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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슈베르트에 대한 단상

슈베르트를 좋아하게 된 이유?

by 랜치 누틴

슈베르트에 대한 나의 의식의 흐름


상단 이미지 -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Franz_Schubert)


어린 시절 집에 베토벤 위인전기 책이 있었다.

10살 정도 되었을 때 베토벤의 위인전기를 얼마나 감동적으로 읽었는지 모른다.

위인전기에 '환희의 송가'를 발표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을 흘렸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같이 만나는 장면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베토벤 위인전 뒤편에는 슈베르트의 위인전이 있었다.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슈베르트의 모습이 위인전의 맨 앞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뽀글 머리에 안경을 쓴 모습의 삽화를 보며 어린 마음에 우리 고모할머니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당시 할머니들은 대부분 뽀글 머리에 돋보기를 쓴 분들이 많았으니까.

베토벤의 위인전기와는 다르게 슈베르트의 위인전기는 정말 재미가 없었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처럼 다이내믹한 삶을 살지 않았다. 짧은 인생을 살았다는 내용 빼고는 별다르게 다가오는 내용이 없었다.

이 점은 음악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베토벤의 음악이 자신의 인생처럼 드라마틱한 서사가 있고 스케일이 큰 강력한 음악이라면 슈베르트는 어떻게 스타일을 단정 짓기 어려운 것이 맞다.


두 번째로 슈베르트를 의식하게 된 것은 TV 만화 '개구쟁이 스머프'이다.

스머프들을 괴롭히는 공포의 가가멜이 등장하는 장면에 스산하게 들리는 음악.

그 음악이 슈베르트의 대표곡 '미완성 교향곡'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학교 음악감상 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그 음악. ' 아 이건 가가멜 음악이잖아?!'

gagamel.jpg 가가멜의 집 - 미완성 교향곡 1악장이 들린다.

음악 교과서에 낭만음악가 슈베르트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수식어는 '가곡의 왕'이라는 것이다.

"600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해 가곡의 왕이라 부른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 가곡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어린 시절 알고 있던 슈베르트의 가곡이라면 '자장가', '세레나데' '숭어' 이 정도였다. 교과서에 나와있는 가곡이란 것은 1절만 나와있었고 멜로디 라인도 단순했다.

이런 곡 600곡을 작곡했다고 베토벤 옆에 초상화가 있는 슈베르트가 그렇게 존경스러운 사람인가는 당시에는 이해가 안 되었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교과서가 잘못했다. 반드시 "예술가곡"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어야 했다.

가사가 들어있는 일부만 배울 것이 아니라 반주부터 full version으로 들었어야 했다. 슈베르트의 가곡 Lieder는 노래도 좋지만 무엇보다 피아노 반주가 걸작이 아닌가.


중학교 3학년 음악시간 때였다.

교과서에 나와있던 "마왕"을 선생님이 틀어 주셨는데.

셋잇단음표로 시작하는 엄청난 피아노 반주, 마치 락음악을 듣는 듯한 강력한 사운드. 그리고 충격적인 노래, 허탈한 결말까지 이 음악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이제까지 듣던 가곡과는 그 차원이 다른 음악이었다.

그때 슈베르트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왕"을 제외하고는 슈베르트를 듣기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당시에 CD로 듣는 방법을 제외하고는 들을 기회가 없었으니까. 슈베르트를 사서 듣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렀고

2001년에 영화 '피아니스트'(미카엘 하네케 영화)를 봤다.

당시 칸 영화제에서 주인공들이 주연상을 타서 유명해진 음악 영화여서 보게 되었다. 물론 영화의 줄거리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다시 못 보고 있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교수이며 슈베르트 피아노의 스페셜리스트였다.

"너의 전공은 슈베르트야" 주인공 어머니가 했던 말.

슈베르트 피아노 음악이 그렇게 유명했었나? 슈베르트의 피아노 음악을 별로 못 들어본 나로서는 놀라웠다.

영화 배경으로 나왔던 주인공이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음악. 정말 좋았다.

하지만 영화가 너무나 잔인하고 가학적인 장면이 즐비하여 다시 볼 자신이 없었다.

이 영화가 좀만 더 정상적인 스토리였으면 슈베르트의 음악을 알릴 수 있었던 좋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유튜브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음악들을 듣지 못하고 슈베르트는 다시 기억 밖으로 보내게 되었다.

pianist.jpg 2016년에 리마스터되었다고 한다.


2004년부터 어릴 때 그만둔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에 관심이 갖게 되었고 특히 OP.90-3을 좋아했다.

알프레드 브란델의 유튜브 연주, 머레이 페라이어의 연주 모두 좋았다.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다른 슈베르트의 곡과는 다른 것 같다.

미완성과 유작이 무성한 슈베르트의 피아노 곡들 중 특이하게 즉흥곡 8곡은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다.

즉흥곡이야 말로 슈베르트가 돈을 벌기 위해 정식 출판한 곡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이때도 슈베르트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이랬던 내가 슈베르트에 한 순간에 빠진 곡이 있었으니, 2019년에 처음 들었던 이 곡!

Im Frühling(봄에), Op. Posth 101 No. 1, D. 882이다.

비슷한 제목의 <봄날에>와 착각하기 쉽다.

Ian Bostridge 정말 감성적인 테너이다.

이안 보스트리지의 테너는 이제까지 내가 듣던 성악가의 목소리와는 또 다른 미성의 남자 목소리였다.

아마 이안이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났다면 '콘트라테노르'가 되지 않았을까?


https://youtu.be/34RVZE2zpEM?si=5Uv4T0y7d7IwoXNF


슈베르트는 가곡과 즉흥곡 밖에 몰랐었다.

그런데 2년 전 새로 들어온 회사 동료 한 명이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슈베르트를 듣게 되었다. 소나타 1번부터 21번까지.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듣다 보니 특별히 선율이 아름답고 따뜻한 소나타들이 있었다.

3번, 6번, 7번, 8번, 13번, 20번 (특히 4악장) 내가 좋아하는 슈베르트의 소나타들.

슈베르트의 곡의 어떤 한 소절에서 그 누구와도 비교 안 되는 아름다운 가슴에 와닿는 멜로디가 있었다.

비록 슈베르트의 곡들이 구조적으로나 대위법적으로 부족한 면이 많다고는 하지만 멜로디를 뽑아내는 힘만큼은 다른 어떤 작곡가 보다 뛰어난 것 같다.


요즘에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치고 있다.

D.664와 D.566이다. 슈베르트 소나타 중 가장 쉽고 짧은 소나타이다.

분명 베토벤 보다 악보는 쉽지만, 베토벤 보다 표현도 어렵고 무대효과도 없는 곡이 슈베르트 소나타가 아닌가 싶다.


두서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

브런치에 이런 글을 써도 되나 웃음이 나온다.


슈베르트에 대한 글은 다시 한번 다룰 일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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