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Rid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ㅇㅇ Oct 30. 2016

콘크리트를 목도하다

서울 택시_역삼역

한 방송사의 특종 보도로 몇가지 사실이 밝혀졌다. 많은 이들을 갸우뚱하게 만들던 특이한 워딩들, 정말로 이상하리만치 외부와 단절되어 서면보고만 받던 모습들, 뜻모를 인사와 특정 분야에 지나치게 치우친 예산 편성 및 집행.. 배후에 누군가가 있었다, 라는 비교적 온건한 입장에서부터, 혼자 힘으로 해낸 것은 펜을 세운 일 뿐, 이라는 해학적 짤방까지... 국민 대 통합의 염원이 거의 이루어진 듯 한 요즘이다.


B_"저는 장업계의 누님들만 만나면 무기력해져요. 오늘은 A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A_"왜이래요, 잘하면서.. 좀 특이한 분인건 사실이었지만.. 뭐 문제없이 잘 끝났으면 됐죠"


직전 미팅에 대한 평이한 대화가 오가는 와중, 기사님이 불쑥 끼어들었다.

기사님_"사람은 모두 특이해요, 나도 삼십년동안 한 직장만 다니다가 이렇게 저렇게 어쩌다 택시에까지 흘러들어 왔잖아요? 특이한 사람들이랑 같이 사는 방법을 익히는게 인생이에요.난 그렇게 생각해요"


뭐라고 받아야 할 지 몰라 망설이는 가운데 B가 화제를 돌렸다.

B_"근데 진짜 궁금하지 않아요, 이 여자? 정말 대통령을 이용해 한탕 해먹으려는 생각뿐인건지, 아니면 진짜로 똑똑해서 그녀를 완벽하게 조종한 건지.. "


A가 말을 받기도 전에 기사님이 또 끼어든다. 그는 이미 대화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기사님_"거 젊은 사람들 보면 웃기지도 않아요. 아니, 이미 뽑아놓은 대통령을 갖다가 뭘 어쩌겠다는 거예요, 나 참..전임자들은 더했어요, 더 한 것도 했는데.."

B가 나섰다.

B_"전임자들이 더 한 일을 했다고 해서 이번 일이 아무 일도 아닌건 아니죠."

기사님은 B가 자신의 말을 받아준 것이 기뻤던 걸까?

기사님_"아니, 그렇잖아요? 이미 뽑았는데, 일년도 안남았는데 이제와서 뒤흔들어서 뭘 어쩌겠다는 거예요. 그럼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가 끝까지 힘을 실어 줘야.."

B_"가만히 있으면 안되죠. 그럼 나라가 망하죠."

기사님_"내가 공직에 있어봐서 알아요. 30년동안 공직에만 있었는데..전임자들은 더한짓도 수두룩하게 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뭘 어쩔거예요? 이번 일은 아무 일도 아닌거예요. 아무 문제 없잖아요? 누구랑 상의하든, 지시를 하든.. 우리가 믿어 줘야죠. 믿어 줘야 조용해지죠. 사람 인생이 그런거예요.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내가 봤을때는 그래요. 인생을 더 안다구요"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짧은 이동이었다. 기본 요금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기사님이 하고자 하는 발언을 모두 듣기 전에 우리는 목적지에 당도하였고 나는 말없이 티머니 카드로 결제한 뒤 하차하였다. B가 말했다.

B_"와아...진짜...저런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제가 만나게 될 줄이야.. 아이구,불쌍하잖아..대통령 꼭 됐음 좋겠어, 제발..이렇게 말하던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했네요. 제가 더 말했다가는 저 아저씨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오고 발암 유발할지 몰라서 꾹 참고 있었는데.. 저 담배 한대 피고 올라갈게요 먼저 가 계세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 소설보다 더 황당한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었나보다. 막장 드라마가 지독한 리얼리즘이었다니 작가의 재평가가 시급하다. 기사님은 운전을 거칠게 하지도, 다짜고짜 반말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하루 종일 무기력했다. 장업계 언니들에게 기운을 쏙 빨렸다던 B보다 더 기운이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따뜻한 계절, 가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