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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모으기_조금씩 변화하는 삶
by 김강민 Salawriter Nov 28. 2018

건축학 박사가 IT 회사는 왜 들어왔어요?

4대*를 거쳐가는 여정의 기록(3편) *대학-대학원-대기업-대기업

많은 이들이 퇴사와 창업을 꿈꾸는 이 시대에 공학 박사 학위 취득 후 대기업에서 첫 직장 생활 시작, 그리고 몇 년 후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트렌드를 거스르며 대학-대학원-대기업-대기업의 4"대"를 거쳐가고 있는 과정을 기록해 봅니다.

(지난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회사, 대기업이라는 낯선 곳

건축공학 전공으로 국내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1년 6개월 동안의 개인 사업 후에 일본 정부에서 초청하는 국비 유학을 떠나 5년 후 박사 학위 취득, 그리고 한국의 대기업 계열 IT 서비스 회사에 취직했다.

사실 학위를 받으면 몇 달 정도 쉬면서, 공부하느라 못 둘러본 일본 여행이라도 실컷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니, 한 달이라도 쉬고 싶었지만 박사이기 이전에 아이 둘을 둔 아빠였으니 하루라도 더 벌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9월 27일에 졸업식을 하고 30일에 귀국, 10월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난생처음 회사라는 곳에, 대기업이라는 곳에 정규직으로 출근을 했다. 낯설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어색한 것은 당연했지만 나에게는 공간이 더 그랬다.

물리적인 공간. 큰 건물에는 수직과 수평으로 동일한 패턴의 자리가 펼쳐져 있었다. 마치 사육당하며 끝없이 새끼를 낳아야 하는 가축에게 할당된 축사의 좁은 공간 같은 느낌이 솔직한 첫인상이었다.

시스템적인 공간. 모든 업무는 사내 시스템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수기로 처리하던 것을 시스템화하고, 불편한 것을 개선해 온 과정을 겪은 선배들은 이렇게 편한 시대에 입사한 것은 복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스템 안의 수많은 기능과 절차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가장 익숙하지 않았던 것은 언어였다. 학교에서는 들어 보지 못했던 말들을 모두가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가운데, 단어 하나하나 해석하느라 대화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나였다. 분명히 약어일 텐데 본딧말을 알 길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WBS, BM, TRM......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비즈니스 쪽으로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았던 나는 이쪽 용어를 몰라도 너무 몰랐으니, Martket Share(시장 점유율)를 뜻하는 "MS"를 두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갑자기 왜 거론되는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수없이 들으면서도 좀처럼 입에 익지 않은 말도 있었는데, 바로 "장표"였다. PPT 슬라이드,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하면 될 것을 꼭 장표를 그린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매우 강렬하고 오래갔다.





박사 경력직 입사자의 부담감

박사로 입사를 한다는 것은 조직의 상당한 기대와 요구 사항을 짊어진 상태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석사, 박사 과정의 적어도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분야를 연구했으니 전문가로 인정하는 것이며, 직장인으로서의 훈련 과정이 필요 없이 바로 일을 할 수 있고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만큼, 실제로는 낯설고 서툰 것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것들에 익숙해지고 제 몫을 하기까지 회사는 오래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런 심적 부담을 느껴가며 3개월 정도가 지나자 경력이 몇 년 되는 사람 흉내는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할 리는 없었다. 속해 있었던 컨설팅 조직은 직급이 크게 주니어와 시니어로 구분되어 있었고, 나는 고참급인 시니어 그룹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니어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리더의 한 마디가 있었다.

"너 시니어야. 그렇게 일하며 안돼."

잘못된 것을 고치려면 우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직장 내에서 해야 할 역할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선배들과 식사 약속을 잡아 조언을 구하고, 먼저 입사한 후배들에게 그들이 경험했던 다른 시니어의 이야기를 들어 보며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조금씩 감을 잡아 나갔다. 입사 후 3개월이 지났을 때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게 되었고, 그때까지 나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은 더 잦아졌다.

