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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May 16. 2023

홍대입구에서 서울역 가기

가장 빠른 선택은 공항 철도다.

지하철 문 앞에 서서 가는데 바로 뒤에서 여자사람이 천장에 붙은 노선도를 한참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잠시 뒤 또 다른 여자 사람이 가세해 노선도를 보더니 둘이 뭐라고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베트남어였던 것 같다. 그 옆에는 귀여움이라면 빠지지 않을 꼬마 숙녀도 있었다.


그들은 의논을 하다 제일 가까이 있는 내 등을 건드렸다. 동남아 악센트가 강한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서울 스테이션'이라는 단어가 귀에 쏙 들어왔다. 홍대입구에서 일산 쪽으로 향하는 경의중앙선에서 서울역을 찾아야 하는 미션이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의중앙선에서 서울역을 갔던가?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경의중앙선을 타고 서울역에서 내렸다가 서울광장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노선도를 보니 가좌역에서 갈아탔어야 했는데 이미 지하철은 수색역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빠른 방법은 내려서 반대 방향으로 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외국인이었다. 서울역 방향과 용산역 방향을 잘못 타면 또 난감해질 게 뻔했다. 결국 그들을 낯선 수색역보다 익숙한 다음 역으로 데려가 지하철을 태워 보내기로 작정하였다.


다음 역에서 내려 서울역 방향 대기실까지 데려다주고는 앱을 실행시켜 다음 열차가 오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도 알려주었다. 그제야 미션 완료라 생각하고 떠나려는데 그들이 '스탑'을 외쳤다. 시간이 빠듯했는지 그 사이 택시를 불렀고 택시가 오는 곳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머리는 회전을 하였다. 택시를 탄다고 서울역까지 빨리 간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려면 10분 이상 남은 지하철을 계속 기다리게만 할 수도 없었다. 결국 택시가 오고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해주는 게 최선이었다.


택시를 태운 뒤 기사 아저씨에게 서울역으로 향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일행과 손을 흔들며 웃는 얼굴로 보내기는 하였으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서울역에 몇 시까지 가야 하는지 모르지만 이미 늦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하철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홍대입구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제일 빠른 길은 공항철도를 타는 거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가끔 흔하지 않게 경의중앙선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서부터 그들의 대혼란은 시작된다.


공항철도 노선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사람들이 2호선이 아닌 경의중앙선으로 올라오는 이유는 노선상으로 가장 짧아 보이기 때문이다. 2호선을 타고 1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총 6 정거장을 가야 하지만 경의중앙선을 타면 3 정거장 밖에 되지 않는다. 이건 낯선 이들에게는 대놓고 함정이다.


말이 3 정거장이지 경의중앙선의 배차는 체감상 일반 지하철의 약 3배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더군다나 홍대입구에서 가좌로 갔다가 다시 서울역 방향의 경의중앙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는 것도 한참인데 가좌역에서 한 차례 또 갈아타야 하니 노선표만 보고 경의중앙선으로 온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코스가 되고 마는 것이다.


실제 '네이버 지하철 노선도'에서 체크해 보았다. 공항철도를 이용하면 7분인데, 경의중앙선을 이용해 가좌역을 거쳐 서울역으로 가는 시간이 무려 37분이나 된다. 이는 대기 시간이 다소 축소된 시간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실제는 더 걸릴 수 있다. 2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는 코스는 12분이다. 데이터 상으로만 보더라도 홍대입구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경의중앙선은 끔찍한 노선이 되고 만다. 이걸 누가 타겠냐고 묻겠지만 처음 오는 사람들은 탈 수 있는 구간이다.


서울역으로 가는 경의중앙선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홍대입구 역무원들이 초보자들을 위해 적극적인 안내를 해준다면 끔찍한 노선을 선택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나와 같은 오지라퍼들에게도 숙제를 덜 떠안아주게 될 터이니 그 또한 고마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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