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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동준 Jun 16. 2016

인생 얼라인먼트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을 읽고

자동차 정비소나 타이어 매장에 가면 '휠얼라인먼트(wheel Alignment)'라는 서비 항목이 있다. 자동차의 네 바퀴 중 어느 하나가 틀어져있지 않고 잘 정렬되어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얼라인먼트가 틀어지면 차가 운전 중에 한쪽으로 미세하게 쏠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얼라인먼트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틀어지게 되어있기 때문에 주기적인 점검과 재정렬이 필요하다.



기독교인 필독서라고 불리는 고든 맥도날드 목사의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은 나에게 '인생 얼라인먼트'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시간, 건강, 마음, 지식, 인간 관계, 돈 등등 모든 것이 적절한 방향(목적)으로 잘 정렬되어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이것을 한 구절로 요약하면 '기독교인 자기계발'이다. 저자가 이를 위해 던지는 질문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내면 세계가 공고한가? (내공이 좀 되십니까?)
분명한 사명을 인식하고 있는가?
목적에 따라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가?
주기적으로 쉼을 가지고 있는가?


이 네 가지 질문은 종교를 떠나서 보통의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때문에 기독교인의 영적 성장이라는 본래의 저술 목적은 두 번째 질문인 "분명한 사명을 인식하고 있는가?"에 있다.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좋은 본보기로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을, 나쁜 본보기로 초대 이스라엘 왕이었던 사울을 제시한다. 사실 예수님은 기독교인의 삶의 총체적 모본이다.


예수님은 본인의 사명을 언제나 인식하고 계셨다. 사랑의 삶의 모본, 제자의 훈련, 그리고 죄인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에서의 죽음이었다. 슈퍼 스타였을 때에도, 모욕과 수치의 한 가운데였을 때에도 예수님은 한 번도 동요하지 않으셨다. 속된 말로 내공이 진짜 강했다.


예수님의 시간 사용 역시 정확히 이러한 목적과 일치했다. 병자의 치료, 제자의 훈련, 그리고 성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 위한 일치의 시간으로서의 기도가 그것이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에 대한 해석과 제시는 고든 맥도날드 목사보다 뛰어난 영적 선배들이 책이 많으므로, 그것을 위해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존 오웬이나 조지 휫필드, 존 웨슬리 드의 책을 권한다.)


다만 이 책은 내가 자신에게 항상 던지는 질문을 다시금 던지는 계기가 되긴 했다.



얼마나 가난해져도 괜찮은가?


시간의 주인이 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양심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은 사회적 고립의 위험이 따른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얼마나 가난해져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선생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돈은 쓰는 재미보다 버는 재미가 더 크다. 한 번 돈 버는 맛을 보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채현국 선생은 개인소득세 전국 1위를 찍던 정점의 순간에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빨아들이는 탐욕의 블랙홀을 직감하고 그 모든 삶으로부터 물러났다. 지혜로운 사람이다.


주변에서 삶이 힘들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 중에는 사회적 안전망의 지원이 필요한 수준의 삶이 실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삶에서 힘겨움, 바쁨 등은 제한되고 검토되지 않은 욕심으로부터 비롯된다.


"얼마나 가난해져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은 나에게 이러한 욕심에 대한 매우 실제적인 검토의 과정이다. 이 질문을 통해 나는 삶에서 필수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을 구분한다. 알고 있는 바와 100% 일치하는 선택을 매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던 시절보다는 더 지혜롭게 선택을 한다고 믿는다.



프리랜서, 을의 삶이 아니기 위해.


프리랜서의 삶은 특별히 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일은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통해 성사되고, 일이 없을 때에는 매번 일을 위한 준비(주로 공부)를 하게 된다. 스케쥴러의 시간을 내가 먼저 채우기보다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위해 공손히(?) 빈 시간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종종 시간의 주인이 나인지, 고객인지, 돈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삶 역시 동일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얼마나 가난해져도 괜찮은가?" 프리랜서가 오롯이 을의 삶이 아니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이나마 시간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설립자인 앨런 머스크도 젊은 시절 이 질문을 던지고, 실제로 자기 삶을 두고 실험까지 해보았다.


하지만 시선이 "얼마나 가난해져도 괜찮은가?"라는 질문 자체에만 쏠려있다면 답을 얻기 어렵다. 결국에는 사는 목적이 먼저 서야 한다. 가난도 이유가 있을 때 견딜 수 있는 것이고, 때때로 기이하게도 즐거움도 되는 법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다시금 오랜 경구를 떠올리게 된다.


너 자신을 알라.


굳이 일독을 권하지는 않는 이 책에서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저자의 한 마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며 마음에 새겨둘만 하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어떤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출발점이다. (p.104)



역시 자기개발서들의 끝은 대부분 동일하다. 자기개발서 저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소크라테스에게 저작권 수입의 일부를 로열티로 바쳐야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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