'지금 내가 해야만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팀원보다 먼저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나에게 던져진 질문

내가 나 자신에게 그랬던 것만큼이나 사람들도 나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입사 이전의 이력은 물론,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취미는 뭔지, 술은 즐기는지, 궁금증에는 범위도 깊이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입사 이전에는, 대기업 직원이라면 서로 피 튀기며 경쟁하고 기계처럼 일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속해 봤던 여느 조직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고도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으니, 예상치 못한 수준의 개인적인 질문 세례를 받는 바람에 당황했던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유독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질문이 두 가지 있다.

"건축학 박사가 IT 회사는 왜 들어왔어요?"
"동경대 박사가 우리 회사는 뭐하러 들어왔어요?"



직원들의 전공은 산업공학, 전자공학, 컴퓨터공학 등으로, 덩치 큰 IT 회사의 다양한 업무와 밀접한 지식을 쌓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속한 팀에는 건축학 전공자가 이미 몇몇 있었는데, 건물이나 도시에 IT 기술을 적용하는 스마트빌딩, 스마트시티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의 비율로 따지자면 건축은 소수였고, 그중에서도 박사는 드물었으니 건축학 박사가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궁금했었나 보다.


그들이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 중에 하나는, 특별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회사에 익숙해져 있고 일의 강도에 비해서는 처우에 불만족스러운 면도 있었으니, 그들 입장에서 이런 회사에 박사가 굳이 왜 들어왔냐는 의아함이었다. 처음에는 마치 면접에서 대답하듯이 질문에 대꾸를 했다.

"저는 건축을 전공했고, 회사는 IT가 전문이니, 건축과 IT를 융합해서......"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이미 들어온 회사를, 그것도 겨우 몇 달 되지도 않은 시점에 다른 곳을 찾아보라는 식의 질문과 조언을 납득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새로 온 사람들에게 공식처럼 전하는 선배들의 메시지 같았다.

"이런 회사 뭐하러 들어왔어요?"

나는 그런 메시지가 내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만을 품은 채, 딱히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없는 사람들의 체념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는 그들의 질문에 별 뜻 없이, 소탈한 웃음을 곁들여 대답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말을 아끼고 마음을 다잡았다. 어쩌다 보니 같은 회사에 들어왔지만 일은 똑같이 하지 않겠다고.


질문은 한동안 이어지다 어느 시점엔가 멈추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즈음. 성과는 인사 평가의 결과로 나타났고, 2년 차부터 A, S, A 등급이 이어졌다.




건축학 박사가 IT 회사에서 한 일

입사 후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그룹의 대규모 연구 단지를 건설하는 사업과 관련된 일이었다. 일이 서툰 시점에 그나마 건축과 관련된 일이었으니 한편으로 다행이었으나 조 단위의 금액을 투자하는 그룹 차원의 사업이라 부담감도 상당했다. 그 후로 건축과 IT를 접목시키는 일을 했고, 건물의 에너지 관리 시스템(BEMS) 관련 사업 전략 수립, 시장분석, 상품 기획 등의 일이었다. 건물의 에너지 소비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신재생 에너지 발전 사업 관련된 일도 몇 년 동안 맡게 되었다. 그 후 도시와 IT를 접목시킨 스마트시티 사업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일은 계열사인 회사 차원보다는 그룹 차원의 프로젝트였고, 지주회사와 계열사의 CEO를 비롯한 임원들의 의사 결정을 위해 수개월간 분석한 결과를 대면 보고하는 역할까지 모두 나의 몫이었다. 물론, 조직 내에서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MS도 모르던 건축학 박사가 IT 회사에 들어와서 한 일로는 나 자신에게도, 회사에도 의미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연이어 주어졌다.



컨설팅 조직에 속해 있다 보니 몇 주에서 몇 개월 동안 진행하고 끝이 나는 프로젝트 형태로 일을 했고, 사업 전략 분야의 일을 주로 하게 되니 기술과 같은 상세한 내용에 대한 이해는 깊어지지 않았다. 결국, 일의 연속성이 부족하고 넓고 얕은 지식이 쌓여가는 것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이 쌓여 갔다.

그리고 조직을 떠나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4편에서 계속-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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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회사원
지금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남깁니다. 생각과 느낌이 전해지니 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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