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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년대 소년 Mar 24. 2024

보름달

- 자작시


별다르지 않은 일요일이었다.

지금처럼 담의 경계가 높지 않은 시절이었다.

늘 소반이 아닌 쟁반에 밥을 먹던 성철이네 집에 다녀온 날이었다.



세 모자(母子)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국 한그릇 혼자 데우기 싫어하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발등으로 여자의 허벅지를 몇 번이고 걷어 찼다.

여자는 울지 않았지만, 두 아들은 울었다.

어른의 싸움에 아이들은 먼저 지친다. 두 아들은 그렇게 울다 잠이 들었다.



두 아들이 눈을 떴을 때 여자는 없었다.

서랍 한 구석이 비워져 있을 뿐이었다.



여자가 없는 집은 조용했다.

남자가 틀어 놓은 티비소리만 들렸다.



대낮인데도 하늘은 어두웠다.

비가 내렸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두 아들에게 돈을 주었다.

두 아들과 여자에게 하는 사과였다.



울다 잠든 두 아들은 배가 고팠다.

큰 아들은 꽈배기 과자 한봉지를

작은 아들은 보름달 빵을 샀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뜯은

큰 아들의 과자 봉지 안으로 비가 들어갔다.

우산을 들고 있던 작은 아들은 보름달빵을 뜯었다.

손 쓸 새도 없이 빵은 바퀴자국이 선명한

흙 위로 떨어졌다.



작은 아들은 또 울었지만,

남자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별다르지 않은 일요일이었다.

비가 온 것을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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