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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에 사는 스형은 술자리 파할 때가 되면 '배 타고 가야해서 이제 일어날게요'라고 농담을 한다. 영도는 이름 그대로 섬이지만 영도대교나 부산항대교를 통해 시내와 바로 이어지는, 따지고보면 그다지 내륙과 동떨어진 지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부산 사람들은 '영도는 부산으로 안쳐요(부산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최근에야 신기산업을 필두로 무명일기, 끄티 등의 문화공간과 흰여울마을, 깡깡이마을 등의 도시재생사례들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나에게도 영도는 '영도대교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며 눈물을 닦았다'는 피난시절 이야기처럼 아득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20대 중반까지 거의 영도에 가본 적이 없었다. 사람 사는 동네로서 영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백구네 집에 놀러가면서 부터다. 백구네 집은 영도 남항시장 근처에 있다. 집에서 라면 얻어먹고 동네를 어슬렁 걸으면서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바다에서 수영하고 컨테이너 박스에서 옥상탈출(보통 미끄럼틀 위에서 술래가 '옥상'을 외치고 친구들이 '탈출'이라고 응답하면 술래잡기가 시작된다.)하는 이야기였다. 망미동 놀이터에서도 스릴을 즐기며 2층 난간에 매달리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영도 어린이들은 스케일이 달랐다.
길 따라 공장이 줄지어 있고, 정박된 배 옆에는 컨테이너 박스가 쌓여있는 풍경. 레몬 더미만큼 탐스러운 부표, 파래김 같은 어망. 주택가로 들어가면 대문마다 화분을 가꾸는 모습. 바다 건너 백화점과 어촌마을의 장면이 서로 대비되어 더욱 아기자기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영도에서 한 번 살아봐야지 생각했다.
살고싶은 집의 대략적인 모습도 구상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의 집. 테라스에서 맥주 한 캔 마시는 장면도 그려봤다. 이번에 영도 항해캠프에 참여하면서 어쩌면 그 상상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햇살이 잘 드는 아기자기한 집에 살겠지. 바닷마을이니까 습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도 다 낭만 아니겠냐고. 꿈이 너무 컸던 탓에 배정된 숙소에 처음 들어갔을 때 상심이 컸다.
대평동 구민장례식장 사이 어두운 골목 안에는 추어탕집, 막걸리집, 유흥주점이 즐비했다. 해가 들지 않는 원룸에는 침대 세 개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나마 부엌이 분리되어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장례식장 근처라 그런지 왠지 귀신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룸메와 처음 방에 들어왔을때 말문이 막혀 한동안 침대에 널부러져 있었다. 항해자 동료 혜영 작가님은 '인도의 바라나시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시 경험하시게 되는군요.' 하는 흥미로운 해석을 하셨다. 이렇든 저렇든 한 달 간 여기 살아야한다.
세 명이서 사용하기엔 아무래도 작업공간이 부족해 센터에 문의했다. 옆방을 추가로 임대해주었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먼지냄새가 퀴퀴하고, 빛도 잘 들지 않고, 사람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곳이었다. 숙소에 있기싫어 낮에는 주로 밖에서 작업을 했다. 작업방은 속옷빨래를 널거나,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 잠깐씩 작업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사실 오티에서 처음 공개한 숙소 이미지를 봤을때부터 항해자들의 안타까운 시선을 받았다. 그런데 첫 주에 다른 분들 말을 들어보니 곤욕을 치르는 숙소들이 몇 개 더 있었다.
흰여울마을 숙소 흰여울여울은 나무 샷시로 되어있고, 방끼리 문이 없어서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았다. 화장실에는 물이 새어나와 진땀을 흘리고, 샤워를 하려면 변기에 앉다시피 해야한다고 했다. 신선동 숙소 썬플라워는 지붕 위를 올라가는 어떤 수상한 아저씨(강도? 도둑?)와 눈을 마주쳤다는 제보를 했다.
본인이 살지 않고서는 각자의 불편을 제대로 알기 어려울 것 같아 우리끼리 나름대로 잘 지내보자고 맘 먹었다. 커튼도 달고 꽃병에 꽃도 놓으며 조금씩 구색을 갖추고 정을 붙였다.
지내다보니 장점도 있었다. 우리 숙소는 입지가 아주 훌륭했다. 영도 초입에 위치해서 남포동 시내로 나가기 좋았다. 편의점, 생활용품점도 근처에 있고. 맛집도 다 동네에 밀집해있었다. 영도와 수영구를 계속 오가야하는 스케쥴을 고려하면 나에게는 가장 좋은 옵션이었다.
입지가 좋다는 장점은 썬플라워에 들렀다가 실감하게 되었다. 경숙이 언니가 해주시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여유있게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딴청 피우다 버스를 한 차 놓치게 되었는데, 배차 간격이 너무 길어 다음 약속에 30분이나 늦었다. 버스 기다리는 동안 목이 말라 커피 한 잔을 하려고 둘러봐도 그 흔한 커피숍 하나,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편의점을 가려면 차로 이동해야 한단다. 경남 남해에서나 느껴본 템포였다.
영도의 7월 날씨는 '해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혜영 작가님과 오전 7시에 바다수영 약속을 해서 중리해변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해무가 너무 심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조금 기다렸다 들어가야할 것 같다고 문자가 왔다. 대평동은 살짝 흐리긴해도 평소랑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의아했다. 섬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하늘이 가려졌다. 함지그린 아파트 정류장에 내리자 해무가 얼굴까지 내려왔다. 첫눈에 본 해무는 신선이 사는 동네가 이럴까 싶게 신비로웠다. 그렇지만 계속 해무에 둘러싸여 산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도시인의 때(?)가 묻어있었던 항해자들의 옷차림은 반바지에 슬리퍼로 점점 간소화 되어갔다. 영도살이에 대한 환상은 많이 깨졌다.불만을 얘기하다보니 각자가 원하는 동네의 필요조건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제약회사에서 영업을 하다 한 달간 시인이 되었던 주석은 '해가 어스름해지는 시간엔 불을 켜도 어두워요. 아무것도 할게 없어서 기운이 빠져요. 저는 시골사는 타입은 아닌가봐요' 했다. 아파트 숙소에 당첨되어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호나는 '우리 숙소는 컨디션이 정말 좋아요. 그래서 다른 분들이 제 불만을 이해 못할거라 생각하는데, 시내랑 너무 멀어서 많이 힘들어요'했다.
돌이켜보면 영도에 살아보기 전과 지금, 영도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불편한 주거환경, 기나긴 대중교통 배차간격, 맑은 날이 잘 없이 해무로 덮인 나날. 모두 충분히 예상했던 요소들이었지만 내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지는 살아봐야만 알 수 있는 것 같다. 사진 찍는 이재는 '영도의 불편한 것들이 매력적이에요. 저는 여기서 살 수 있을 것 같고,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했다. 항해자캠프 덕에 영도에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을 이뤘고 상상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았지만 자주 행복하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