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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년대 소년 Mar 22. 2024

'감정자본'이라는 것에 대하여

얼마 전 트위터에서 누군가 ‘감정자본’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신입 사원이 회사에서 빠르게 적응하려면 주저없이 질문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든든한 감정자본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난 그런 ‘감정자본’이라는 것이 있었나?’ 기억을 돌려 본다.


영업기획팀에서 지점으로 발령을 받은 첫 날 저녁, 나는 세 명의 선배들과 참치집에 둘러 앉았다. 3년만에 지점에 들어온 신입사원이었다. 잔뜩 긴장했지만, 참으로 편하게 대해주는 그들 덕분에 비로소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대학 졸업 직전 가까스로 최종 합격이라는 동아줄을 잡고, 이런 저런 교육의 끝에 비로소 내가 안착할 장소를 찾은 것이었다.


세 사람의 캐릭터는 판이하게 달랐다. 진한 대구사투리를 구사하며, 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아니면 그렇게 보였던)ㄱ 선배. ‘과장님’이라 부르면 늘 미소를 띠며 바라봐주던, (재미로 보곤 했던 관상학책 기준에 의거) 굉장히 관상이 좋았던 사람. 다른 지역에 가서도 술 한잔 하면 가끔씩 “석빈아빠 잘 지내고?” 하며 문자를 주던 사람이었다.


ㄴ 선배는 한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배였다. 훤칠한 외모로 여기 저기서 인기도 많았고, 가끔 보이는 허술함도 ‘인간적인 매력’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신입사원 특유의 어리버리함으로 헤메일 때면 “야 그거 줘봐. 내가 할게. 넌 신경쓰지마.” 라고 이야기하며 ‘저리 가라’는 의미의 손짓을 하던 선배였다(그 손짓을 자주 봤던게 문제;;). 술을 좋아하기도 했는데, 회식 때 가끔 풀린 눈으로 나를 볼 때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하고 물으면 웃으며 “아니, 안 괜찮지.” 하고 웃으며 답하던 사람이었다. (잘 알겠지만 술자리에서 ‘괜찮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ㄷ 선배는 가장 어려운 사람이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연차였지만, 항상 존대하며 과분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신입 사원이라 한 동안 차가 없어 자주 출퇴근 시 신세를 지고, 군대 신병처럼 나를 데리고 다니며 이런 저런 노하우를 알려주던 선배였다. 그 때는 ㄷ 선배의 은근한 배려와 조심스러움에 나 또한 보조를 맞추느라 그를 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다. 그러던 선배와 친해지고, 이제는 가장 편한 선배 중 한명이 되었지만 말이다. (아내를 소개해준 은인이자, 아내의 대학 교 미술 동아리 선배이기도 하다)


다시 ‘감정 자본’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본다.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이야기한 감정 자본은 요즘 많이들 사용하고 있는 ‘회복탄력성’ 과 크게 다르지 않은 뜻일 것이다. 신입 사원 시절 나에게 그러한 ‘마음의 근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돌아보면 당시 무엇보다 내가 든든하게 생각했던 것은 선배들이었던것 같다. 일의 난이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내가 필요한 때 손을 뻗치면 닿는 곳에 그들이 있다는 사실. 그들의 따뜻한 선의가 있어서 이 조직에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라면 위의 세 선배들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그러한 마음 씀씀이는 개인적인 성향이 크겠지만, 회사의 DNA와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종종 발령 받은 첫 날, 참치집의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긴장감이 이내 안정감으로 바뀌었던, 노란빛 조명 아래에서의 그 시간이 가끔씩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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