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피아노 콘체르토(2)

쇼팽 피아노 콘체르토 1번 2악장

by 랜치 누틴


2005년.

취미로 피아노를 연주하던 나는 당시 Cafe에서 엄청난 소식을 들었다. 쇼팽 콩쿠르 수상자가 나왔다고.

그것도 형제가 동점으로 2등 없는 공동 3위 입상이라는 것이다.

임동혁의 경우 쇼팽 콩쿠르 전부터 유명세를 탔었지만 임동민의 이름은 조금 생소했다. 그저 임동혁이 형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빌보드 차트, 오스카 영화제, 쇼팽 콩쿠르 모두 상을 타고 수도 없이 인재를 배출한 대한민국이어서 별 감흥이 없겠지만 당시만 해도 이들의 수상은 상당히 충격적인 뉴스였다.


나는 임동혁의 연주보다 임동민의 쇼팽 연주를 좋아한다.

특히 20대 시절의 임동민의 감성적인 연주들. 그의 터치 하나하나가 지금도 내 가슴을 울리곤 한다.

임동민이 2018년 10월 대전에서 연주했던 쇼팽 스케르초 3번 연주를 생각해 보면, 곡의 선율이 아니라 그의 힘에서 나오는 진동이 더욱 크게 다가왔었다. 실제 연주가 더 매력적인 피아니스트인 것 같다.


임동민은 한국나이 10~11살이 되는 해, 만 9세로 국민학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부를 못하니까 다른 것이라도 해보라는 어머니의 충고에 아파트 상가 피아노 학원에 피아노 가방을 흔들며 무심코 갔던 그 꼬마가. 형이 간다고 하길래 자기도 같이 친다며 따라갔던 어린 동생이,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11세에 피아노 시작은 상당히 늦은 것이다. 내가 어릴 때 피아노 전공했던 친구들도 7살 때 늦어도 8살 때는 피아노를 시작했다. 그에 비해 상당히 늦은, 한국나이 11살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것은 피아노 전공으로는 좀 늦다. 내 주변 사람들은 임동민처럼 피아노를 늦게 시작한 경우 피아노 실력이 부족하여 작곡 전공을 선택하곤 했다. 그러나 임동민은 피아노 1년 좀 넘게 배우고 1992년 삼익콩쿠르 1등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만들어낸다.

그 모든 것이 재능이 아니라 엄청난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자신은 동생 임동혁과 다르게 천재가 아니라며 수줍게 말하는 임동민 피아니스트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출처 : 나무위키. (그의 2집 음반 Main 제킷이다)


다시 쇼팽 피아노협주곡으로 들어가며.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가장 유명한 곡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쇼팽 콩쿠르 파이널 무대에 연주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1번 협주곡을 연주한다고 하니까.

쇼팽 콩쿠르 예선, 본선을 거쳐 파이널에 참가하는 연주자들은 규정에 따라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쇼팽의 1번과 2번의 협주곡 중 양자 택일 하는데, 우연일지는 모르지만 파이널에 협주곡 1번을 연주해야만 쇼팽 콩쿠르 우승을 한다는 설이 있다.

이제까지 콩쿠르에서 2번 협주곡을 연주하고 우승한 사람은 당 타이손이 유일하다고 하니 이런 소문이 도는 것이 가당하기도 하다.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임동혁이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던 이유가 형이 1번을 연주했기 때문에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임동혁이 1996년 쇼팽 영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피아노 협주곡 2번도 상당히 괜찮았다. 형이 1번을 쳐서 자신이 2번으로 연주했다는 말은 비단 임동혁이 임동민을 위해 양보했다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참고로 임동혁 연주도. 12살 어린이의 연주라고 하기에는........)






임동민은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Yamaha 피아노를 사용했다. 대부분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사용하는데 임동민은 Yamaha 피아노를 선호하는 것 같다. 이런 이유인지 콩루르 후 일본에서 임동민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고 첫 음반을 SONY MUSIC과 계약하는 등. 20대 임동민 연주를 찾아보면 일본에서 연주한 실황 영상이 많이 남아 있다. 일본에서 홍보차 임동민에게 힘을 쏟은 것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쇼팽 콩쿠르 파이널에서 야마하 피아노의 선택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탁월했던 것 같다.

