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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강민 Salawriter May 04. 2020

직장 3년 차, 다른 일을 하고 싶어 졌다.

4대*를 거쳐가는 여정의 기록(4편) *대학-대학원-대기업-대기업

많은 이들이 퇴사와 창업을 꿈꾸는 이 시대에 공학 박사 학위 취득 후 대기업에서 첫 직장 생활 시작, 그리고 몇 년 후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트렌드를 거스르며 대학-대학원-대기업-대기업의 4"대"를 거쳐가고 있는 과정을 기록해 봅니다.

(지난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스물아홉이었던 해에 외국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시작해서 석사, 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5년 후, 졸업하기 두 달 전에 국내 대기업 계열의 IT 회사로 취업이 결정되었고, 졸업식 1주일 후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 직원 수 7,000명 정도의 회사에는 컨설팅 전문 조직이 있었고, 200명의 컨설턴트 중 한 명으로 일하게 되었다.


나의 전공인 건축과 회사의 전문 분야인 IT를 접목시켜 스마트빌딩, 스마트시티 사업과 관련된 프로젝트의 리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점차 에너지, 환경 등 생소한 분야까지 일의 범위는 넓어졌고, 그룹 차원의 신사업 전략을 수립하는 프로젝트를 맡는 등 역할의 중요도도 높아졌다. 지주회사의 대표이사에게 직접 보고하곤 했으니, 겉으로는 잘나가는 듯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회사 생활에서의 고비를 이야기할 때 "3"이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한다. 입사 후 3년이 되던 해, 나에게도 마음의 동요가 찾아왔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 졌고, 이유는 두 가지였다.




직장 생활 3년 차, 다른 일을 하고 싶어 진 두 가지 이유


첫째, 내가 하는 일은 남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대기업 계열사이지만 그룹 안에서 IT 회사의 위치는 명백히 을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회사는 다른 계열사의 IT 업무를 대신하는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어느 계열사가 공장을 자율화하려고 하면, 그 공장의 기존 공정, 개선 목표 등을 파악해서 새로운 IT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하고, 운영해 주는 것이 본업이었다. 그리고 일을 준 계열사와 그 직원, 특히 IT 관련 사업(일정과 예산)을 관리하는 부서의 직원을 우리는 "고객"이라고 불렀다. XX화학 고객, XX전자 고객... 우리도 XX임에도.


물론 회사의 일이 단순하거나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내가 했던 "컨설팅"이라는 일은 고객의 숙제를 대신 맡아서, 고객보다 더 고민해서, 고객의 일이 잘 되도록 전략과 실행 과제를 만들어 주는, 지적이고 능동적인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주어지는 일의 분야와 상세한 내용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역량이었고, 어떤 프로젝트건 마칠 때는 고객보다 더 지식이 쌓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준 일을 한다는 것부터가 을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일이었다. 맡은 프로젝트마다 내 일처럼 여기며 일을 했지만 결국 나의 일이 아닌 건 어쩔 수 없었다. 일이 잘 마무리되면 원래 주인이 그 결과를 가져가서 성공하는 것이고, 결과물의 질을 떠나서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쓰레기처럼 버려지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일의 결과와 상관없이 나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맡아 다시 백지상태부터 일을 시작했다. 남는 것은 고객의 인사 한 마디였다.

고생했어요. 다음에 또 같이 일해요.


둘째, 일의 연속성이 없고 미래가 불확실했다.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는 기간이 3개월 정도인 일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고객이 어떤 사안을 급히 분석해서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만들어졌다. 그렇다 보니 오랜 시간을 주면서 차근차근 결과물을 만들어 오라는 프로젝트는 없었다. 더욱이 컨설턴트의 인건비가 한 달에 수 천만 원이었으니, 짧은 기간에 많은 성과를 원했고, 고객의 예산이 부족할 때는 1~2주 프로젝트를 혼자 하기도 했다.


물론 한 고객과 수년 동안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 역시 몇 개월짜리 프로젝트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단기 프로젝트로 일이 주어지다 보니, 매번 하는 일은 목적과 목표가 달랐다. 심지어 분야가 달라지기도 해서, 에너지, 광고, 환경, 테마파크 사업으로 전혀 다른 일을 연이어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조직의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나 : 연초에 작성한 저의 커리어 플랜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리더 : 일단 고객이 급하다고 하시니까 처리해 주자고. 그리고, 뭐든 하면 얻는 게 있잖아.


선배들 중에는 한 분야의 일을 오래 맡아온 사람도 있었다. 공공 기관을 상대로 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한 번 고객의 마음에 들면 책임자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으니 길게는 10년 가까이 특정 기관을 고객으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과연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이 풍부했다. 하지만, 언젠가 프로젝트에서 나왔을 때는 결국 다른 모든 일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고, 10년이라는 연차가 쌓이는 동안 한 가지밖에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결국, 나에게 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일의 연속성이란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에 무슨 일을 맡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매우 강했다. 나에게는 그랬다.




지금처럼 일해도 괜찮은 걸까?


그렇게 3년을 지내는 동안 한 가지 질문이 자꾸 떠올랐다.

이렇게 일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답은 점점 명확해졌다.  

뭐든 시키면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내 일은 남지 않고, 내일은 알 수 없다.


누군가 나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면 내 손은 비게 될 것 같았다. 직장인으로서는 두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넓은 안목과 긴 호흡으로 내가 주도하는 일을 해 볼 기회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성장할 기회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30대 중반의 직장인에게는 막막한 일이었다.


입사 3년 차가 된 해에 승진을 했다.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보니 실제로는 3년밖에 일을 안 했지만 대학원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받았었고, 평직원으로는 가장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 해에 조직을 옮기고 싶은 희망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록 매우 강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직에 성공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 5편에서 계속 -




*이미지 출처 : Pixabay 무료 이미지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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