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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쁘다 Feb 02. 2018

누군가와 인연이 되기 전

진짜 나를 알기


예민하고 민감한 성향의 여자가 아내로, 아내에서 엄마가 되어가는 성장 에세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도움이 되었던 책이나 강연, 글들도 공유해봅니다.



 신랑(이하 남편)의 객관적 시선을 빌리자면 나는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그렇다.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유희자라고 해야 하나. 옷과 화장,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주말이 되면 술 한잔 하며 밤이 새도록 놀기도 하고 결혼 전에는 시끄러운 클럽도 즐겨 다니며 일이 힘들 때는 가끔 담배를 피기도 한다. 결혼을 한다는 사실 자체도 주변 사람들에게 놀랄 뉴스거리가 되는 나의 삶과 일상은 아내 혹은 엄마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좀 멀다.


 

 사춘기 이후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엄마는 장녀에 늘 따로 지냈다는 미안함이 있었는지 나는 아빠 다음으로 손님처럼 대접받는 사람이었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며 자랐다는 말은 나의 이야기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딱히 달라진 건 없어 세탁기 돌리는 것도 서른이 넘어서 동생이 알려주어 비로소 작동법을 배우게 되었다.


 새삼 이런 나를 아내로 맞이해 준 남편에게 매우 고맙기도 하다. 연애 당시 우리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틀에 대한 회의적인 이야기를 자주 주고 받았다. 프러포즈 당시 남편은 겁 많고 거부반응 많은 내게 결혼식은 부모님의 적당한 요구에 응하며 나머지는 서로 부담 갖지 말고 동거하듯 즐겁게 살아보자고 했다. 다행히 둘 모두 부모님의 의견을 잘 받들지 않는 성향이라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예단, 예물이나 기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일절 생략했다. 사진도 아는 동생에게 부탁하여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가볍게 커플링만 맞췄다. 또한 일이 년이 지나 진짜 서로를 받아들였을 때 혼인신고를 하기로 하며 우리는 연애 일 년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엄마는 나의 연애에 하등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내가 하는 것은 무엇이 되었든 마음에 안 들고 못마땅했던 엄마는 당장 추석 때 남자 친구가 인사를 드리겠다고 한 말도 흘려 들었었다. 그러면서 내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날라리에 양아치 취급을 하며 자신이 아는 어디 누구의 집도 있고, 자기 가게도 있고, 재산도 있는 누구누구와 선을 보라 하기도 했다. 엄마와 나는 사소한 부분이든 큰 부분이든 소통이 안 되어 서로 다른 이야기만 해댔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진절머리가 나기도 해 어서 빨리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피가 거꾸로 쏟을 만큼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당시 좋은 사람을 만나려는 일념으로 혼자만의 훈련을 하던 중이었다. 남편을 만나기 전 실상 남자들의 성에 관련한 본성을 조금은 깨달아 마음이 열리는 사람에게 몸을 열겠노라고 다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실제로 만나고 싶은 사람의 특성을 쭈욱 적어나가 보기도 했는데, 그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 마음을 열지 않았다. 외로움이 컸다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고등학생 때부터 남편을 만나기 전전까지 연애 공백이 없었던 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더욱이 나의 삶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듯 의지하며 살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지옥 같은 집에서 독과 같은 부모님과 함께 지내면서 오히려 앞으로 남은 반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정말 잘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대처럼 외로워서, 집을 나가고 싶어서, 현실에 도망치고 싶어서 하는 결혼이 아니라, 비록 부족하더라도 서로 배우고 나아가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렇게 철저하게 가려서 만나든, 계획없이 만나든 어차피 미래는 알 수 없으니 나는 보다 나의 바람에 집중하기로 했다.


 남편을 만나기 전 마지막이었던 지독한 연애를 마치고 사람을 만나는게 더욱 무서워졌다. 만나고 싶은 남자의 조건을 넘치게 적어놓은 판국에 "뿌리있는 남자일 것"이라는 아주 중요한 항목을 리스트에 추가하였다. 마지막 연애 덕분에 일 년 하고도 육 개월가량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연애 없는 오롯한 혼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부모님과의 대치만 빼면 너무나 충만한 시간으로 긍정의 마음이 하루하루 샘솟았다. 충분히 혼자서도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날들이었다. 물론 주변 친구들이 모두 결혼하여 외롭기도 하고 주말이면 너무 심심하기도 했었지만 타의든 자의든 주어진 나만의 시간은 진짜 나를 알아가고 받아들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누군가 결혼은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때"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충만한 어느 날. 나의 현재 동반자가 된 남편을 소개받게 된 것이다.


 현재 나의 남편이지 그때의 소개남은 내가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부류의 사람이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무언가 매우 조심스럽고 사근사근한 부드러운 느낌의 사람 좋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전에는 끌리지 않았을 모습에 묘하게도 마음이 갔다. 두 번째 만남도, 세 번째 만남도. 나는 그에게 계속 호감이 갔다. 내가 바라보고 해석한 세상이 그의 입에서 나올 적마다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의 생각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의 대화는 깊었고 이 사람이라면 괜찮겠다,라고 믿고 나아갔다.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던 "내 눈이 보이지 않아도 만나고픈 사람"이었다. 일기장에는 이런 사람이 나타나주어 나를 발견해주어 감사하는 일기가 쌓여갔다. 나의 바람을 굳건히 믿고 나아갈 수 있음에 더 확신을 했다.


 그렇게 호감 가던 소개남은 남자 친구가 되었고, 신의와 믿음, 존경을 바탕으로 한 남편이 되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실로 녹록지 않음을, 꿈꾸던 행복한 관계를 갖기엔 아직 시기상조였다는 것을 삼 개월의 결혼 준비 끝의 달콤하기만 했어야 하는 신혼여행에서 확실히 깨달았다.







 *엄마와의 관계가 극에 달할 때 내게 위안을 주던 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857604

: 개인적으로 심리적, 정서적 감정이 불안하고 힘이 들 때 많은 위안을 받았다. 특히 엄마와의 부정적 대립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하였다. 부모와의 갈등이나 다른 기타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 읽어보면 좋을 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891984

: 솔로였을 시절 이 책을 보고 앞으로 더욱 사람을 신중하게 만나야겠다는 큰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리게 되었다. 노인들의 삶을 재조명해보면서 인생에서 결국 무엇이 중한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752101

: 위 책의 후편이라고 생각하면 좋은데 중첩되는 내용들이 많고 결혼, 육아, 이혼에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아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솔로일 때 사서 손 놓고 있다 결혼 후에 술술 잘 읽혔다.) 결혼을 전제로 누군가를 진지하게 만나고 있을 때 읽어보면 괜찮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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