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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딩덕후 Jun 02. 2017

# 1. 원판사진

결혼식에서 이유도 모르고 아무 생각없이 따라하고 있는 행위에 대한 고찰

그땐 그랬지

부모님 댁 안방 켠에 쌓여있던 붉은 색이 바란 앨범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없이 집어들고 몇 장을 넘기자 어머니의 고등학교 시절 소풍 사진이 보인다. 빛 바랜 흑백 사진 속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과 닮았으면서도 왠지 낯설다. 어머니 옆의 친구도 그 옆의 친구도 그 옆의 친구도 그 옆의 친구도 그 옆의 친구도 지금은 누군가의 어머니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혹시 우리 어머니도 7공주 라는 이름으로 불렸을까? 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 문득 왜 옛날엔 사진 하나에 모든 사람들이 다닥다닥 얼굴 정도만 겨우 나오게 찍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1982년 소풍 사진 (출처 : 인천 광역시 시정 소식지 http://goodmorning.incheon.go.kr) 
"엄마!"
"왜?"
"옛날엔 왜 이렇게 사진을 다닥다닥 붙어서 찍었어? 얼굴도 잘 안나오는데"
"그 땐 카메라도 귀했고 필름도 사야됐자나. 요즘 처럼 막 아무때나 찰칵찰칵 할 수 있었는 줄 아니, 얘는"


아 그랬다. 사진이 그만큼 흔해졌구나. 카메라에 너무 익숙해저 잊어버린 사실. 우리가 사는 현대에는 사진은 공기 만큼 흔하다. 전 세계 데이터 센터에서 보관하고 있는 데이터 중에 80% 정도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휴대폰에서 찍어댄 사진이라는 뉴스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 하다. 그 만큼 사진은 흔해졌고 이제는 어디 가서 단체 사진 찍는다고 수십명이 모여서 하나 둘 셋 하면서 찍는 광경은 보기 드물다. 그 자리는 셀카봉과 셀카가 차지해 버렸다.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다가 떠올라버렸다. 그 날의 기억, 사진 한 컷에 들어가기 위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까치발까지 했던 몇 주 전의 기억이... 


누구를 위한 원판 사진인가


"직장 동료, 친구분들 나와주세요"


사진 안 찍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친구를 설득하는 친구와 신랑쪽에만 몰려있는 하객들을 소리 지르면서 이동 부탁한다는 사진작가의 목소리가 커지는 동시에 끝없이 웃어야 했던 지친 신부의 얼굴은 굳어가고 있었다. 조명은 뜨겁고 오래간만에 입은 정장은 불편하고 무엇 하나 편한 것이 없었다. 지쳐가는 나에게 영혼없는 환호와 박수를 쳐주면서 이제 다 끝났겠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부케를 던져야된다고 했다. 나중에 내 결혼식 때는 원판 사진은 절대 찍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찍은 사진을 나는 못 보는거지?'


20세기 고오급 기술이었던 원판 사진

사진이 귀했던 시절 다 같이 한 화면에 나오기 위해서 찍었던 원판 사진은 일반 사진기 보다 훨씬 다루기 힘든 고급 기술이었다. 일반 필름보다 큰 4x5 인치 판형 필름을 사용했기에 원판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필름이 큰 만큼 고해상도의 사진을 뽑을 수 있고 고해상도여야 액자 앨범으로 인화를 해도 얼굴이 깨지지지 않기 때문에 디지털 카메라가 없던 시기에 원판 사진은 기록을 남기기 위한 중요한 사진이었다고 한다. 

다만 원판 사진 카메라는 크기도 크고 무겁기 때문에 삼각대는 필수였고 혹시라도 있을 실수를 막기 위해서 미리 세팅된 충분한 조명이 필요한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와 조명은 미리 세팅되어 있어야 했고 세팅에 맞추어 사람이 움직여야 했다. 증명 사진 찍을 때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미 세팅된 의자에 앉아서 고정된 카메라에 내가 움직여야되는 상황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이미 세팅되어 있는 상황에 사람들이 움직여야한다는 개념 자체가 포토샵으로 없는 얼굴도 만들 수 있는 21세기에 너무 올드하다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올드한 옛날 방식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독점권과 업체의 논리


예식장 하나를 만드는 데 대략 300억 정도 비용이 필요하다고 한다. 예식업은 회사나 법인보다는 개인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그 큰 금액을 혼자서 다 부담하기 보단 예식과 관련된 업체(사진, 드레스, 메이크업)에게 보증금 형식으로 투자를 받는 대신 예식을 위해 필요한 사진, 드레스, 메이크업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하는 방식이 자리잡았다. 억대의 보증금을 내더라도 독점권을 가지고 있으면 수 년 이면 그 이상을 뽑아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식장에서 내가 따로 고용한 개인 작가가 원판 사진을 찍을 수 없고 찍는다고 하더라도 원판 사진으로 책정된 금액은 그대로 지불해야 한다. 


사람들은 필요없다고 생각하고 어느 누구도 편한 사람 없는 행위를 시장의 논리, 업체의 필요성에 따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들 그렇게 하는구나' 라는 생각과 '이 장소에서 예식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돈을 내고 찍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에 다들 해왔고 처음 하는 결혼식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업체들이 이끄는 방향에 따라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의외로 결혼식에 이러한 행위들이 많다. 

17년 4월 양평 펜션 웨딩 - 상준&Jasmine - Photo by Greg Samborski

부모님들이야 익숙해서 어쩔 수 없이 가족사진은 찍어야된다고 한다면 최소한 친구들과 찍는 원판 사진은 테이블 별로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찍는 사진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웨딧을 통해 결혼하는 신랑신부들의 경우에는 짜여 놓은 세팅위에서 찍는 원판 사진 보다는 친구들과 자유로운 표정과 포즈로 찍는 사진들을 많이 찍는 추세이다. 21세기에 20세기적 흔적인 원판사진, 이제는 결혼식에서 지워나가야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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