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문득, 블라디보스토크의 낯선 향기(3): 체감물가

두 배 오른 현지 물가, 그리고 그에 따른 부작용

by 모험소녀

2025년 방문한 블라디보스토크는 물가가 꽤 비쌌다.

본래도 제조 환경이 열악한 동네라 공산품과 가공식품 등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여, 지방 도시치고는 물가가 높은 편에 속했다. 그런데 이제는 계산할 때 단위가 달라진 걸 느낀다.


공항에서 시내 숙소까지 택시비(얀덱스 이코노미 클래스 기준)는 1,900루블이었다. 원화로 3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었는데, 택시인데다 거리도 50km나 되어서 당시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결코 저렴한 수준이 아니었다.


[지난 이야기↓↓]


교통비가 올랐다.

이번 여행 땐 시내에서 택시로도 다녔지만 웬만한 거리는 버스를 이용했다. 택시로 이동하면 시내는 200-300루블(3~5천 원) 선에서 충분히 다닐 수 있었는데, 이것도 여러 차례 쌓이면 꽤 큰 금액이 된다. 한편, 버스는 요금이 2025년 8월 기준 현찰로 50루블(직불카드로 45루블, 교통카드로 39루블)이다. 천 원이 조금 안 되는 가격인데, 이곳에서는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인 걸 감안하면 서민들에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수준이다. 현찰만 받던 2019년에는 23루블이었으니 6년 사이 버스 요금이 두 배나 오른 셈이다.


1분 30분 운행이 전부인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 언덕 전차 푸니쿨라도 편도 요금이 현찰로 현재 44루블이다. 6년 전에는 불과 14루블이었으니 세 배 가까이 뛰었다. 게다가 지금은 푸니쿨라를 수백 명의 중국 관광객까지 이용하고 있으니 현지인 이용 편의는 많이 열악해졌을 것이다.

서민들의 발이 되는 대중교통의 기본 요금이 이렇게나 오르다니. 현지인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더할 텐데, 이들 삶이 얼마나 팍팍할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버스의 경우, 예전처럼 조금만 세게 달리면 엔진이 터질 듯하거나, 수십 년 전의 한국 지방도시 행선지가 달린 채로 다니던 중고버스는 아니라는 점. 지금은 전기버스도 있고, 중국산 버스로 추정되는 것들로 모두 교체되었다. 더이상 옛날의 구닥다리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 버스가 날씨가 더운데도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두발이 되어주는 버스와 푸니쿨라


현지 물가 수준은 이미 숙소를 예약하면서 체험했다.

우선 지금은 국내에서 러시아 숙소를 예약할 수 있는 사이트가 제한적이다. 오스트로복(또는 젠호텔즈) 앱에 검색되는 가격에 의존해야 하는데 선택권이 넓지 않다. 내가 방문한 기간이 동방경제포럼을 앞둔 때라 빈 방이 많지도 않았고 있는 것마저 가격이 꽤 나갔다. 숙박비도 시기를 탄다고는 하지만, 숙소 수준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많았다. 아예 가격이 저렴한 호스텔, 아니면 1박에 몇 백 달러를 웃도는 3-5성급 호텔로 나뉘어 극과 극이었다.


오랜 연차를 자랑하는 고령화된 숙소. 블라디보스토크 3성급 호텔 프리모리에 싱글룸


나는 에어컨도 없는 3성급 호텔 1인실을 이용했는데 1박에 12만 원 수준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 숙소는 아무리 비싸도 1박에 8~9만 원이었을 터. 물가가 오르긴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숙소 등급 및 수급 불균형 문제는 아직 해소되지 못한 듯하다.


선물로 많이 사간 초콜릿도 예전보다 2배 비싸졌다.


식당이나 마트를 가도 6년 전보다 가격이 두 배가량 오른 것을 체감했다.

코로나 전에는 루블화 약세로 인해 현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느껴졌으나, 물가 상승으로 현재는 그 효과가 많이 상쇄된 기분이다. 무엇을 사도, 무엇을 시켜도 지불해야 하는 돈의 단위가 예전과 달랐다. 서방의 제재로 비자나 마스터 카드 결제는 먹통. 외국 관광객은 대부분 현지 직불카드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어디를 가도 현찰로 지불해야 하니, 루블화 환전도 넉넉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달러를 비싸게 팔 수 있는 현지 환전소 환율 체크는 필수다.


현지에 체류하시는 교민분들 말씀이, 이 도시에서 보통의 월급을 받고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의문이라고 한다. 물가 수준이 높아서 생활하기 빠듯할 게 불 보듯 뻔해서다. 그래서 급여를 많이 주겠다는 회사가 있으면 무조건 이직하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고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단다. 도시가 겉모습은 점점 좋아지는데, 그에 비해 현실적으로 힘든 속사정에 대한 헤아림은 뒷전인 느낌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사람들도 가성비 좋은 간편식(샌드위치, 삼각김밥 등)을 많이 찾는다


특별히 그로 인한 부작용은 늘 있다. 나도 몸소 당했다.

