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되지 않기]
뭐라도 남기고 싶어 메모장을 열었다 닫았다.
노트를 폈다 덮었다. 펜을 들었다 놨다.
사실 머릿속은 텅 비어있어 좀처럼 남길 것이 없다.
깊은 사유는 지금의 내겐 좀 지나친 사치이다.
엄마가 된 나는 분명 주체는 나인데 태양을 바라보는 꽃처럼 아기바라기가 되었다.
방황한답시고 이 생각 저 생각을 마구 담아대던 메모장은 어느 시점부터 멈춰있다. 그때가 즐거웠겠거니 지금의 내가 상상해본다. 웬일인지 힘들었던 시절은 희미하고 자유롭게 부유하던 기억만이 파스텔 빛 꿈결처럼 남아있다.
역할이 생겼다는 건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반납했다는 말과 같다. 이렇게 나를 잃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즈음이면 벌써 한 달이 한 계절이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매뉴얼대로 흘러가는 일상은 해가 더해갈수록 가속이 붙어 가끔은 따라가기가 벅차기도 하다. 분명 행복은 한데 허전한 구석을 외면할 수가 없더라. 엄마도 사람인지라. 자꾸만 자유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