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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쁘다 Jan 22. 2018

한없이 약하고 부실한

그 여자의 뿌리


예민하고 민감한 성향의 여자가 아내로, 아내에서 엄마가 되어가는 성장 에세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도움이 되었던 책이나 강연, 글들도 공유해봅니다.


 엄마와 나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이다. 어려서부터 엄마의 따뜻한 품에 있었던 느낌은 정말이지 전혀 없다고 해야 하나. 아빠는 특히 외부인 같은 존재였다. 아빠라는 존재만 존재했을 뿐 무언가 일상에서 함께 밥을 먹었던가 하는 이미지는 기억에 없다. 어릴 적 사진 속에서 찍힌 몇 번의 여행에서나마 엄마 아빠와의 추억이 있었음을 만족한다. 잘 기억나지 않는 아가일 적에는 외가 쪽에서 지내며 외삼촌이 나의 똥기저귀를 갈아입히고 아들만 좋아하는 외할머니의 폭풍 잔소리와 꾸중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 기억에 또렷한 초등학교 시절에는 북적이지만 늘 바빴던 친가 쪽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과 함께 살았다. 물론 그 긴 세월 동안 엄마와 동생들과 지냈던 기억도 있지만 나는 부모님의 다양한 사정에 의해 기억나지 않은 아가 적부터 성장기까지 마치 떠돌이처럼 친가와 외가, 부모님께 오고 가며 자랐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 쾌활하고 발랄하게 잘 컸다고 생각했다. 늘 혼자이기는 했지만 워낙 혼자놀기도 좋아하고 바깥에 나가면 동네 친구들과 함께 해가 지도록 놀곤 했기에 딱히 외롭다는 느낌은 없었다. 비록 주말이면 할머니가 해주는 밥이 싫어 하루 종일 밖에서 굶고 다니긴 했어도, 영양실조에 걸려 쓰러져 방 한구석에서 링거를 꽂으며 약을 달고 살았어도, 학교에서 받은 성적표가 가가가양가 엉망진창이었어도, 생리인 줄 도 모르고 큰 병이 난 줄 알고 속앓이 하며 휴지를 대고 다녔어도, 먼 사촌 오빠나 친척, 슈퍼집 아들내미의 어두운 손길 속에도 혼자서 꿋꿋이 잘 견디고 성장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첫 손주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께만은 사랑을 듬뿍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의 내면이 부실하다고 느껴진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사춘기부터 쭈욱 크고 작은 방황을 일삼았는데 그 또한 그저 철부지 시절이면 모두가 겪는 통과 의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줄 알았던 30대 어느 날. 삶에 가볍게 부딪히는 무엇에도 산산이 조각나는 나의 정신이 또렷이 느껴졌다. 인지하지 못했던 내면의 깊숙한 원망은 내 생각과는 달리 엄마와 대면할수록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엄마에게 유독 더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게 대한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나를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곤 했다. 딱히 잘 하는 것도 없었지만 엄마에게 나는 늘 부족한 아이였나보다. 초등학교 시절 한 번은 "엄마는 나의 진짜 엄마가 아니다" 란 이야기를 일기장에 쓴 걸 들켜 개머리판에 호되게 맞기도 했다. 맞으면서도 '이 사람은 역시 진짜 엄마가 아니구나' 했다.



 엄마와 유독 부딪히기 시작한 건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야 할 내가 뒤늦은 공부를 시작하기 할 때부터였다. 아빠의 사업이 또다시 무너져 돈의 혈안이 되어 있던 엄마는 생활비 한번 제대로 보태지 못하는 나를, 나의 삶을 질타하고 비난했다. 단 한 번의 응원이나 지지는 커녕 나만 보면 터져 나오는 한숨과 잔소리로 살던 엄마는 사실 그간의 세월 동안 마음 편할 날이 없었으리라.



 성인이 되어 그나마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한 여자로서 그녀의 삶이 매우 안타깝고 가엾게 느껴졌다. 숱한 날들 동안 자식 때문에, 우리 때문에 살아왔다던 엄마는 이제는 자식에게 마저 대접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엄마를 불쌍히 여기면서도 서로의 부딪힘이 극에 다를 때면 내게 모진 말을 하는 엄마에게 비슷한 말로 쏘아붙였고, 마음속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차마 꺼내지 못할 욕지거리를 해대며, 일기장에 못다한 말을 쏟아 부었다. 점점 엄마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했다. 그때 나는 서른을 지나 중반으로 가고 있었으나 엄마 앞에서 만큼은 세 살, 어린 아이가 되었다.



