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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쁘다 Oct 27. 2019

세상에 드러난 엄마의 일상

[82년 엄마 김지영]



영화를 보았다.

몇 년 전부터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로 꽂히던 책이 영화로 개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연스레 다녀왔다. 소설책은 작년쯤. 그러니까 아기가 태어난 지 6,7개월 후였던 거 같다. 그날도 어김없이 서점에 들러 이 책 저 책 둘러보던 중. 보고 싶지 않지만 자꾸만 눈에 밟히던 그 책을 읽고 말았다. 누군가 내 삶을 엿보고 쓴 것 같았던 그 책은 이상하게도 머릿속 깊게 남겨 있지가 않았다. 서점에서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며 보았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일 년 후 접한 영화는 내가 겪은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생활을 또 한 번 훔쳐보기를 당한 듯한 기분이 들게끔 했다.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었지만 영화 내내 가슴이 먹먹했고 불현듯 나를 들쑤셔 눈물 콧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는 담담했다. 영화 속 정유미의 대사에서처럼 지금 실제의 내 삶은 어차피 “한 다리 건너 남의 일”인 모. 두. 내. 몫.이니 말이다.


나는 종종 멍해진다.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아니 아무런 생각 조차 하고 싶지 않아 강제 셔터가 내려지곤 한다.

그럼에도 행복해야 한다. 아니 행복하다. 어여쁜 아기가 말 그대로 무럭무럭 잘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음에 말이다. 그런데 때때로 묵직한 우울감이 나를 짓누른다. 그래. 그동안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지만 정말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영화는 나의 무의식과 의식의 전체에서 누르고 눌러져 있던 감정과 생각과 기분들을 들춰냈다.

나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엄마가 되었다. 일이 년 쉰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못 해본 거 해봐야지,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모두 정리했지만 출산 육아는 “쉬면서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그런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커리어는 한순간에 소멸되었고 모아돈 돈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식구가 더 늘었으니 하고 싶을 걸 할 돈도 시간도 여유치 않았다. 젊고 창창한 나이에 나름 전문적인 일을 하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집안에서 전공분야도 아닌 도돌이표 같은 무일푼 노동을 매일같이 한다는 거 가혹하기까지 하다. 과연 누가 선뜻하려고 할 것인가..?


나 역시 김지영처럼 무엇이라도 하고파 짧은 시간 대 일거리를 찾아보기도 하고, 출산으로 멈췄던 대학원을 한 학기 다녀보기도 하고, 짧은 글이라도 쓰려고 하고, 놓고 있던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기타 다른 창작 활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육아 살림으로 안 하던 육체노동을 위해 체력을 기르고자 스트레칭이나 요가 근력 운동을 하려고 용을 쓰기도 하고 우울감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내 시간을 가지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제대로 된 게 없다. 살림도 못하고 육아도 못하고 일도 못하고 그림도 못 그리고, 글도 못 쓰고, 돈도 못 벌고... 자존감은 하루가 무섭게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하루 종일 제자리만 돌고 도는 지구본처럼.
똑같은 일상이 겹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억압되어 감을 느끼면서도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하며
엎드려 울고 있는 나를 모른 척 티브이를 켜고 맥주를 따고
적당히 기분을 달래어 잠을 재우곤 했다.


영화는 내 지금의 일상을 엿본 듯한 거 같다 했지만 사실상 1/100분도 담아내지 못하기도 했다. 허겁지겁인 김지영을 그려내기에는 영화 속 김지영의 일상이 뭉뜨그리 듯 그려졌다. 엄마는 진짜 앉을 새가 없다. 살림의 시옷자도 모르던 내가 엄마라는 고된 육체노동을 하루 한 달 일 년을 넘게 일상으로 겪고 나니 가끔 울화가 치밀곤 하는데 말이다. 영화가 이왕 온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김에 왜 그렇게 영화 속 주인공이 고되 하고 집착하듯 일을 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마음의 병까지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이 다소 부족해 보였다. 물론 엄마인 여자들은 구석구석 잘 보이고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지만 겪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미혼 남녀나 아기가 없는 성인들에게는 설득력이 충분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김지영이 겪은 정신병은 출산 후 겪게 되는 일상이 정신병을 발병하게끔 방아쇠가 켜지게 된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어려서부터 보고 겪는 소소한 차별에 의해 켜켜이 쌓인 무의식이 묵혀있다 산후우울증을 만나면서 정신병을 일으켰다는 말이다. 영화는 산후우울증을 겪을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다 면밀하게 그려줬어야 했다. 엄마가 하루 종일 육체노동에 잠식되는 모습을 더 자세히 표현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아쉬움이 컸다.


