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땐 모든 게 붕괴된다
현관문을 나서다 문득 허전함을 느낀다.
'마스크?'
다시 되돌아 마스크를 찾으려는데 선크림이 눈에 띄었다.
'아, 선크림 안 발랐지.'
선크림을 얼굴 군데군데 바르고 나서 다시 현관문을 열고 닫으려는데 또 낯선 시원함과 익숙한 망각이 교차하였다.
'아차, 마스크'
마스크를 착용하러 되돌아갔는데 정작 마스크는 안 하고 선크림만 바르고 나온 것이다. 다시 마스크를 챙기고 집을 나서며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홀로 썩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엊그제 마셨던 알코올의 후유증인지 아니면 노안이 오는 것처럼 슬그머니 발동하는 노화 증세의 하나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생각해 보면 어린 날에도 가끔은 이랬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 놀랄 일은 아니다.
전에도 그랬는데 뭐.
기상이변도 그렇다. 기상이변에 따른 더위와 폭우라고 하지만 요즘 날씨들은 대부분 똑같은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몇 십 년 만의 더위와 몇 십 년 만의 폭우라고 하지 않던가. 몇 십 년 전이면 이런 더위도 이런 폭우도 지금의 북극이 녹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 아닌가. 그런 일이 있었던 몇 십 년 동안 지구는 평안하게 잘도 돌고 돌았으니 앞으로도 잘 돌고 돌 거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잦아지면 그건 아무리 전에 그랬다 쳐도 심각한 일이 된다.
아직은 난생처음인 심각한 상황의 기상이변이 일어나진 않았으니 그래도 기회가 있지는 않을까? 뭐라도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땐 모든 게 붕괴된다.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인지 말 것인지 분명 선택을 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길을 계속 간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안 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