관광객들이 많은 아르바트(본래의.거리명은 포킨 제독 거리). 관광객, 현지인, 누구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뒤섞인 번화가이다. 그런 장소에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에나 떠돌아 다닐 법한 알바생들이 활보하고 다니고 있다. 특별한 옷을 입고 각종 분장으로 사람들 이목을 끌고,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명목으로 돈을 받아가는 사람들이다. 예전부터 이들에 대한 좋은 기억에 없는 나는 이들을 '사기꾼'이라 칭하고 있다.


사람 홀리기 딱 좋은 분위기


때는 블라디보스토크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마지막 밤이 아쉬워 휴대폰만 가지고 가볍게 산책하고 들어갈 생각으로 인파 가득한 아르바트를 지나는 중이었다. 갑자기 현지인 변장 알바생이 나에게 다가와 손을 잡으며 말을 걸어온다. 내가 러시아어로 대답해 주니 매우 반기며 이런저런 포즈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기분이 좋았는지, 뭐에 홀린 건지, 따라서 했다. 이 친구가 정말 순수하게 반가워서 하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그가 돈 받는 알바생인 걸 알면서도 왜 그를 랐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러더니 제맘대로 사진을 찍고선, 나에게 청구서를 들이밀었다. 본인 이름과 사진이 있는 목걸이를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컷당 성인 1,000루블, 아이 500루블'


본인이 총 다섯 컷을 찍어줬으니 5천 루블(약 9만 원)을 내놓으란다. 뭐라고? 그제서야 이성이 돌아왔다.

사전에 가격은 예고도 하지 않았고 그냥 막무가내로 나를 홀렸을 뿐이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물론 힘들게 알바하면서 돈을 버는 건 알겠는데, 말도 안 되는 가격인데다 무엇보다 이건 고객을 우롱하는 행태였다. 게다가 사진을 자세히 보니 마구 찍어대서 손가락이 렌즈를 가리고 엉망이었다. 이런 무성의에 5천 루블을 지불하라고?


인형 탈 쓴 사람, 변장한 알바들 조심하세요


"계좌이체나 현찰 돼요."


알바생은 자기 돈 받을 생각만 하고 이 말만 반복했다. 가격을 사전에 고지하지도 않았고 사진도 엉망이라 나는 줄 수 없다고 일관했다. 그러니 그는 경찰을 부르겠다는 식이다. 처음에는 알바생이니까, 조금이라도 줄까도 생각했으나, 갈수록 그의 태도를 보니 안 되겠단 생각이 굳었다. 그냥 길거리에 서서 돈 달라는 그를 앞에 세워두고 밤이라도 샐 마음으로 있었다. 사실, 맨몸으로 나와서 줄 현찰도 없었다.


"난 관광객인데 도시에 대한 좋은 인상을 줘야죠.. 그쪽 이름이 OOO에요?"


목걸이를 보고 알바생 이름을 되묻자 그때부터 그의 태도가 좀 바뀌었다. 한동안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 이건 시간 낭비라고 여겼는지 변장남은 '그럼 이건 그냥 내가 선물로 준다'란 말을 남기며 다른 타겟을 찾아 떠났다. 멘트는 또 왜 이래? 마치 본인이 선심 쓴 것처럼 선물이라니.


다른 관광객에게도 이렇게 해서 많은 돈을 뜯어내는 거라면 신고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다.

사진을 찍어줄 거면 사전에 가격 고지를 하란 말이다! 또 가격은 수긍할 만하게 좀 낮추고, 고객을 만족시킬 만큼 사진도 좀 잘 찍으라고.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이래서 어디 밥 벌어먹고 살겠니?


겉모습이 속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도시


이런 현상들이 급격한 물가 상승이 낳은 부작용이 아니고서 무엇이겠는가.

살짝 씁쓸했다. 도시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겨줄 수 있는 서비스라면 서로 얼마나 좋겠는가?

여행객도, 현지인에게도 아름다운 관광지 환경을 조성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 같다.




문득 예전 회사 입사 회화 시험에서 내가 했던 대답이 생각난다.


러시아 사람들
부자 되게 해주고 싶어요.


물론 지금은 러시아 사람들이 그때보다는 훨씬 잘 살게 되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날로그와 정이 살아있는 예전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현재의 과도기 풍경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주는 역할을 내가 언젠가는 해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해 본다.


앞으로 희망사항은 이렇게 바꿀까 한다.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웃게 해주고 싶어요."

함께 웃자고. 돈이 전부는 아니니.



[여행기 영상 3편]

출처: 유튜브 채널 여행과 사색


[다음 이야기↓↓]


★ 게재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문득, 블라디보스토크의 낯선 향기(2): 도시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