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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강민 Salawriter Mar 22. 2018

박사가 된 아빠의 진로 고민

4대*를 거쳐가는 여정의 기록(2편) *대학-대학원-대기업-대기업

많은 이들이 퇴사와 창업을 꿈꾸는 이 시대에 공학 박사 학위 취득 후 대기업에서 첫 직장 생활 시작, 그리고 몇년 후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트렌드를 거스르며 대학-대학원-대기업-대기업의 4"대"를 거쳐가고 있는 과정을 기록해 봅니다.

(1편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대학원 진학

12년 전, 일본 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는 국비 유학을 떠나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공은 건축 계획학으로, 쉽게 말하면 건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짓는 것도 아닌, 사람이 살기 좋은 건물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학문이다. 쉬워지지 않는 것 같으니 사전의 내용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건축 계획[architectural planning and design, 建築計劃]
① 도시 계획에 대하여 단체(單體) 건물의 계획을 말한다.
② 구조 계획이나 설비 계획에 대하여 건축 공간의 계획을 가리킨다.
③ 단체(單體) 건물이나 건축 공간을 계획하는 바탕이 되는 인간의 행동이나 의식과 건축 공간과의 상호 작용에 관한 지견(知見).
(건축용어사전, 2011. 1. 5., 성안당)


학부는 국내 대학의 건축공학과를 졸업했고 세부 전공은 건축 설계였다. 설계를 아주 열심히 한 건 아니었지만, 주변의 재능 있는 친구들이 하는 설계와 비교하니 나의 작품에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결핍되어 있다는 걸 4학년 졸업 설계를 하면서 깨달았다. 바로 창의성이었다. 대학원에서 디자인보다는 이론적인 면을 더 많이 다루는 건축 계획학이라는 학문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참 빨리도 알아차렸지만, 최근에 친구들이 발표하는 작품을 볼 때마다 그때 안 것만 해도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박사 과정의 마지막 학기, 진로 선택의 기로 

대학원에서의 5년이 흘러 박사 졸업이 확실해지던 때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에 정한 길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학교 또는 회사.

건축학도로서 한 가지 생각을 달리 한 점이 있는데, 회사를 가게 된다면 건축이 아닌 컨설팅을 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건축만 알고 살았던 긴 시간의 끝에 이렇게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계기는 대학원 과정 동안의 경험에 있었다.

대학원 5년 동안 주거 환경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 가정을 방문하여 집의 특징과 거주자의 생활 실태를 조사하고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분석하여 해결책을 제안했다. 이런 과정은 컨설팅*과 유사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컨설턴트라는 직업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이 점점 강해졌던 것이다.

*어떤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 고객을 상대로 상세하게 상담하고 도와주는 것(표준국어대사전)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한국의 모교와 도쿄 소재의 일본여자대학교의 박사 후 과정 자리, 대기업 계열 IT 서비스 회사의 컨설턴트 자리 하나를 선택지로 확보할 수 있었다. 포닥, 포스닥이라고도 부르는 박사 후 과정은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일정 기간 동안 연구직을 이어가는 것을 말하는데, 교수나 연구원 등의 실무에 자리 잡기 전에 거쳐가는 과정을 뜻한다. 당시에 듣기로는 기본 급여가 2천만 원 정도였고 가족과 생활을 하려면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시간 강사로 열심히 뛰어야 했다. 두 대학교의 교수님들께는 연구 계획서와 함께 박사 후 과정을 희망한다는 메일을 보냈었고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수입 측면에서 아쉬운 점은 있지만 감사할 일이었다. 이런 기쁜 소식을 다르게 받아들인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바로 아내였다. 일본여대 교수님이 수락했다는 소식에 이런 질문을 해 왔다.

"거기는 다 여자 아니야? 논문 지도할 학생도 다 여자고, 같이 연구할 사람들도 다 여자겠네?"

연구 주제가 나와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어서 기뻐하던 나는 정신 나간 사람이 되어 있었고, 여대 포닥의 길은 그렇게 선택지에서 지워졌다. 사실, 그 해에 동북 지방 지진이 났고, 원전 사고로 방사능 문제가 심각해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더 이상 일본에서 살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IT 서비스 회사는 학연과 SNS 덕에 지원하게 되었다. 진로 때문에 한참 고민이 많던 시기, SNS에 직장 구하기 힘들다는 푸념을 남겼고 지인들의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다.

"우리 회사 오실래요?"

대학원 입학 동기이면서 한 학기 먼저 졸업한 동생이었는데, 바로 그 회사의 컨설팅 조직에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열 자도 안 되는 문장에 이끌려 동생에게 연락을 취했다. 처우, 업무, 문화 등 두루두루 확인한 후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당시 회사는 컨설팅 조직의 규모를 키워가는 중이었고, 도시와 건물을 운영하는데 IT 기술을 접목시키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직원이 사람을 소개해서 입사하게 되면 포상금을 주고 있었다.


박사 후 과정과는 전혀 다른 생활이 그려졌다. 더구나 희망하던 컨설팅직이었으니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해 보기로 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서둘러 면접 일정을 잡아달라고 했다. 졸업 전에 하루라도 빨리 확정을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면접을 봐야 한다길래 비행기표를 요청했고, 왕복 티켓을 받고 2박 3일의 면접 여행을 떠났다. 가는 날 오늘 날을 빼고 남는 하루에 일정을 몰아 오전에 상무 이하 실무진 면접, 오후에 전무 면접을 봤다. 그리고 본가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축하드립니다. 신체검사를 받으셔야 되는데 언제 가능하신가요?"

건축가로 살아갈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여지는 그렇게 갑작스럽고 확고하게 다가왔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새로운 길의 선택

졸업을 앞둔 해에 첫째는 초등학교 1학년, 둘째는 유치원생이었다. 나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세 식구를 부양해야 하는 아빠였으니 그런 현실을 떠올릴수록 선택지 중 한쪽으로 점점 마음이 쏠렸다. 5년 반 동안의 유학 생활에 함께하며 고생한 식구들에게 더 이상의 희생을 바랄 수는 없었다. 한 번 더 건축을 선택해서 몇 년 후에 다행히 교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그 몇 년의 준비 기간 동안 넉넉하지 않은 생활을 인내해야 하는 것이 박사 후 과정의 길이었다.


물론 고민이 쉽게 끝나지는 않았다.

‘옳은 선택일까? 후회하지 않을까?’

걱정도 많았다.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졌다. 건축이 아닌 일을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한 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대기업이라는 조직에서의 생활은 어떤 것일지 막연하기만 했다. 감을 잡을 수 없으니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결정을 내렸다. 타협이기도 했다.

기업에서 실무 경험을 먼저 쌓고, 나중에라도 학교로 가고 싶으면 그때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종종 보긴 했으나, 사실 전공과 거리가 있는 실무 경력이 학계로 돌아가는 데 얼마나 영양가가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사회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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