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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아노 콘체르트

베토벤 황제 2악장

by 랜치 누틴

클래식을 좋아하시나요?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머리를 긁적인다.

“글쎄요. 싫어하지는 않지만 교향곡은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데요. 저는 피아노 음악만 좋아하는 것 같아요. 교향곡을 좋아했다면 브람스나 말러를 좋아하지 않았을까요?”

피아노 독주곡에 대한 편애. 내가 듣는 클래식 곡은 대부분 독주곡이다.

클래식 음악 자체를 좋아했다면 매해 신년 음악회나 정기 연주회에 계속 참석했었을 것이다.

가끔 경기필의 연주를 들으러 가지만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면 좀이 쑤시고 힘이 들었다.

심포니를 듣고 있노라면 왜 피곤할까.


하지만 오케스트라 음악인 피아노 콘체르토 몇 곡은 다른 곡 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콘체르토)이 많지만 내가 사랑하는 피아노 콘체르토가 세 작품 있는데.

그들 중 특별히 느린 악장만을 뽑아 보았다.



불멸의 연인 (1994). 출처. 나무위키


첫 번째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이다.

영화 불멸의 연인에 연주하는 모습도 나오고 2악장은 배경음악으로 간간이 나온다.

황제의 작곡 시기는 교향곡 <영웅>의 작곡 시기 이후였다.

프랑스혁명이 끝나고 나폴레옹이 집권하던 시기.

베토벤은 나폴레옹 장군을 존경하던 나머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헌정, 즉 음악을 바치려고 한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에 오르자 베토벤이 열받아서 <영웅>이라고 곡 제목을 바꿔 썼다는 일화가 있다.


베토벤은 왕정국가가 아닌 공화정을 원했던 것이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후 작곡된 황제 콘체르토를 들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이 곡이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할 이유가 없어. 베토벤은 유능하고 인자한 황제를 원한 것이었어.'


피아노 콘체르토 <황제 Op.73>와 피아노 소나타 <고별 Op.81a>은 비슷한 시기(1809년)에 작곡한 곡일뿐더러 조성, 구성과 분위기가 유사한 점이 많다.

특이 3악장은 쌍둥이 같다. 아마도 같은 E flat Major라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두 곡의 3악장을 들어보면 상승 스케일과 화음 연타의 스타카토는 거의 비슷한 테크닉을 쓰고 있다.

이번 글에서 다룰 황제 2, 3악장은 훨씬 나중에 작곡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의 2,3악장과도 유사한 점이 많다. (다음 회차에 쇼팽 피협을 다룰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황제 협주곡의 악상 분석이 아니다.


황제 2악장을 왜 좋아하게 되었을까?

우연히 보게 된 흑백의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면서이다.


황제를 연주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 아니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한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과거 빌헬름 캠프부터 시작해서 임윤찬까지 수 없이 많은 영상이 있다.


그러나 나의 원픽은 프리드리히 굴다의 황제 2악장이다.

프리드리히 굴다의 '황제' 콘체르토 영상을 찾아보다 보면 89년도 뮌헨필과의 연주도 있다.

하지만 지휘와 연주를 겸하다 보니 솔로 연주 타이밍을 가끔 놓지기도 하고 살짝 정신없어 보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좀 가볍다.


오스트리아-독일계, 빈 트로이카 3대 거장으로 불리었던 시절의 프리드리히 굴다.

누구보다 보수적인 음악 환경 속에 독일계 적통임을 내세울 수 있었지만,

그는 보수성을 뒤로하고 전통을 타파하려는 여러 활동들을 보였다.

재즈 피아노 음악을 작곡하고 칙 코리아 등과 같이 연주하는 등 많은 재즈 연주를 하였지만

재즈계와 클래식계 모두 에서 크게 인정을 못 받았다.

'자크 루시에' 처럼 완전히 재즈 밴드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프리드리히 굴다'와 '글렌 굴드'가 가끔 헷갈렸었는데. 공통점은 그들의 기이한 행동이고,

다른 점은 나머지 다일 것이다.



다시 황제로 들어가서.

굴다의 황제, 1966년 비엔나 필하모니와 함께한 흑백 영상의 전통을 추구한 젊은 시절 연주를 훨씬 좋아한다.

2악장은 이 영상의 굴다를 따라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통은 전통스럽게 두는 것이 낫다. 그게 가장 세련되니까.


Friedrich Gulda -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Emperor(황제)" - George Szell, Wiener Phil. (1966)


회사를 다니면서 분노가 머리끝까지 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운전은 액셀을 밟으면서 점차 험악해지기 시작했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이놈의 회사 그만두고 말 거야. 칼을 갈고 말겠어. 이런 마음이 가득했던 때.

그날 아침 집에서 집어온 CD를 출근하는 차에서 틀기 시작했다.

'프리드리히 굴다의 피아노 소나타, 협주곡 전집'.

황제 콘체르토 2악장이 시작되었다.


굴다의 피아노 소나타, 콘체르토 전집

전쟁의 폐허일까. 과거의 회상일까.

침착한 오케스트라 반주에 이어 시작되는 아주 느린 아다지오 피아노의 하향 스케일.

그리고 노래가 시작된다.

그런데 그 음악이 나를 한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분노, 미움이 신기루처럼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마음이 위안되는 음악임에는 틀림없다.



요즘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이런 칼라 영상도 있었다.

Friedrich Gulda -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Emperor(황제)" - George Szell, Wiener Phil. (1966)



Piano Concerto No.5 in E flat major, Op. 73 "Emperor(황제)"

00:01:21 I. Allegro

00:23:02 II. Adagio un poco mosso (천천히 아주 작게 시작)

00:31:41 III. Rondo: Allegro


상단 이미지는 나무위키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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