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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Jan 24. 2024

비우면 비울수록 늘어나는

아이와의 시간, 워킹맘의 미니멀 육아.




우리 집의 거실과 주방 사이에는

누가 봐도 식탁을 두라고 설계해 놓은 듯한 자리가 있다.


천장에 달린 식탁등도

여기서 밥 먹으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은 곳.




청개구리 심보 가득한 나는

그 자리를 깔끔히 비워두고

6인용 식탁은 거실에 놔뒀다.



이 테이블에서

밥도 먹고,

책도 읽고,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식탁 두세요!라고 한 자리에 식탁을 두지 않아

어정쩡하게 빈 공간이 된 이곳은


도하의 놀이터가 되었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마다 놀라는

도하의 장난감 위치도

바로 이 빈 공간 옆!




냉장고 옆 주방그릇장 아래 서랍장을 열면




짜잔!

도하의 장난감이 나온다.



28개월 도하의 장난감은 여기 있는 게 전부다.


자동차를 너무 좋아하는 도하의 뛰뛰들과

작은 인형들이 담긴 공간.





여기저기서 선물을 받아

어느새 10대가 넘어간 도하의 자동차들.



도하는 식탁이 있었어야 할 이 자리에서

자동차들을 있는 대로 꺼내서

줄을 세우기도 하고,

살려주세요 놀이를 하기도 하고,

출동놀이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어린이집에서 '아띠랑 코코'라는 프로그램을 하며

받아오는 교구들을 꺼내 놀기도 한다.





어떤 날은 책꽂이에 책을 꺼내와

침실과 주방 사이의 문에 앉아서


같이 읽자고 막 웃으며 꼬시기도 하는데 되게 귀엽다.

ㅎ_ㅎ





얼마전에는

저녁을 차리려고 요리하는 동안 먹으라고

간식을 줬더니


여기 앉아서 빵을 먹으며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던 도하.





저녁 준비를 하는 시간,

설거지를 하는 시간,

아이 간식을 챙기는 시간 등

은근히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 편인데


그 시간 동안 도하가 멀지 않은 곳에서 놀며

항상 나에게 말을 건다.



공간을 비우고

빈 공간에서 아이가 놀 수 있게 해 줬더니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마트에 가면 도하도

줄 세워져 있는 자동차들에 환호를 하고,

뽀로로에 소리를 지르고,

타요를 보며 눈이 빛나기도 한다.


사달라고 하는 건지 그냥 반가워서 하는 건지 잘 모르는

어른인 나는 그런 도하를 보면

웃으면서 인사를 하라고 하고,


도하는 '안녕-'하면서 뽀로로, 타요들과 작별한다.



한 번씩 장난감을 사기도 하지만,

우리 집엔 애초부터 내 돈 주고 산 장난감은 거의 없을 정도로

정말 가끔 사는 편이다.


그리고 선물을 받아 새로운 장난감들이 들어오면

받은 만큼 있던 장난감들을 비워낸다.




ebs 다큐 하나뿐인 지구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좋은 놀잇감이지만

그와 더불어 어른들을 위한 물건이기도 하다.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조금의 여유를 만들고 싶은 어른들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최고의 물건.


그니깐,

굳이 많을 필요가 없다.



장난감의 개수보다

가격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와 함께 노는 시간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도하는 아직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 그 자체를 더 좋아하고

특히, 몸으로 노는 걸 좋아한다.


비행기 태워주는 거,

숨바꼭질하는 걸 제일 좋아함!

그리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 

아주아주 많이! 좋아한다.





오늘 도하와 딸기를 먹으며

해가 지고 있는 하늘을 바라봤다.


와 예쁘다-


라고 감탄하는 도하가

나와 같은 걸 보고 예쁘다 하는건진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우리가 장난감만 가지고 놀았다면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반짝 반짝이는 트리의 조명을,

수조 속에서 늘 우리를 반겨주는 열대어들을



한참 바라보며 예쁘다는 감탄을 했을까 싶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게 해주는

미니멀한 삶,


참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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