 한다는 것이 상대에게 미안하지 않냐는 말도 안되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나는 결혼이라는 것에 부적합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얽매이고 고립되거나 간섭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관습에 반항하는 습성으로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을 지닌 탓에 지난 연인들 또는 주변인들을 힘들게 했다하니 말이다. 살림은 고사하고 정신병리적 소양을 가지고 있는 나같은 사람은 일반적인 역활은 불가능해 보였던 걸까. 막말을 하던 사람의 말을 뒤로 하고 이런 나를 발견해주고 받아주는 남자친구에게 정말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나 고맙기도 했다. 나도 할 수 있다란 생각으로 남자친구의 믿음직한 손을 지지대삼아 한걸음씩 나아갔다. 결혼식장에서는 작은 공황발작에 놀라기도 했지만 수없이 예상했던 터라 잘 다독이고 넘어갔다.



 믿고 의지한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었음을 그로써 부부가 되었음을 하객들 앞에서 선언하고 나니 세상에 나와 그. 둘만의 세상에 들어 선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시끌벅적한 뒷풀이를 마치고 설렘 가득한 마음을 안고 부랴부랴 신혼여행길에 올랐다. 아름다운 프라하 거리에서 세상 행복을 느끼던 우리는 두번째 여행지인 바르셀로나를 이동중에 첫 부부싸움을 했다. 신혼여행가서 이혼하고 온다더니 우리가 정말 그럴 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리석고 무지하고 나약할 수 없지만 당시에는 정말 바르셀로나 호텔 옥상에 올라 뛰쳐내릴 생각을 했었다. 아니면 당장 한국 갈 티켓을 사서 혼자 돌아갈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는 바르셀로나 3박 4일 중에 이틀을 허비했다. 그 아름다운 도시의 호텔방에서 내내 분노하고 분개하고 울기만 했다. 남편은 정말 단호박같은 사람이었다. 연애 때도 익히 알았지만 정도가 정말 최고였다. 우리는 서로 이 결혼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모습에 실망한 나머지 앞으로 함께 할 수 없을거라 예상했다. 한국에 돌아가 모든 걸 정리하자고 했고 서로에게 남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감정이 조금 사그라지고 나니 남은 하루의 여행이 아까웠다. 나는 남은 시간이라도 바르셀로나를 경험하고 싶어 내키지 않더라도 사이좋게 지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바이바이 하는 걸로. 그렇게 몇 시간을 진이 빠지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 우리는 정말 우여곡절 끝에 화해를 했다. 그러곤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도시 곳곳을 발에 쥐가 나도록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 우리는 수척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표정으로나마 최고의 날인양 마지막 날을 누리고 있었다.



 이렇게 막상 결혼이라는 세계에 들어와 상대방과 실질적으로 부딪히고 나니 비로소 주변의 부부들 생활에 관심이 갔다. 잘 살고 있는 건지 버티고 있는 건지 모를 부부들의 이면이 너무나 궁금했다. 위기의 순간마다 남들은 다들 잘 헤쳐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리 견디기 힘들까, 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결혼 생활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런 엄청난 변화를 어떻게 극복하고 나아가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스스로 위태롭다고 느낄 때마다 책, 강연 그리고 비전문가들의 전문적인? 이야기들을 찾아보는 편이다. 그 중 여기 브런치에서도 많은 글을 찾아 읽었었는데, 그때는 왜이리 다들 잘 극복하고 완만하기만 한 글들만 보였는지 세상 행복하고 완전하고 사랑이 넘치는 글들에 우울감이 더 커지는 기분이었다. 반면 사람들의 푸념과 사담이 오고가는 카페같은 데서 찾은 글에는 사랑과 전쟁을 넘나드는 믿을 수 없는 가정사에 놀라기도 했다.


 고난이라면 고난이었던 어린시절, 사춘기, 성인기를 잘 버티고 견디어 나름의 행복을 맛보고 만들어 가던 중. 나는 제 2의 인생이라면 인생인 결혼생활을 통해 완전히, 또 다르게 깊어진 관계로 정성스레 쌓아온 삶의 방향이 다시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


 과거를 통해 나름 잘 배웠다고 생각한 나와 나의 남편이었지만, 부부라면 겪게 되는 관문처럼 빅뱅과 같은 충돌을 피할 수는 없었나보다. 오히려 충돌이 생길 때마다 부실한 우리의 내면은 종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바닥으로 치닫았고 짐승처럼 격분하고 흥분했다.


 완전한 나의 영혼의 동반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받은 실망은 황홀한 기대 만큼이나 상대적으로 컷다. 물론 상대방도 그랬을테다. 둘 모두 불안한 내면에 회피적이고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 다툼도 다툼이지만 다툼 후 화해의 기간이 꽤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대부분 변덕스럽고 불편한 공기 흐름을 견디지 못 하는 내가 먼저 말을 걸거나 편지를 쓰거나 장문의 카톡을 남기긴 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기분은 생각지 않고 내 방식대로만 풀려했던 것 같다. 아마 그게 옳은 거라고 내가 맞는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더구나 나는 문제였던 부분들을 꼭 풀고 넘어가야 하는 고질적인 아집이 있었다. 그는 그런 내가 더욱이 불편 했을 것이다. 화성남자, 금성여자 나오는 남자의 동굴 이론을 익히 알고 있었으나 실상 상대방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에 대한 답답함이 커져가기도 했다. 결혼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는 마음이 맞지 않으면 그 관계를 끊어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익숙한 두 남녀. 부끄럽게도 우리는 다툴 때마다, 문제가 생길때마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마다, 헤어짐 또는 이혼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중요한건 우리는 평소에 너무나 다정한 관계라는 것이다. 서로의 부모님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무단히 애쓰고 노력하는 편이다. 애정표현도 곧잘하고 서로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며, 얇고 깊은 대화도 잘 통하고, 그때 그때의 가치관, 생각을 공유할 줄 알며, 기념일도 잘 챙겨주고, 서로에게 크고 작은 선물도 할 줄 알며, 서로가 불편해 하는 부분은 알아서 주의할 줄 알고, 늘 응원하며 지지하고 존중하는 부부, 연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라는 거다.


