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주 Jan 17. 2024

2천만원으로 결혼했다.

어쩌다 보니 미니멀 2




연애한 지 1년쯤 됐을 때 사회초년생이던 우리는 모은 돈이 거의 없었다.


특히, 타지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내 남편은 

나보다 더 모은 돈이 없었는데 

그래서 더 빠르게 결혼을 결심하기도 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남편이 모은 돈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는데 

그게 500만 원이었다. 


그걸 보니 

남편이 혼자 돈 모으는 걸 기다릴 바엔 

결혼을 해서 같이 모으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 통장을 보며 바로 결혼결심을 했다. 



내가 모은 돈은 이것보다 조금 더 있으니깐 이 돈으로 결혼하자.




남편 돈 오백에

내 돈 천 오백,

둘이 합쳐서 이천만 원으로 시작한 결혼 준비.




일단 집이 문제였다.


월세로 살까,

전세로 살까,

전세대출상품이 있나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중소기업 청년전세대출이란 제도를 찾은 우리.


2,000만 원이 있으면 8,000만 원이 더 대출이 되고, 이율이 1.2%인 상품이 있다고?

보자마자 함께 소리를 질렀다.


와 이거다!




이 대출을 찾자마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 남편은 당당하게 돈을 빌렸다.


나 결혼하려고, 투룸 전세로 갈까 생각 중이니깐 2,000만 원만 빌려줘.



갑자기 전화해

정말 뜬금없는 시간에

돈 빌려달라는 아들에게

어머님은 알겠다며 기꺼이 빌려주셨다.


(이 돈은 결혼식 이후 남편이름으로 들어온 거액의 축의금으로 거의 다 돌려드렸다.)





작은 드레스룸도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돈을 빌리고, 구한 14평 전셋집.


우리가 구한 풀옵션 투룸오피스텔은 

신혼집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가전제품은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되고, 

필요한 가구만 사면 되는 곳.






남들은 결혼 안 한다는 3월 중순,

결혼 비수기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27살의 돈 없는 신혼부부는

나름 원하던 곳에서 결혼식도 했고

신혼여행도 원하던 곳으로 갔다.




프라하에서 매일 20000보씩 걸어 다님 ㅎ_ㅎ



이전 글에서

어쩌다 보니 미니멀라이프를 만났다고 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이전부터 꽤나

미니멀하게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취업을 하고 나선, 

늘 65%~70%씩 저축을 했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두고 있었다.


모으려고 모은 건 아니었는데

20대 중반의 나는

가지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비싼 가방,

비싼 화장품,

비싼 신발도 한 번을 산 적이 없었네;;



운전을 하고 싶어 

자동차 한번 질렀던 적 말고는

딱히 사고 싶은 마음 자체가 들지 않았다.



당시 아이폰을 쓰던 남편이 

내 핸드폰을 보고 놀랬던 적이 있는데,

그때 갤럭시에서 나오던 보급형 핸드폰, a7인가?

어쨌든 그걸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안 쓰던 아이폰을 준 적도 있었다.

물론 아이폰이 불편하다며,

다시 나의 갤럭시로 돌아갔었지만 ㅎㅎ



결혼식 로망,

신혼여행의 꿈,

신혼집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게

어쩌면 당연했던 것 같다.




굳이 따로따로 연애하면서 살아도 되는데,

내가 결혼을 한 이유.

그냥 좋아서-


내가 뭘 하든 응원해 주는 사람이라

뭘 해도 두렵지 않았다.


혼자 다니던 길을

함께 걷는 게 너무 좋았다.



그냥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 마음 하나로 결혼을 한 거다.





연애하면서 여기저기 참 많이 돌아다니고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고

값싼 렌터카를 대여할 수밖에 없었어도

늘 행복한 우리가 참 좋았다.






가진 게 하나 없어도

서로를 충분히 채워주는 관계.



대단한 집이 아니었어도,

좋은 가구 하나 들이지 않았어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는 게 

참 좋았다.






남편에게 자주 했던 말이 있는데,


지금 없는 돈은 당연한 거라고

지금은 젊으니깐 괜찮은 거라고,


잘 벌고

잘 쓰고

잘 저축하면


몇 년 뒤에 충분히 아이도 낳고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신혼생활을 하며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진 않았다.


허리띠를 졸라 맨 적도 있었지만,

과정들은 꽤나 즐거웠다.



누구보다 잘 살아야지,

누구만큼은 살아야지 하는 비교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지에 집중하던 생활들.


그래서 매일같이 집밥을 해 먹고,

한 번씩 떠나는 여행에 너무 즐거워했으며,

주말마다 소소하게 다니는 데이트들에

만족하는 즐거운 신혼생활을 할 수 있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유지하며,

더 들이려는 생각도 비우고

더 살려고 하지도 않고

버는 돈을 참으로 잘 저축한 우리는


2년 뒤에

이사도 갔고, 

임신도 했다.





이제 막 28개월이 다 되어가는 아이와 셋이

59A타입, 25평짜리 집에 산다.



남들이 들으면 

뭐 대단히 좋은 집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구구절절 글 쓴다고 유별나네

라고 할 수 도 있지만,


앞으로 더 이상 평수를 늘릴 생각이 없는

우리 가족에게

25평짜리 집은

그 어느 곳 보다 충분한 곳이다.



이 집까지 오는 길에

참 많은 마음 수련을 하며 왔다.



우리 부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남들처럼 사고싶은 욕구들이

있는게 당연하다.


사라고 사라고 매일같이 광고하는 상품들을 

마주칠 때마다 

필요한 물건이 아니다를 수없이 되뇌었고,

사고 싶은 차에 대한 욕망을 비우며,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뭔지

우리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를 

늘 되뇌었던 나날들.





내가 살아 나가고자 하는 길이 어딘지

어느 뱡항인지를 분명히 알았다면

좀 힘들더라도

그 방향을 고수해야 하는 힘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욕망을 버릴 수는 없고 욕망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갖고 있는 욕망이나 집착이 당신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그것은 버리는 게 맞습니다. 마음의 지방을 조금 떼어낼 수 있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실감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일상을 심플하게'_ 마스노순묘 




아무것도 없이 결혼을 한 우리는

지금도 뭐 대단한 건 없지만

그때보다는 뭐가 좀 많아졌다.



없던 집을 소유하게 되었고,

차도 소유하게 되었고,

그만큼 대출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함께 따라와

신경 쓸게 많아진 삶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그때보다 

지금이 더 자유롭다.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의 집에서 

넉넉하게 살 수 있는 지금이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의 돈만 쓰며

넉넉하게 저축하는 지금.



앞으로도 지금처럼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을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성심성의껏 살아가다 보면 



우리다운 미니멀라이프가

지금처럼 우리의 자유를

유지시켜 주지 않을까-




욕망이 점점 부풀어가면 만족을 모르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더라도 또 새로운 것이 갖고 싶어 집니다. 절대 만족에 이르지 못합니다. 영원히 만족할 줄 모르는 인생, 그것을 행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답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일상을 심플하게'_ 마스노순묘 
















이전 04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