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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쁘다 Jan 16. 2018

격정적 만남

이거슨 생생한 꿈이어라


예민하고 민감한 성향의 여자가 아내로, 아내에서 엄마가 되어가는 성장 에세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도움이 되었던 책이나 강연, 글들도 공유해봅니다.



 정확히 가을이었다.

 콧등에서 발등으로 가을이 전해질 무렵 그리고 여기 브런치에 가볍게 글을 올리고 난 후. 내 몸은 작은 변화를 감지했는지 대기의 작은 일렁임에도 살갗이 쭈뼛하게 섰다. 잦은 두통과 메스꺼움 그리고 식은땀이 종종 찾아오는 것이 나는 그저 환절기 알러지려니, 몸살이려니 하며 생전 안 먹던 알러지약을 며칠동안 복용했다. 일이 끝나고 스트레스 게이지가 가득 차 오를 땐 여느때처럼 담배를 피기도 하고 주말이 시작되면 신나게 알코올을 들이마시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아주 깊디깊은 곳에서 내가 혹시..?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결혼한지 대략 10개월이 된 시점이었다.


 일주일이 지나고도 몸이 호전되지 않아 퇴근길에 임신테스트기를 하나 샀다. 맘껏 양껏 술, 담배를 하기 위해.. 다행이도 놀랄 일은 없었다. 다음날엔 생리를 알리듯 핑크빛 핏물이 나와 그러면 그렇지, 하며 예민한 나를 질책했지만 생리는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또 다시 몸살기가 계속되던 일주일 후, 이번엔 세 개의 임신테스트기를 사고 급한 마음에 퇴근길 역 화장실로 향했다.

 

 심장이 덜컥했다. 그동안 수많은 문장에서 보아왔던 희미한 두줄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실감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눈을 가늘게 떠보아도 두 번째의 선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다. 오류가 있겠지..했지만 희미한 선이 머리 속에 선명히 새겨지려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떨리는 심장과 함께 구역질, 오한이 찾아왔다. 나는 아직 전혀 네버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는데.. 내게 아기라니.. 이건 그냥 꿈이었다. 내게는 너무나 무서운 꿈. 제 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나인데, 덜컥 겁이 나서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여전히 전혀 네버 굳세지 못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뭔가 착오가 있겠지.. 내심 그 테스트기계 따위 0.2% 확률의 불량으로 치부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대충 저녁을 준비했다. 곧이어 신랑도 퇴근을 하고 들어왔다. 신랑에게는 아직 뜯지 않은 두 개의 테스트기를 확실하게 확인 후 얘기해주고 싶어 그저 길었던 하루가 피로했노라고 말하던 찰나였다. 신랑은 축 처진 몸으로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오늘은 자신의 몸이 너무 힘들다며, 본인도 환절기 알러지가 온 거 같다며, 뭘 잘못 먹었는지 메스껍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온몸을 소파에 내동댕이 치듯 쓰러진 신랑을 보며 나는 그만 웃음이 빵 터져버리고 말았다. 착오겠거니 불량이겠거니 하는 나의 실낱같던 희망이 유쾌하게 날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빵 터진 내게 이유를 묻는 신랑에게 보라색 선이 수줍게 새겨진 테스트기를 건넸다.

이게 모야..? 하는 신랑에게 담담한 척, 불량일 수 있어. 내일 아침 다시 확인해볼게, 했다.


 신랑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안이 벙벙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표정으로 주방을 서성였다. 아,하기도 하고 어,하기도 하며 초조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나는 어쩐일인지 스스로도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음에도 신랑의 반응이 못내 서운하게 느껴졌다. 고단했던 하루에 재빨리 저녁을 마치고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웠지만 쉽사리 잠이 오진 않았다. 평소 머리만 대면 3초안에 잠드는 신랑도 잠이 오지 않았는지 몇번을 뒤척였다. 몇분의 침묵 끝에 신랑은 내 손을 꼭 잡고 우리의 현재 생활도 너무 좋다고 나의 어떠한 선택과 의견을 존중하겠다며,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나는 깜깜한 천장을 바라보며 애써 응,이라고 답했지만 신랑의 그 말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연애 때부터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둘 모두 그다지 행복하기만 한 어린 시절을 겪었던 건 아니었기에 제대로 된 부부가 되기도 전에 부모가 된 수많은 사람들을 질타하고 비난하기 바빴다. 가뜩이나 이 세상에 인구도 많은데 또 하나의 희생자, 피해자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남녀의 쾌락의 결과요, 자기들 삶의 이기적인 욕심이 더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랑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되어 더욱 결혼을 결심하기도 했다. 게다가 나는 생리불순으로 엄청난 생리통과 생리전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아기를 간절히 원해도 안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럼에도 연애 때나 결혼 후에나 우리는 나름, 매우 조심히, 사랑을 나누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나름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동이었다는 것을 다음날 새벽같이 눈을 떠 두 번째 테스트기에서 발견한 두줄을 확인하며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진정으로 무지했고 어리석었고 또 오만했다는 것을..







*부모가 되기 전에 보면 좋을 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432939

: 유대인들의 삶의 지침서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부모를 떠나 성인이라면 모두가 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을 보면서 더욱이 괜찮은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책임이 커졌고 한편으론 나는 못하겠다란 부담감도 들었다. 가정의 중요성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책.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되는 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962059

: 신랑과 함께 떨어진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여러 책과 강연을 듣던 중 즐겨 듣던 팟케스트[젊은 정신과 의사들의 정신과 이야기 [뇌부자들]]에서 추천받은 책으로 역시 정신과 의사가 쓴 것이라 실질적 행동 지침들이 있어 실행해보며 읽기가 좋았다. 구체적 행동방침을 제시해 주고 있어 도움이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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