당시 우승한 라팔의 연주한 스타인웨이 피아노보다 더 차갑고 쓸쓸함이 느껴지는 음색을 낸 야마하 피아노가 훨씬 더 어울렸다.

평론가들이 말하길 실력은 우승자 라팔이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실력과 주관적으로 내가 감동받는 것은 별개인 것 아닌가.

임동민은 쇼팽 피아노 협주곡 파이널 연주에서 1,2 악장 연주를 완벽하게 했지만.

3악장 들어갈 때 2번째 노트의 음을 잘못짚는다.

얼마나 속이 쓰릴까. 그것도 도입부에 음을 삑사리 내 버리다니. 쇼팽 콩쿠르를 나가기 위해 도입부만 수천번을 연주했었을 것인데 말이다.

보통의 공연 연주라면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쇼팽 콩쿠르의 경우 실황 CD도 제작되고 영상도 영원이 회자되지 않는가.

물론 이 노트 하나 틀린 것으로 우승자가 바뀌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란 평이 있다. 당시 1등인 라팔은 엄청난 실력뿐 아니라 쇼팽의 모국인 폴란드인으로써 주최 측이 무조건 밀었다고 하니 말이다.


콩쿠르에서 임동민이 대단했던 점은 2번째 노트를 틀리고도 이 곡 연주를 기가 막히게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무대에서 연주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무대에서 도입부를 틀리면 그다음 전체 연주의 흐름이 다 망가진다는 것을. 물론 프로 연주자니 나 같은 아마추어와는 차원이 다를지 모른다.

그러나 일반 연주회도 아니고 5년에 한 번 개최되는 쇼팽 콩쿠르 파이널이다. 정확한 음, 감정, 프레이즈 하나하나가 순위에 얼마나 영향을 주겠는가.

나는 임동민이 연주에서 흐름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 코다까지 완벽하게 풀어 간 것이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주로 2악장 연주만 들었는데 글을 쓰려고 다시 3악장을 들었다. 3악장 연주 역시 너무나 박진감 넘치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역시 신은 공평해. 이런 어마무시한 연주를 남기기 위해 일부러 도입부 한 음을 틀리도록 만든 것이 확실해.


한동안 잊혔던 임동민은 5년 전 유튜브 채널 '또모'에서 임동민이 마스터클래스를 하며 다시 회자되었다.


또모에서 붙여진 러시아 북극곰이라는 푸근한 외모와는 다르게, 쇼팽 콩쿠르에서는 엄청나게 마르고 왜소한 체격으로 연주를 이어갔다. 마치 건강이 온전치 않았던 쇼팽의 느낌이라고 할까? 외로운 이방인의 느낌이 물씬 든다.

러시아에서 공부한 임동민의 연주는 동유럽의 차가운 선홍색의 느낌을 정확히 표현했다. 이 협주곡은 쇼팽이 프랑스에서 연주 활동했을 때 작곡한 곡이 아니어서 멜랑콜리한 낭만 음악과는 다르다.

쇼팽의 청년기 시절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초연을 했다고 하는데, 정말 차갑고 강인하며 서정적인 곡이다.

임동민은 2악장을 부드러움에 치중하기보다 조금 거친 터치를 보여주며 동유럽의 정서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임동민의 거친 터치 속에는 특유의 아슬아슬함이 있다. 터지다가 조용해지고 다시 솟아오르다가 누그러진다. 곡의 흐름은 감성적이지만 터치는 힘이차고 또박또박 정직하게 연주함으로써 모든 노트가 또렷하게 들린다.

나는 쇼팽 2악장을 좋아한다기보다 임동민이 연주한 쇼팽 2악장을 좋아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끝.

keyword
이전 03화나의 피아노 콘체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