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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례에서 시어머니를 훨씬 가깝게 느꼈다

자기 맘대로만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딨겠냐고 지피티에게 상담을 받았다

by 여름의 속도

우리 집은 겉으론 조용했지만, 늘 긴장감이 흘렀다. 엄마는 명확히 요구하기보다는 혼잣말처럼 짜증을 냈고 아빠는 주로 방에 들어가 계시고 가끔 신나는 기분파였지만 가끔씩 버럭 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자랐다. 어떤 말이 누굴 건드릴까, 어디까지 말해야 안전할까. 그냥 대답하지 않기를 선택하기도 하고 고민이 있어도 혼자 해결해 버릇했다. 그랬더니 지금까지도 “넌 네 맘대로 살았잖아.”라는 소리를 밥먹듯이 듣는다. 지금까지도. 정작 감정을 휘두른 건 엄마와 아빠였는데, 왜 나만 ‘감정 과잉’이 되는 걸까.


그 말들은 내가 감당하며 살아온 모든 시간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워버렸다. 내 모든 결정엔 이유가 있었다. 나는 늘 나 오롯이 감당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대답하지 않았던 날들, 그저 웃고 넘겼던 장면들, 오히려 과장되게 짜증 냈던 것들 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다. 부모님은 세상을 정해진 규칙과 틀 안에서 보셨다. 조용히 따라가야 맞는 삶이고 그 틀에서 어긋나는 건 문제라고 여겼다. 나는 그 기준 안에서 살아야 했고 나름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아주 파격적인 사람이 되곤 했다.


그런 나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정확히 알아본 사람이 있다. 상견례 자리에서 시어머니는 말했다.

“많이 맞춰주고 살았네요.”

그 한마디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조심하며 감정을 눌러 살아왔는지를 묵묵히 짚어주는 말 같았다. 시누이는 자신이 엄마 껌딱지라고 한다. 아무래도 말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지. 나도 시어머니가 좋다. 판단보다 이해가 먼저인 분이다. 조용히 사람을 읽고, 그걸 말없이 감싸주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걸, 그런 어른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어쩌면, 그분도 나처럼 오래 참아온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어느 날 “시어머니가 널 그냥 내버려두니?”라고 말했을 때 또 말문이 막혔다. 사람이라면 서로 존중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이상했다. 사람의 사이에서는 판단이나 규율이 필요하지 않다. 간섭과 잔소리 없이도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게 더 건강한 관계 아닐까. 무슨 대답을 바라는 걸까. 그냥 익숙하지 않은 걸까.

아빠는 아직도 늘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한다.

“하기 싫어도 해야지.”

“요즘 애들은 너무 계산만 해.”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계산하고, 자기 몫을 지키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윽박지른다고 따르지 않는다. 공공이란 그런 사람들을 움직이는 자원을 분배해야 하는 주체다. 사적 영역부터 공공의 영역까지 너무나도 다른 세상을 살게되었다. 땐 좀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나는 늘 감정을 참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조절하며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넌 맘대로 살았다”는 말은 참 억울했다. 그래서 나는 선언해 본다. 나는 사람의 감정을 빠르게 읽고, 그에 맞춰 반응해 온 사람이다.



여기서부턴 이런 상황에 대한 챗지피티의 해답


왜 항상 “나만 유난”이 되는 걸까?

1. 그 집안의 '기본값'이 침묵과 회피이기 때문이에요.


누구도 진심으로 감정을 마주하거나 갈등을 건강하게 풀어낸 적이 없기 때문에 말 꺼내는 사람은 곧 분위기를 깨는 사람으로 몰려요.

→ “왜 갑자기 그래?”
→ “그렇게까지 얘기할 일 아니잖아.”


2. 그래서, 당신은 늘 '혼자 감정을 짊어진 사람'이 된 거예요.


그들은 묵인하고 넘기는 걸 평화라고 여겼고

당신은 묵인하면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아서 말하려 한 거예요.

하지만 그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예민하다, 피곤하다, 너무 깊게 생각한다”는 프레임으로 돌아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야 할까?

말해도 바뀌지 않을 걸 알면서도, 왜 우리는 말하고 싶을까요?

그건 바꾸기 위함이 아니라 “나는 여기 존재한다”고 증명하기 위해서예요.


그래서 필요한 건 “싸움이 아닌 선언”이에요.

말할 때, 감정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그냥 “이건 내 감정이다”라고 선언처럼 짧게, 무표정하게 던지는 게 훨씬 효과적이에요.

예:

“그 말 불편해.”

“난 그걸 웃으면서 못 넘겨.”

“나는 다르게 느껴.”

이렇게 말하고 설명도, 기대도 하지 마세요. 당신은 설명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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