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여행 01 | 베를린의 귀여운 수호자
1920~30년대, 기술 혁신의 중심지였던 베를린은 급증하는 교통량으로 몸살을 앓았다. 특히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은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교차로였다. 빠르게 증가하기 교통량으로 인해 교통 체증 뿐 아니라 끊이지 않는 교통사고는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이에 베를린은 8m 높이의 신호탑을 세워 경찰관이 수동으로 교통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첫 신호등을 도입했다. 1937년에는 차량 신호등의 축소판을 보행자 신호등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체계적인 신호등 시스템은 부재했다.
1961년, 동베를린의 교통 심리학자 칼 페글라우(Karl Peglau)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신호등 디자인을 제안했다. '신호등맨'이라는 뜻의 암펠만은 독일어로 '작고 귀여운'이라는 의미를 담은 '센(chen)'을 붙여 '암펠만센(Ampelmannchen)'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암펠만(Ampelmann)은 특히 시력이 약한 노인이나 어린이를 위해 색상의 면적을 최대화했다. 정면을 보는 붉은 사람의 경우 굵은 팔을 사용하여 '멈춤'을 강조했고, 역동적인 팔과 모자의 방향은 앞으로 갈 수 있는 '전진'의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그 결과, 배가 볼록 나온 귀여운 모습의 암펠만이 탄생했다.
그러나 독일 통일 이후, 동독의 모든 시스템은 서독의 것으로 대체되었고, 암펠만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994년, 독일 정부는 암펠만을 서독의 평범한 신호등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암펠만을 지켜낸 것은 디자이너 마르쿠스 헥아우젠(Markus Heckhausen)이다. 그는 훌륭한 디자인이 단지 동독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암펠만 조명으로 순회 전시를 시작한다. 또한 칼 페글라우와 함께 암펠만 상품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들의 노력은 잊혀졌던 '동독의 유산'에 대한 재조명의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1997년, 독일 정부는 동베를린 지역에 암펠만을 존치하기로 결정했고, 암펠만은 동서독 통일과 화합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