 그런데 다툴때면 정말 그의 조금의 에너지도 닿고 싶지 않을 만큼의 실망감에 피하고 싶고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때에 우리는 지옥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 부모님 세대처럼 되고 싶지 않아 다툼이 쌓일수록 깨끗이 갈라설 것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쉽게, 하지만 결연하게 내뱉곤 했다. 우리의 다툼은 신혼여행에서부터 약 8개월가량 한달에 한번 꼴로 끊이지 않았고 한번 시작되면 화해하는 데까지 길게는 2주, 짧게는 4~5일, 대략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재미있는건 대부분이 같은 이유였다.


 그런 다툼 끝에 느낀 건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부딪힘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었다. 초반에 우리는 어떻게든 다툼을 피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찰떡궁합이더라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구나 나와 남편처럼 예민하고 민감하고 상처가 많은 사람들의 관계에서 다툼은 불가피하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왜 싸우는지, 왜 이렇게 안 맞는지가 아니었다. 중요한건 어떻게 다투고, 어떻게 화해할 것이며 이를 계기로 어떻게 한 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이다. 부모와의 관계부터 잘 배우지 못한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다시 시작해야했다.


 여러번의 다툼 끝에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긍정적 희망이 보인 다툼은 작년 여름 한창 장마가 시작되는 철이었다. 결혼 한지는 8개월이 지난 지점이었다. 한주의 끝인 불금. 맛나는 외식을 하기 위해 자리 잡은 식당 안에서 우리는 또 다시 서로에게 엊나가는 의견을 주고 받았다. 마음이 상한 남편은 견디지 못하고 식당에서 나를 버려 두고 먼저 집으로 나섰다. 나도 더이상 함께 공존할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가 간단한 메모를 남기고 다음날 짐을 싸 집을 나갔다. 남편에게 동굴로 들어갈 시간을 주면서 나 역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려 한 것이다. 나는 우선 친구네 집으로 가 실컷 놀고 보름이고 한달이고 지낼 수 있는 단기방을 알아보고 있었다. 하룻밤이 지났다. 비가 억세게도 내리던 일요일 아침. 남편은 거의 처음으로 먼저 내게 걱정의 메세지를 남겼다. 늦은 저녁에 집에 돌아와보니 남편은 전과 달리 진심어린 내용이 담긴 빽빽한 반성문같은 편지를 건네고 용서를 구했다. 그의 그런 모습에 나도 그만 마음이 녹아 그간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진심으로 남편에게 감사했다. 먼저 손내밀어주고 서로의 자잘못을 시인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전보다 한단계 나아간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의 부실한 내면과 아집, 고집을 인정했다. 서로 사과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감사해했다. 그러더니 그간의 분노와 미움 실망감이 모두 녹아버렸다. 그 뒤로 전에 없던 편안한 행복을 만끽했다. 우리가 바라던대로 아이 없이도 평생 재미있고 즐겁게 살 궁리에 행복했던 나날이었다. 이대로 쭈욱 신혼의 행복이 유지되길 바라던 중. 나와 남편의 오롯한 아가가 다가 온 것이다. 이것이 정말 인연인 것일까. 아가를 우리의 인연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두려움은 잠시 너무나 신기하기도 하고 서로가 건강하였구나며 기뻐하고 감사했다. 두 사람의 서툰 관계 속에서 또 다른 자아가 합류하게 된다니 정말 설레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후에 다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가아끔 실랑이를 하거나 다투기도 하다. 하지만 전처럼 서로를 비난하거나 윽박지르거나 오랜 시간을 끌지는 않는다. 잠시 서로에게 과열되었다고 느낄 때에는 잠시 거리를 두며 생각할 시간을 가져본다. 그러면 오래지 않아 스스로의 부끄러운 점을 깨닫게 되고 격한 감정이 충분히 잠잠해질 쯔음 적당한 거리에서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다툼과 화해에도 엄청난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던 나날이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다양한 상황에 의해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현명하게 다툴수만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가 없겠다 생각한다.








** 결혼 생활이 힘들 때 너무나도 도움이 되던 포스트!

http://m.post.naver.com/my/series/detail.nhn?seriesNo=200582&memberNo=7769417

: 남편과의 갈등은 이 포스트로 거의 극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녀의 특성을 심리학적으로 풀어내고 유머러스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혔던 글. 부부상담을 가기 전 여기 글로 먼저 공부해보고 가도 좋겠다. 부부가 함께 본다면 너무나도 도움이 될 부부건강백서..!



** 내향적인 사람들에 관한 책

: 내향적이고 민감한 사람들이 이상하고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주는 두 권의 책. 아니 오히려 좋기까지 하다. 가볍게 풀어낸 글이라 쉽게 읽힌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해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659498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94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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