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일 수 있는 영역이지만 나에게는 도전의 영역이다, 커피는.
내 머릿속 '커피'라는 존재의 첫 기억은 대학 3학년. 커피를 마시던 친구들에게 "너네, 커피 무슨 맛으로 먹어?"라며 질문한 적이 있었다.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먹게 되었다’, ‘향이 좋아서’, ‘오전에 각성이 필요해서’ ... 등등 여러 답변을 해주었는데 말만으로 쓴맛의 커피를 마시는 것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아 며칠 쭉 마셔보기로 했다.
'커피를 ‘잘’ 마시는 사람이 되어보자.'
왜 잘 마시고 싶었을까. 그저 쓴 커피가 입맛에 맞는다는 그 느낌이 궁금했기에. ‘잘’ 마시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다.
그러고 찾아간 학교 뒤 카페. 커피 향은 좋았지만 나에게 돌아온 건 혀끝의 떫음 뿐이었다. 커피를 잘 마시는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두어 번 사 먹다 결국은 “아메리카노 반의반 샷만 주세요.” 반의반 샷. 하.. 커피를 받아들고 가만-히 지켜보다 보니 현타가 오더라.
이후로 커피를 잘 마시는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다.
무슨.. 커피를 마시고, 마시질 않는데 '포기'라는 단어를 쓰나- 의아할 수도 있지만, 잘하지 못하는 영역에 도전하기를 좋아한다. ‘도전’, 이라는 마음 자세를 가지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비장한 마음이 든다. 또 판단은 빨라서, 두어 번 시도해보다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빠르게 놓아버린다. 그럴 땐 ‘포기’
도전, 포기.
도전, 진행.
도전, 성공.
유연히 생각하며 살아가자, 끊임없이 되뇌나 생각의 흐름은 ‘모 아니면 도’ 이렇게 귀결이 된다.
급한 성격 때문일 수도 있으나 여러 도전의 결론은, 내 삶의 필수영역이냐 선택영역이냐로 판가름이 났다.
생각해보면, 인테리어도 나의 필수영역이 아니었겠다. 4개월가량 접해보다, 이 길은 도저히 내 길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어 스르륵 그만두게 되었고.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 보컬학원, 성악 개인과외도 받아봤으나 3개월 배워보니 ‘그래, 노래야 잘 부르면 좋은 거고 못 불러도 상관없잖아?’ 라는 생각에 포기해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 이것들은 선택영역.
그렇다고 뭐든 빨리 포기해버리는 사람인가? 그것도 아니다. 영어 회화의 경우, 잘하지 못하더라도 외국 나갔을 때 언어란 필수요소이고. 잘하지 못하더라도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어 5개월째에 들어섰는데도 더 배워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여전하다. ‘진행’
피아노의 경우, 치고 싶은 곡이 생기면 그 곡 하나만 죽어라 파고 결국은 완주할 수 있을 때까지 파고든다. ‘성공’, 그리고 새로운 곡에 다시 ‘도전’.
돌아와서, 나에게 커피라는 영역은 생활에 필수 영역이라기보다는 선택영역이었다. 커피를 잘 마시든 잘 마시지 못하든 내 기준에서 사람의 매력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물론 향과 커피 맛을 궁금해하고 원두에 대해, 커피에 대해 알아나가고 더 배워나가고자 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이겠지만.
‘커피’라는 단어가 이번 주에 콕 박혀서 그런가? 커피 한 잔 마셔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작업실이 있는 곳은 부산, 전포동. 카페들이 옹기종기…. 를 넘어서 어마무시하게 모여있는 곳이다. 며칠 전 작업실 1분 거리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는데 지인의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였다. 지인에게 “아메리카노는 써서 못 먹는데, 혹시 추천해줄 만한 커피가 있을까?”
“누나, 거기 플랫 화이트 맛있어요.”
카페로 향했다.
“플랫 화이트 한 잔, 테이크아웃으로 주세요.”
플랫 화이트가 어떤 커피인지도 모른 채 주문했고, 작업실에 돌아와 마신 커피의 맛은 여전히.. 썼다. 대체 이 쓴맛을 왜 소비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여러 모금 마셔보니 목 끝에 살짝 고소한 향이 맴돌더라. ‘오,,?’
그러고 얼마 뒤, 학생들과 작업실에서 함께 식사하게 되었는데 한 학생이 마카롱을 챙겨왔다. 식사가 끝나고 또 다른 학생이 “마카롱도 있으니, 커피 한 잔 사 올까요?” 물어보길래, “작업실 옆에 카페 생겼는데 거기 커피 괜찮더라. 나는 플랫 화이트”
세~상에!
커피와 마카롱의 조화는 최고였다. 마카롱은 너무 달아서 굳이 굳이 먹지 않았고, 커피도 굳이굳이굳이 먹지 않는데. 아무튼 나에겐 신세계. 이후로, 커피 마시는 나름의 법칙이 정해졌다. 커피엔 디저트.
단 음식과 함께라면 단맛도, 쓴맛도 중화가 되니까. 참.. 커피 한 잔 마셔보자고 디저트까지 소비하다니. ‘소비한다’고 생각을 하는 나를 보니, 참 나도 나다- 라는 생각이 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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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의 모양은 복잡하다. 단조롭지가 않다. 무얼 향유하며 살아가는지도 제각각. 누군가는 커피를, 누군가는 음악을, 누군가는 그림을, 누군가는 글을.
밤의 시간에 커피와 함께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써 내려가는, 그 순간에 흠뻑 빠져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겠고. 음악을 틀어놓고 와인을 곁들이며 그림을 그려나가는 사람들도 있겠지.
돌이켜보면, 나는 삶을 편협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나.
커피를 잘 마시는 사람이 되어보자며, 커피 한 잔만 마셔본 나의 태도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뭐 물론.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가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굳이 커피 한 잔, 고집 피울 일이 아니었다는 것.
여전히 나에게 커피는 삶의 필수요소는 아니겠지만, 선택적으로 음미해 볼 수도 있는 영역이 될 수는 있겠다.
‘도전’이라든지 ‘포기’ 라던지 뭐 이리 정의 내리길 좋아하는지. 이것도 집착이다 싶지만 거창한 단어는 뒤로 빼두고 가볍게 지내봐도 좋겠다. 조금 더 생각을 유연하게, 선택하는 단어도 유연하게. 그러다 보면 삶도 조금 더 유연해지지 않을까?
커피를 잘 마시는 사람이 되기보다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무언갈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무언갈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앞으로는 커피 써서 못 먹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기보다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커피 마실 땐 디저트를 함께 곁들여 먹는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