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운동복을 입고 집 밖으로 나와 준비운동을 하고, 출발하기 전에 늘 갈등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코스로 달릴 것인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달린지 이제 180일이 다가오는데도 이 갈등은 쉽게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몸을 풀면서도 결정을 못해,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적이 있을 정도이지요. 저같이 결정은 빠르게 후회와 사과도 빠르게 하는 성격으로서는 제 스스로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지요.
첫번째 코스는, 제가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늘 달렸던, 보라매 공원 코스입니다. 넓고 쭉 뻗어있는 산책길과, 나무들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오솔길과, 가슴이 뻥 뚤리도록 시원한 잔디밭을 둘러싸고 있는 트랙과, 작은 호수까지 갖춰져 있는 곳이지요. 녹지가 없는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쉽터이고,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요.
제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때, 보라매공원의 트랙에서 시작했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바퀴를 돌고 헥헥거렸던 날, 아주 짧은 언덕길을 달려 올라가면서 희열을 느꼈던 날, 겨울비가 으슬으슬 하게 내리는 아무도 없는 트랙에서, 하루도 쉴수 없다는 일념으로 우산을 쓰고 달렸던 날, 푸릇푸릇한 나무가 우거진 큰 산책로를 달리면서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 감정을 느꼈던 날들을 모두 간직한 공간이었지요.
저는 이곳을 너무 사랑하지만, 딱 하나 힘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간 대비 너무 많은 사람의 수 입니다. 새벽 5시에 가도 운동하는 사람이 차고 넘칩니다. 달리다가 리듬을 깰 만큼 진로를 방해받거나, 큰 음악을 틀어놓고 에어로빅을 하시는 어르신들,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서 막걸리를 드시고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때는 숨이 차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체력이 조금 올라오니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하고 불편하고 거슬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이 곳을 달리고 오면, 운동 후의 상쾌함과 무언가 모를 답답한 마음이 공존하는 것을 느낍니다. 달리기 페이스도 평소보다 빨라지고요. 아무래도 빨리 목표량을 뛰고 이곳을 벗어나야지 하는 마음에 빨리 달린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 곳으로 향하는 길도, 사람과 차가 뒤섞여 있어서, 전반적으로 평안한 운동이 어렵게 된 코스 입니다.
두번째 코스는 집에서 출발해 서울대를 도착, 서울대 운동장을 돌고 다시 집으로 오는 코스입니다. 봉천역에서 조금 떨어진 집에서 출발해서 서울대입구 역을 지나, 언덕을 1km 정도 오르면 서울대 정문이 나타납니다. 그곳을 지나 운동장으로 들어서서 넓은 트랙을 10바쿼 돌고, 다시 언덕을 넘어서 집으로 돌아오면 10km 코스가 됩니다.
이 코스의 명확한 단점은, 언덕이라는 점입니다. 잠도 깨지 않은 상태에서 언덕길을 1km 정도 뛰어올라가다 보면, 벌써 에너지의 절반정도를 소진하게 됩니다.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싶은데, 초반에 에너지를 다 써 버리니 막상 탁 트인 평지의 트랙에 도다르게 되면, 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 집니다. 그것을 이겨내야 하는 점이 이 코스의 단점입니다.
반면에, 장점은 너무 많습니다. 일단 달리는 코스 내내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봉천역, 서울대입구를 지날때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내리는 승객들의 무리가 잠시 스쳐 지나갈뿐, 그 이후에는 사람을 마주칠 일이 거이 없습니다. 서울대 운동장은, 웅장한 관악산의 품안에 들어선 공간으로, 달리고 있으면 넓은 들판을 뛰어다니는 한마리의 사슴이 된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이 크고 넓은 공간에 고작 5명정도의 사람만이 있어서, 많은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습니다.
또, 달리기중 마주치게 되는 화장실 신호에 허둥거릴 필요 없이 화장실이 인접해 있고, 트랙에서 달리는게 지루하다면, 서울대 캠퍼스를 크게 도는 것도 정말 재미있는 코스가 됩니다.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동이 터오를때 환하게 쏟아지는 햇빛과, 간간히 들리는 딱다구리 소리, 이름모를 새소리가 들리는 곳입니다. 달리고 오면 등산을 다녀온 느낌이 나지요.
그래서 대부분 서울대 코스를 가고 싶지만, 전날 일정이 너무 힘들었거나, 체력이 따라주지 않거나, 오늘은 왠지 평지에서 평안하고 천천히 달리고 싶을때는 보라매공원을 다녀오는 코스를 택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심하다 보니 보라매공원을 달리고 오면 후회가 많이 되네요. 그래도 달리기 첫정이 묻어있는 장소라서, 쉽게 포기가 안되는 코스입니다.
보라매공원 코스는 출발은 평안하지만 막상 도착했을때 후회가 많이 되고, 서울대 코스는 출발부터 후회가 되지만 과정의 중간과 끝에서는 큰 만족감을 줍니다. 저의 경우, 달리기 시작 초반의 체력소모라는 어려움만 참아내면, 그 만족도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제 삶도, 쉬워보여서 선택했던 길에서 숨어져 있던 수많은 변수와 골치아픈 요소들이 후회되었던 적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어려워 보이는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지요. 힘들것 같은데 하고 망설였던 길로 뛰어들었을 때는 오히려 과정이 편하고 결과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어떤 코스로 달릴까를 고민하는 요즘, 저는 저를 잡아 끌듯이 서울대로 향합니다. 그리고, 젊은 청춘을 힘겹게 살아내서 이제 좀 편해지면 어떨까를 망설이는 저에게, 누가 봐도 힘들어 보이는 길로 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중입니다. 달리기에서 증명하듯이, 어려워 보이는 길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고 믿어가는 중입니다. 과거에 얼마나 힘들었던간에, 아직은 쉴 수 없고 전진해야 하는 시기라소 그런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매일 일상에서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시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