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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동준 Aug 21. 2017

예술이라는 서사, 관객이라는 경험

수원시평생학습관 7월 말 칼럼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당초에 보려고 했던 신생 음악단체의 공연 일자가 변경되었다. 하지만 문화생활을 위해 따로 빼놓은 시간을 흘려버리는 것이 아까워 국립극장을 찾았다. 여름에 국립극장은 <여우락>이라는 시즌 공연을 한다. 


공연명은 <컨템퍼러리 시나위>였다. 한국음악의 재즈라고 불리는 시나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의 컨템포러리한 성격을 보여주고, 전통을 전통의 개념과 규정 너머로 확장하고자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컨템포러리, 그 단어가 공연 전에도, 공연 중에도, 공연 후에도 마음에 걸렸다. 컨템퍼러리(contemporary)라? 동시대성? 현대? 


나는 그 공연에서 동시대성이나 현대를 느낄 수 없었다. 지금 시대의 음악(혹은 국악)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어느 지점이 ‘현대’의 의미를 보여주는 부분이었을까? 삐딱한 공연 직후의 감상을 길게 물고 늘어지며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그 무대에서 연주된 악곡들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공연이 ‘동시대’의 음악에 대해, ‘현대’의 국악에 대해 무언가 말하는 자리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음악 역사의 제일 끝, 단면만을 본 것이고 누군가는 그 역사까지 본 것일 수도 있으니. 


어느 봄날 한 연주자에게 물었다. “현대음악의 어떤 부분이 좋으세요?” 그 연주자는 열린 결말이 주는 자유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럼 관객은 어디에서 그 음악이 열려있음을 느낄 수 있나요?” 현대음악에 대한 반론이 아닌, 예술가에게 한 발 더 다가가고픈 마음의 표현이었다. 


관객은 무대 이전의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인 연주자의 고뇌 - 예를 들어 왜 지금 현대음악을 좋아하는지 - 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어느 정도 만날 수 있을까?  



관객 경험에 대한 연출, 관객에 대한 존중 


작품은 예술가의 연속적인 고뇌가 어느 한 순간 형태를 가지면서 응축된 것이다. 그렇게 예술가에게는 작업을 통해 지나온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줄기라고 한다면 작품은 생장점 정도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기간의 매듭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딛고 성장한다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혹은 그 지나온 시간을 그냥 예술가의 서사라고 해도 좋다. 줄기라고 하든, 서사라고 하든, 예술가의 정신과 작업은 연속적이다. 그리고 관객은 그 연속의 어느 한 순간에 예술가의 정신(작업)과 만난다. 이것은 두 가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나는 관객 경험에 대한 기획 혹은 연출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성의 의미이다. 


관객은 작품을 통해 예술가의 연속적인 작업 과정의 최신 단면을 마주한다. 이러한 단면(순간)에 예술가의 지나온 고뇌의 흐름이 드러나도록 3차원을 그려내는 것을 관객 경험에 대한 기획, 혹은 연출이라고 부를 수 있다. <컨템퍼러리 시나위> 공연에서 내가 느낀 아쉬움은 시간축이 더해진 이와 같은 관객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술의 시간을 좇아 성실하게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보러가지 않은 내 책임도 있을 것이다. 


그럼 대중성은 무엇인가? 어떤 작품이 결과적으로 대중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대중성에 대한 요구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대중성의 요구는 아주 쉽게 예술가의 서사를 끊어버린다. “네가 어떤 고뇌를 해왔는지는 내 알 바 아니고, 시장(market)이 좋아하지 않잖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점 두 개를 찍으면 방향이 생긴다. 그런데 무수한 점들을 찍으며 자기의 세계를 구축해온 예술가의 지난 점들을 다 지워버리는 것은 예술가의 방향 감각을 도려내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뻔뻔하게도) 대뜸 묻는다. “이제 어디로 갈 겁니까?” 알고 보면 ‘답정너’다. “대중성이라는 무대로!” 서사의 단절에 이은 대중성이라는 무대는 그래서 예술가의 무대가 아닌 남의 무대, 남의 언어다. 공모사업과 심사, 공연장과 축제들, 학교 교육 등에 내재된 대중성에 대한 요구의 의미를 반성해보아야 한다.  



대중성 다시보기, 예술에 대한 또는 서사에 대한 존중 


사람의 만남도 이와 같다. 어느 누구도 타인과 만나는 ‘순간’에 타인의 역사를 꿰뚫지는 못한다. 그래서 언어적, 비언어적 대화의 긴장 속에서 조심스럽게 상대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그렇게 예술가와 관객이 나누는 대화의 계기, 혹은 대화 그 자체이다. 그것이 대화의 계기이든 대화 그 자체이든 대화인 한에서는 존중이 필요하다. 우선은 관객에 대한 존중이다. “너 전공 아니니? 그럼 미안하지만 이거 이해 못해”라는 식이면 곤란하다. 다음은 예술가에 대한 존중이다. “뭐야, 재미없잖아? 이런 거 왜 해?” 혹은 “실력이 별로네. 왜 계속 예술한대?”라는 식이면 역시 곤란하다. 


영화 <라라랜드>의 후반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오디션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인상적이었다. 오디션에서 여주인공은 파리의 이모 이야기를 했다. 이모는 겨울에 미소를 지으며 세느강에 맨 발로 뛰어내렸다. 그 후 한 달 동안 기침을 해야 했지만, 다시 하래도 똑 같이 할 거라고.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바보 같은 이들이지만, 아파하는 가슴들을 위해. 망가진 삶들을 위해. 화가와 시인과 광대를 위해! 