이를테면 하루에도 수십수백 번 실랑이하며 씻기며 10킬로가 넘는 아기를 들었다 내렸다, 아직 이가 덜 자라 음식 만들 때마다 다져줘야 하고, 아침 주고 설거지하면 점심. 점심 주고 설거지하면 간식. 간식 주고 저녁 주면 또 설거지. 늦은 남편 저녁 챙겨주고 정리된 개수대는 또 설거지... 똑같이 쌓이고 쌓이는 빨래. 집 청소, 이불, 옷 정리.... 작은 곳부터 큰 곳까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곳 투성이다. 하루라도 빼먹라치면 고스란히 두배가 되니 하루하루 부지런히 잘도 움직여줘야 한다. 그 사이사이에는 아이와 놀아줘야 하고 떼쓰는 것을 달래줘야 하고 집안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야 한다. 거기에 매일같이 말 못 하는 아기와 단 둘이 하루.. 남편이 회식이나 일로 퇴근이 늦는 날에는 이틀.. 그렇게 며칠을 몇 달을 멍청하게 보내고 나면 정신 상태가 온전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엄마들의 “힘들다”라는 말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응축하고 있어서 구태여 설명하는 것이 구차해 보인다. 이런 말을 구구절절하는 것 또한 일이다. 남들에게는 그저 불평불만으로만 들릴 테니 말이다.


이러니 누가 좀 알아줬으면 하는 게 엄마의 마음일까. 적어도 나는 그런 거 같다. 그래서 자꾸 하소연 같은 글을 끄적이게 된다. 나보다 먼저 영화를 보고 온 남편은 영화를 보고 곧장 집으로 와 내게 너무 고생이 많다며 육퇴를 끝내고 티브이를 보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평소 남편은 영화 속 공유 남편보다 훨씬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를 배려해주고 있음에도 나는 “영화가 효자다 효자”하며 엄마인 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받은 느낌이 들어 가슴이 울컥했다. 엄마는 그저 따뜻한 위로와 인정이 필요할 뿐이었다.


모르겠다. 정말. 나는 요즘 모르겠다란 생각을 자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얀 종이처럼 그냥 새하얗기만 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굳이 하고 싶지 않은 많은 말이 서로 비집고 튀어나와 아우성대서 복잡한 심경이다. 행복하기도 한데 출구를  찾겠다고  정유미처럼 나는 가끔 선녀와 나무꾼의 날개 옷을 잃어버린 선녀와 같은 마음으로 활짝 열려 있는 감옥에서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하지만 금쪽같은 내 새끼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노는 모습을 보면 또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엄마는 오락가락 아주 크게 오르내린다.


다행히도 최근엔 취미를 시작했다. 공부도 일도 못하고 있는 이 시점. 뭐라도. 나라는 사람의 자아 같은 그런 끈을 잃고 싶지 않아 시도한 많은 것들 중 하나인 지금의 취미가 나의 남은 능력을 보여주길 바라고 있다. 현재로써의 꿈은 이 취미를 어서 마스터해서 판매하고픈 생각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도 다시 소소한 능력을 인정받게 될 테고 내 돈을 벌어 사고 싶은 옷 한 벌, 감사한 사람에게 주고 싶은 작은 선물이라도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아이에게 떳떳하고 당당한 엄마. 여전히 능력 살아있는 아내. 자신감 있던 나를 다시금 살아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시대 모든 엄마들 진심으로 존경하고 존경하며 감사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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