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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un Apr 08. 2023

네덜란드, 맛없어요

네덜란드에서 진정한 미식가로 거듭나는 법

자, 지금부터 눈을 감고, 네덜란드 음식이 어떤 것이 있는지 떠올려보자.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거나, 혹은 스트롭와플, 감자튀김 정도가 떠오르지 않는가?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음식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나라다. 미식으로 유명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네덜란드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관심은 때로는 조금 냉혹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이방인인 내 눈에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음식이란, 필요한 영양분을 제시간에 공급하는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선 나름대로 맛집만 찾아다니는 나름대로 미식가를 자부했던 내가 네덜란드로 유학을 결정하면서 네덜란드의 음식문화까지 미처 살펴보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이 나라를 내 운명으로 짝지어 주기 위한 신의 안배였을 것이다. (라고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동기들과 첫 점심시간, 나름 신경 쓴다고 곱디곱게 계란 샌드위치를 공들여 싸간 것이 무색할 정도로, 동기들의 도시락은 도시락통에 담겨있는 것도 아닌 지퍼락에 곱게 포개진 식빵 두장,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한 얄팍한 두께의 땅콩버터, 혹은 치즈 한 장이 전부였다. 더치 동기들의 도시락은 분명 내가 가지고 있던 유럽 미식에 대한 로망을 와장창 깨버리기에 충분했고, 김치 한 포기는 족히 들어갈 만한 반찬통(이걸 도시락통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진 모르겠다) 어떠한 고명도 없이 오로지 시판 소스로만 범벅된 토마토 파스타를 싸 온 독일인 동기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그들은 중학교 때부터 들던 내 작고 앙증맞은 도시락통을 신기해했으며, 나는 달랑 식빵 두장과 사과 한 개로 한 끼를 때우는 그들이 외계인처럼 보였다.(아니, 저것만 먹고 저 덩치가 유지가 된다고???)

더 신기했던 사실은, 심플한 점심식사에 익숙해진 나머지,  대부분의 더치사람들(적어도 내가 본)은 점심으로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을 굉장히 어색해하고 기피한다는 사실이었다. 더운 여름이 아닌 이상 뜨끈한 국물요리, 아니면 적어도 따뜻하기라도 한 음식으로 대부분의 끼니를 때우는 것이 익숙했던 나에게 네덜란드의 이러한 음식문화는, 유럽의 미식을 기대하고 온 내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일단 네덜란드도 유럽의 나름 전통 있는 국가이므로, 그들만의 전통음식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한다. 그 전통음식이라는 게, 대부분 감자를 이용한 음식 (감자튀김, 감자스튜) 혹은 튀긴 밀가루 음식이 (내가 보기엔) 대부분일 뿐.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부터 1월 즈음까지만 길거리 트럭에서 판매하는, Oliebollen이라는 음식은 한국에서 겨울철에 많이 먹는 붕어빵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다. 말 그대로 Olie(기름)+bollen(공), 공 모양의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겨 위에 슈가 파우더를 뿌려먹는 음식인데, 모양은 투박하지만, 튀기는 방식(즉, 튀기는 사람)에 따라 겉 바삭&속 촉촉의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겨울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길거리 간식이다.

(출처 : https://viatravelers.com/dutch-food/)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로써 인도네시아와 수리남을 지배했던 네덜란드인지라, 네덜란드에서는 인도네시아 음식과 수리남음식도 꽤나 유명하다. 덕분에 대부분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아시아 음식에 익숙한 듯하다. 위 사진에 리스트업 되어있는 바미 고랭(Bami Goreng)이나 사테(Sate)는 명확히 인도네시아 음식임이 틀림없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이주해서 네덜란드에서 살아온 세월이 오래된 만큼, 음식 또한 네덜란드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변형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지내면서 누리는 장점 중 하나는, 네덜란드 전통 음식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유럽 각국의 음식들을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but 고 퀄리티)으로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가성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말인즉슨, 납득할 만한 가격에 납득할 만한 퀄리티가 아니라면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싸다면 왜 비싼지, 그 이유를 납득이 될 때까지 따져보고 나서야 지갑을 열거나, 아니면 아예 닫아버리곤 한다. 이런 모습을 목격하게 될 때마다,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라고 스스로 납득하며, 때때로 눈과 귀를 막고 지갑을 열곤 했던 나 자신을 이런 데서 반성하게 될 따름이다.

외식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대신, 네덜란드 사람들은 외식을 그저 밖에서 한 끼 때우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외식은 그들에게  중요한 가족적인 이벤트인 동시에, 음식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보다 깊게 들여다보고 흡수하는 수단으로써 활용한다.


 네덜란드에서의 식사가 모두 비싸기만 한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외식을 할 수 있는 메뉴 중엔, 케밥과 같은 터키음식이나 팔라펠 같은 중동 쪽 음식들도 있다. 인플레이션의 영향이 있다 해도, 한국에선 아직 만원 한 장이면 김밥헤븐 등에서 김밥과 라면을 곁들여 그럭저럭 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만원 한 장이면, 8유로(현재 환율 기준, 한국돈으로 11000원 정도) 짜리 케밥 혹은 팔라펠 한 개 정도밖에 사 먹지 못하는데, 여기에 디저트로 카페 등을 간다면 기본 2~30유로(현재 환율 기준, 한국돈으로 27000~40000원 정도이다) 정도를 지출하게 된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한국보다 이상에 가까운 나라가 된다. 네덜란드의 마트는 한국 마트에 비해 물가가 꽤나 저렴한 편이며, 유학생이나 주재원 등의 expat들이 많기 때문에 일반 마트 내에서 아시아 식료품이나 식자재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외식료품은 다소 비싸긴 하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요리를 위한 면이나 소스, 혹은 나날이 라인업이 다양해지고 있는 한국라면 등은 다양한 음식을 시도해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감사한 일일 따름이다. (최근에는 집 앞 마트에 한국 초고추장까지 들어왔다! )


한국에서 지낼 때는 외식이 익숙했다. 마트물가와 해 먹는 것에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고, 같은 값이면 좀 더 맛있는(확실히 내가 한 것보다는 훨씬 맛있을 것이 분명한) 식당밥이 내 입에 더 익숙하고 편안했다. 하지만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할 때가 많았고, 먹어도 먹어도 속이 헛헛할 때가 많았다. 이런 이유였던 건지, 나는 한국에서 친구들과 외식을 할 때면 기본 3~4코스씩 달리곤 했다. 그 순서는 이러했다.


일단 점심

-->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시장구경 + 군것질

--> 다리 아프니까 카페 가서 자리 잡고 커피+ 디저트 케이크

--> 디저트 때문에 속 느끼하니까 얼큰한 걸로 저녁

-->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카페투어(혹은 칵테일이 맛있는 바)


이렇게 정리해 보니 저절로 반성의 마음이 저 끝에서부터 올라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이 모든 코스들이 끝나고 집으로 향할 땐 희한한 뿌듯함마저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네덜란드에서 이렇게 외식을 하고 다녔다면, 나는 이미 빈털터리가 돼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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