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늘 다니는 길 가의 커다란 나무들의 잎 새로 일렁이는 햇살의 찬란한 조각 같은 것.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 짧은 순간으로 끼워져 있어 사진이나 영상을 남길 새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하지만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해져 절대로 잊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마음과, 나는 분명히 이 순간을 그리워할 거라는 확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평범해서 분명히 잊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슬픈 예감이 함께 드는 순간들.
지난 주말, 친정 부모님 댁에 놀러 갔다. 일주일 차이인 친정엄마와 우리 아이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려고 케이크를 사 들고. 딸과 손자와 사위가 케이크를 사 왔으니 부모님은 커피를 준비하셨다.
나는 식탁에서 케이크를 꺼내 앉아 있고, 아빠는 핸드 드립을 위해 커피콩을 드르륵 드르륵 갈고, 엄마는 물을 끓이고 찻잔을 준비하셨다. 우리 아이는 그 옆에서 냉장고 자석을 갖고 이야기를 만들며 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노래를 부르며 촛불을 불던 순간도, 케이크를 잘라 딸기가 많은 쪽을 아이에게 주던 순간도 아닌, 케이크를 먹기 직전에 커피를 준비하던 아주 잠깐의 평화로웠던 시간이 애틋해서 하루가 지난 지금 굳이 이렇게 기록한다. 잊는 것이 아까워서, 두려워서, 자식들에게 맛있고 좋은 것을 대접하고 싶어 하시던 늙으신 부모님의 마음이, 그 옆에서 재롱을 부리던 아이가 벌써 그리워서.
내가 먼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온다면, 그 순간을 얼마나 붙잡고 싶을까. 남편과 아이와 부모님을 꼭 껴안고 엉엉 울어 버리겠지.
생각해 보면 나는 늘상 그러한 순간들 속에 있다. 그런 순간들의 총체가 내 삶이다.
그러니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매 순간 살아야 한다.
안을 수 있을 때 꼬옥 안아 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