 이 모든 총제적 문제의 뿌리에는 분명하고도 본질적인 원인이 있는데 그건 바로 아빠라고 단언한다. 아빠 즉 엄마의 남편. 부부. 남녀. “두 사람의 관계”말이다. 두 분은 60살이 넘어서는 지금까지 서로가 맞지 않아 으르렁대거나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둘의 신뢰는 대지 밑바닥을 넘어서 지구 핵에 녹아들었고, 존중은 눈을 박박 씻어 심안으로 보더라도 찾을 수가 없으며, 사랑은 자식이 있다는 전제하에 생겨난 그 순간 번갯불과 함께 이미 벌써 사라졌을 테다. 두 분은 아마 자식이란 낳아 놓으면 알아서들 잘 크는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의 [더 이상 행복 없음]은 그들의 자식인 나, 동생들에게까지 독처럼 퍼져 삶의 위기의 순간순간 우리를 좀 먹고 있다.



 세상이 아름다웠을 순간에도 나는 늘 다짐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 자식에게 발목 매여 내 영혼을 죽은 듯 살지 않으리. 순간의 사랑질로 나나 동생 같은 피해자를 만들지 않으리. 행여나 자식이 있든 없든 신뢰 없는 관계, 존중 없는 연인, 사랑 없는 부부, 행복하지 않은 가정은 뒤도 보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나리. 그렇게 생각도 책임도 신의도 없는 관계, 연인, 부부, 부모는 되지도 맺지도 않으리.



 뉴스거리를 꺼내보지 않아도 집안 곳곳에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다. 톨스토이가 그랬던가. 가정의 행복은 모두 비슷하나 불행은 가지각색이라고..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을 직면했을 때 부부라는 큰 기둥이 서로를 놓지 않고 책임감 있게 나아갈 수 있다면. 그랬더라면 그의 자식들에게 노력하는 모습이나마 보여주어 사랑이라는 것, 신뢰라는 것, 책임이라는 것, 관계에서 나오는 행복감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해줬을 텐데... 하는 생각이 나와 같은 상처인 줄 모르고 상처 입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게 아려온다.



 그런 내가 과연 엄마가 된다면 잘 해낼 것인가. 아니 정말 정말 정말 자신이 없다. 현실을 알아서도 나를 알아서도 더욱이 자신이 없다. 희미한 두 개의 보라색 선이 보다 진하게 나왔던 두 번째 밤. 늘 완벽하기만 한 모습을 보여왔던 신랑은 내게 망설이며 조심스럽게 사실 자신은 자존감이 한없이 낮은 사람이노라 고백했다. 그래서 아기가 생겼다는 소식에 마냥 기뻐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한 자신이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에 순간 너무 놀라 당황하고 두려웠다고 한다. 그렇게 나와 같은 두려움에 빠졌던 그가, 그러하니 더 힘을 내어 책임을 다해보겠다고 한다. 앞으로 10개월이란 시간이 있으니 우리 자신부터 추스르고 한 단계 한 단계 공부하고 같이 나아가자고 한다. 나는 신랑의 진심 어린 이야기에 마음이 놓였다.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 정말 정말 정말 할 수 없는 일을 그와 함께라면 왠지 할 수도 있겠다는 힘이 생긴 기분이었다. 이제는 다 자라 팔 안에 담을 수는 없지만 단단하고 믿음직하게 굳은 신랑의 등을 따뜻이 감싸 보듬아주었다. 우리 모두가 결핍이 있음을 다시 한번 절절히 느끼던 날 밤. 우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성장과 배움을 선사해 줄 작은 씨앗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씨앗이 엄마가 될 나의 뱃속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려 그 어떤 풍파에도 견고히 자랄 수 있도록 양질의 토양과 햇빛 물 바람을 선사하는 부모가 되어 보자고 말이다.






*결혼을 앞둔 혹은 다툼이 끊이질 않는 부부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892868

:다소 제목이 자극적이지만, 내용만큼은 정말 중요한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방안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꾼다면 미리미리 공부해보자.




*임신 전, 후의 부모들이 보면 좋을 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953899

: 다큐로 만든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책. 이 책을 봄으로써 한 생명의 탄생이 왜 그렇게까지 중요한가에 대한 물음이 과학적으로 충분한 대답을 들은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성인이라면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고, 예비 부모라면 특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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