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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아 Oct 05. 2022

결혼은 안 했지만 신혼여행지 갑니다.

「괌 여행기-Prologue」 Hafa Adai, 새로운 여행


서른네 번째 생일. 괌에 도착했다.


손 뻗으면 닿을 듯 태평양 철썩이는 해변가 레스랑. 생일 케이크는 튜나 포케 Tuna poke. 신혼여행 후보지였던 곳에서 생일이라. 인생은 정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아직 채 떨어지지 못하고 작렬하는 태양 때문인지 맥주 때문인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근래 몇 달을 통틀어 가장 좋은 기분이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이동하느라 피곤할 만도 한데, 어쩐지 마음에 태평양이라도 들어앉은 듯하다. 에 이렇게 흡족스러웠던 날이 있었던가?

'꽤 멋진 날이야.'



Guam the Beach Restaurant & Bar


여행을 결정했던 건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던 . 웬만해서는 울지 않는 나였지만, 그즈음에는 눈물주머니가 금방이라도 흘러 넘 칠 것 같다.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과 파혼한 지 딱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친구 S와 K를 만났다. 그녀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17년 지기 친구들이다. 몇 주 전에 S가 집에 초대했을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만남이었는데, 하필 3일 전에 어진 탓에 내 가 썩 좋지는 않다.

나조차도 완벽히 이해되지 않은 파혼 사유, 아직 채 정리되지 않는 예식장과 신혼집 문제에 대한 막막함 등등 이런저 얘기 풀어놓으며 슬픔에 허우적대는 나를, S와 K는 애잔한 눈으로 가만히 들어주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두리는  달 후 내 생일 받으려던 프러포즈 이벤트 얘기까지 흘러갔다. 참으로 야무고 부질없던 계획을 듣던 S가 을 꺼냈다.

"우리 해외여행 갈래? 코로나 정책 완화되어서 갈 수 있대.
네 생일에 괌 가자. 괌에서 생일보내는 거야."

눈물이 그렁하던 눈이 크게 떠졌다. 해외여행? 괌? 야자수? 태평양? 절여있던 마음에 순간 빛이 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직장 동기들이 여행 경비 벌기 위해 회사 다니 게 아니냐 할 정도로, 코로나 유행 전에는 한 해에도 수 차례 해외여행을 다녔었다. 하지만 괌이라, 어쩌면 신혼여행지가  수도 있었던 곳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자 나는 또 금세 슬픔에 축 쳐졌다. 시무룩해지는 나에게 K가 호통치듯 말했다.

"야, 결혼해야만 신혼여행지 가란 법 있냐? 남들은 신혼여행으로나 가지만 우린 아무 때나 갈  있잖아!" 

K가 맞다. 렇게 자주,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날 현실적인 여건이 된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할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결혼하거나 자녀가 생긴 친구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진다. '친구의 결혼식'은 친구를 미혼의 세계에서 기혼의 세계로 떠나보내는 이별의 세리머니라는 생각도 했었다. 기혼의 세계에서 행복하길 빌며 더 이상 미혼의 세계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어쩐지 친구의 도리인 것 같아서 아무 때나 연락하기가 어려워진다.


미혼이더라도 휴가를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친구는 함께 일정을 맞춰 여행 가는 것이 어렵다. 그런 점에서 S와 K는 나의 오랜 여행 메이트였다. 우리 셋 다 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장에 다니고 일정 맞출 가족도 없으니, 괌 정도는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다. 시간, 돈, 체력을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조건. 그것만으로도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이 주어져있고, 하지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에 받으려던 프러포즈는 이제 없지만, 이제는 스스로에게 프러포즈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여행을 선물해야지.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의 절반을 함께 한 친구들이 변함없이 내 곁에 있는데, 그깟 몇 개월만난 사람 헤어졌다고 슬퍼하는 것부터가 우습게 느껴진다.  


"다시 돌아온 걸 환영해!"

짠! 우리는 잔을 부딪히며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첫 해외여행을 의하였다. 17년을 함께 했지만 같고도 다른, 지만 다르고도 같은, 그래서 꽤나 잘 맞는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 그리고 서른넷 미혼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일, 사랑, 가족, 건강, 취향, 도전과 휴식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세상에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있어!



생일케이크 겸 에피타이저, Pacific Poke Sal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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