영화를 보면서 상상을 해보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정식 직업으로 인정도 잘 못 받는 예술가들의 삶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퍼포먼스로 겨울 강에 맨발로 뛰어드는 미친 행위예술이라니! 그러면서 동시에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열린책들,1996) 속 한 인물이 갤러리 작품을 보며 심드렁하게 내뱉은 “깊이가 없네”라는 한 마디가 오버랩 되었다. 전시회를 열었던 소설 속 화가는 누구의 말인지, 어떤 의미에서의 말인지도 알 수 없는 “깊이가 없네.”라는 뚝 잘린 문장을 붙잡고 괴로워하다가 죽고 만다. 그것이 그 화가의 정신력이 약해서였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세느강에 뛰어들 정도는 아니라도, 서사에 대한 존중의 문제였다고 볼 수는 없을까?


<영화 ‘라라랜드’ 중에서, 출처 : http://carnivorousstudios.com/?p=1561>



경계 위, 경계 밖 운명을 끌어안은 자들 


학술적 구분은 아니지만 ‘전문직’과 ‘전문가’는 조금 뉘앙스가 다르다. 전문직은 직종에 대한 언급이며, 그 직종에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 자격시험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의사, 변호사, 교사 등이 그런 경우다. 이들은 사회적 합의라는 토대 위에서 존중받는다. 이에 반해 전문가는 직종에 따라 붙는 말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잘 한다”는 뜻이다. 전자는 경계 안의 삶이며, 후자는 경계 위의, 혹은 경계 밖의 삶이다. 예술가는 현실적으로 전문가는 될 수 있지만, 전문직이라 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예술 행위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사회적 합의의 경계를 허물고 확장하는 성격도 가진다. 앞서의 전문가가 사회적 합의 속에서 필요의 영역을 충족시킨다면 예술가는 필요의 세계 너머를 추구한다. 전자에게는 필요를 충족시켜준 대가가 주어진다. 그럼 필요 너머, 혹은 필요의 경계 자체를 확장한 예술가에게는? 여기가 바로 예술시장이 놓인 자리다. 한 발을 앞서가게 되면 ‘필요’와 ‘너머’의 아슬아슬한 조화 위에 만들어진 예술시장의 경계를 넘어버려 쫄쫄 굶기 십상이다. 반걸음도 앞서지 못한다면 식상하다는 평가 속에서 “기능인은 되는데, 예술가는 아니야.”라는 시니컬한 대우를 받게 된다. 예술시장을 단순히 상업시장으로만 남겨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은 그것에 부과된 이미지 때문에라도 끊임없이 경계를 넘거나 확장하거나 경계 위에 서게 되는데, 이것은 공교롭게도 생계의 경계선에 서는 결과가 된다. 그런데 이것이 사회적 역차원의 압력이라면 최소한 그런 위험을 감수한 이들에 대한 존중과 보상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대 샤먼에서부터 낭만적 개인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예술가의 이미지가 사회적 차원의 압력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6년 쯤 전에 소속단체 대표와 함께 조선의 예인(藝人)들에 대해 책을 썼던 한 교수를 만난 일이 있다. “교수님은 예인들의 삶을 역사학자로서 연구해오셨는데, 다들 삶의 끝이 ‘가난하게 죽었더라!’더군요. 혹시 ‘잘 먹고 잘 살았더라!’라는 사례는 없나요?” 이 질문에 대한 교수의 대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살았으면 그게 어떻게 예술가의 삶이야?” 지금 다시 만난다면 “굶어죽지 않는다면 어찌 지식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돌려주고 싶다. 예술가의 이미지를 소비만 하고 존중은 하지 않는 사회의 한 단면이 아닐까? 


얼마 전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예술가의 삶에 대해 다시 대화했다. “국공립단체 단원이 되거나 예술대학 교수가 되지 않고 민간에 남은 예술가는 젊어서나 늙어서나 다 같은 일을 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니?” 문예진흥기금으로 돌아가는 공모사업에 20대 예술가도 뛰어들고, 40대 예술가도 뛰어들고, 원로 예술가도 뛰어든다. 직장은 승진이 있고 권한의 확장과 일의 차원의 변화가 있는데, 과연 민간분야 예술가에게 생애주기모델은 있는 것일까? 창작의 무게를 감당하고 살아온 것에 대한 사회적 연금이라도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요즘 로스쿨 쪽에서는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이슈인 듯하다. 로스쿨 도입 초기에 75% 수준이던 합격률이 지금은 50%대로 떨어졌다며, 정책적으로 75% 수준이 되도록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투자한 돈이 1억에 가까워서 그런가? 이미 변호사 시장이 포화라는 말도 있는데 공급 과잉은 아닐까?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루비박스,2006)라는 책에는 이와 비교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의학도의 98퍼센트가 졸업 후 5년 간 의학 시술을 하지 않았다면 크게 문제시되겠지만, 예술 전공자의 98퍼센트가 초기에 전공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출처 : http://usunote.tistory.com/7 >


20년 전 책이니 통계에 변화가 있을 수는 있다. 97% 혹은 99% 정도? 참고로 예술가도 전공이라는 수련 기간에 1억 정도는 쓴다. 그럼 이제 예술계도 당당하게 로스쿨 분야처럼 직업의 연속성을 75% 정도로 보장하라고 요구해볼까 싶은 욕심이 자꾸 생긴다. 그래도 되지 않을까?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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