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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Nov 08. 2023

200일을 매일 달린다는 것은

감기가 2주째 낫지 않고 있습니다.


기침때문에 잠을 설친지가 한참 되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다보니 일어나는 시간이 6시에서 7시로 늦어졌습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거실로 나가면, 한쪽 구석에 정성스럽게 챙겨놓은 운동복과 양말이 보입니다. 옷을 입고, 양말을 신기 위해서 바닥에 주저 앉습니다. 양말을 다 신었으면 이제 일어나야 하는데 말이지요. 아직 해는 뜨지 않았고, 어제보다 더 기온은 내려갔습니다. 아 나가기 싫다. 하루만 쉴까. 딱 하루만 쉴까. 를 수십번 고민하다가 시간이 30분 이상 흘러갑니다. 이 이상 여기서 무의미한 시간을 지체하면 아이도 잠에서 깨서 일어나고, 어영부영 하루가 시작되면 오늘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쳐버린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 집니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갑니다.


날씨가 차가워졌으니 준비운동은 더 꼼꼼히 합니다. 밤새 굳어있는 목과 팔, 허리와 다리의 관절을 풀어주고는 천천히 달리기 시작합니다. 집 앞 골목을 지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서울대 입구방향으로 향합니다. 7시가 넘어서 길에는 이미 출근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8차선 차도에도 차가 꽉 막혔구요. 그 복잡한 아침시간의 길을 빠르게 지나칩니다. 그렇게 1km 정도를 달리면 서울대 입구에 도착합니다. 건널목의 신호를 기다리면서 숨을 고릅니다. 파란불이 켜지고, 다시 천천히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는 서울대학교 캠퍼스로 향하는 언덕길에 접어듭니다.


언덕길은 늘 힘이 듭니다. 이 언덕길이 힘들어서 항상 이 코스로 달리는 것을 주저하게 되지요. 1km 정도의 거리의 언덕을 끝까지 달리기 위해서는 속도를 좀 줄여야 합니다. 평지를 달릴 때 보다 숨이 더 차고, 다리는 무겁습니다. 이 구간에서는 걷고 싶은 유혹을 참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이때 멈추면 왠지 계속 멈추고 싶을 것만 같습니다. 숨을 더 크게 쉬어서 몸안에 산소를 불어 넣고는 발 밑의 땅만 바라보고 달립니다. 발 밑에 보이는 보도블럭의 모양,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의 신발, 떨어져 있는 낙엽들이 보입니다.


그렇게 힘든 언덕길을 통과하면 내리막길을 마주합니다. 이때 숙였던 고개를 들고, 다시 크게크게 숨을 들어마셔서 거칠어진 숨을 다듬습니다. 내리막길에서는 무릎을 다칠 수있기 때문에 보폭을 줄이고 배와 허리에 힘을 줍니다. 이 때가 되어서야 길 주변에 심어져 있는 나무와 차고 시리게 푸른 하늘이 보입니다.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하는 구간이 되면, 달리기의 1/3 정도를 통과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내리막길을 달려서, 서울대 정문을 지나, 대 운동장 안으로 들어섭니다. 탁 트인 넓은 잔디밭과 트랙, 그리고 멀리서 이 캠퍼스를 품고 있는 관악산이 가깝게 보이기 시작하면, 일종의 해방감이 느껴집니다. 이 트랙에서 4km 정도를 달립니다. 운동장 한바퀴가 500m 정도가 되니까 8바퀴 정도를 도는 셈이지요. 트랙에는 언덕처럼 힘들고 불규칙적인 구간이 없어서, 일정한 속도로 달릴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일종의 명상과 같은 상태에 접어듭니다. 머리속에 있는 온갖 걱정, 불안, 잡념 들은 호흡에 집중하면서 달리는 행위에 몰입하게 되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5km 정도가 넘어가면 점점 힘들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합니다. 그때가 되면, 제 스스로 이렇게 되뇌입니다. '힘들다고? 거짓말 하지마. 너는 아직 안지쳤어. 니가 니 스스로를 멈추게 하지마.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달리는 거야' 라구요.


그렇게 타협하고 멈추려는 제 자신과 투닥이다 보면, 트랙에서의 달리기가 끝이 납니다. 이제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3km 정도의 구간이 남았습니다. 오르막길이 다시 시작되고, 다시 내리막길을 접어듭니다. 오늘 달리기가 마무리되는 구간에 접어들면 이렇게 달리고 있다는게, 달릴수 있다는게 감사하다는 하나의 생각이 둥실 떠오릅니다. 


오늘로, 달리기를 매일 하겠다고 결심한지 202일이 되는 날입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을 달리기로 열었습니다. 매일 아침을 운동하기 싫은 나와 싸워서 승리하고, 그만뛰고 싶은 나와 승리하면서 202일을 달렸습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건강도 되찾았았고, 마음의 평화도 얻었습니다. 새로운 일과 새로운 도전은 제가 달리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달리기 처럼 쉬지 않고 200일이 같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흔들림 없이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과 자존감이 올라갑니다. 무엇이든 시작하고 도전하는 것이 무서웠던 저는 이제 멈춘다는 것, 포기한다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달리기가 저를 그렇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달리기라는 녀석을 만약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다면, 꼭 껴안아주고 늘 고마워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침에 통과했던 서울대 입구의 대로변 길을 지나 집으로 향합니다. 아침보다 몸이 많이 풀려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달리는 속도가 조금 빨라집니다. 달리는 자세와 발을 딛는 위치를 신경쓰면서 달리다가, 옆에 있는 건물의 유리에 비친 달리는 나를 바라봅니다. 달리기라는 녀석은 형채는 없지만, 달리는 나 자신은 지금 이 순간 이공간에 존재합니다. 달리기라는 녀석을 만지면서 껴안아 줄 수는 없지만, 달리는 나에게 정말 장하다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고맙다고 말할 수는 있지요.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조용히 중얼거렸습니다. 앞으로 300일, 1000일, 10000 일, 아니 죽는 날 아침까지 쉬지 않고 달릴 나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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