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즈음, 조개구이를 먹으러 부산 영도 자갈마당엘 갔었다. 자갈마당 초입에 항상 호객행위 하는 이모가 계시는데 2년 전, 갖은 애교를 부리며 이모님과 환상의 티키타카와 함께…. 가게에 들어갔고 서비스도 많이 받았던 거로 기억한다. 그 당시 옆에 있던 언니가 “야, 너도 참 징하다… 진짜 대단해…” 자신은 이렇게 행동 못 한다며 절레절레했었는데 “언니, 이런 데선 이렇게 행동하면 먹혀, 이모님들이 아주 좋아하신다구.”
그 이모님이 여전히 호객행위를 하고 계셨고, 이번엔 지인이 예약해둔 가게가 있어서 “이모오~! 쩐에 여기서 완~전 맛있게 먹었었는데, 이번에 지인이 딴 데 예약을 해버려 가지 공,,, 담에 올 땐 여기 꼭 올께요오~!~ ”
“아이고, 그래그래 다음에 꼭 와라. 아가씨~!~”
콧소리를 내며 눈웃음 찡긋하면 엄청 좋아라 하시는 이모님들의 모습을 보는 게 괜히 좋다. 물론 나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거겠지만.
호객행위란 게 계속 말을 건네고 거절당하고, 또 말을 건네고 승낙하고-의 반복이라 호객에 응하면 상관없다만, 거절하더라도 기분 좋게 거절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더 목소리 톤을 높이고 코를 찡긋, 눈을 찡긋하게 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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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도 있었다.
5시 즈음 영업을 마감하는 자재상 앞에 항상 주차해놓는데, 어느 날은 가게 사장님께서 가게 앞을 청소하고 있는 게 아닌가. 살짝.. 주차하려고 차 문을 내리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더니 주차금지 입간판을 치워주시더라.
"여기 주차 자주하제?, 자주 보이는 차라 내가 이거 치워주지.. 아니면 안 치워준다~" 속으로는.. ' 사장님 안 계시면 누구라도 여기 다 댈걸요ㅠ….'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유 고마워요, 싸장님~! 나갈 때 꼭 입간판 다시 세워놓고 나갈게요옹~! 저녁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주차합니다!!~”
“그래그래 쓰레기 좀 버리지 말고, 깔끔하게 정리해서 가라- 아가씨”
대화가 이렇게 끝나는 게 아니고, 이렇게 말을 트게 되면 그간 말하지 못했던 답답한 점들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다거나, 사람 통로 막고 주차를 한다던가.. 등등)을 쏟아내시는데. “아유 맞아요 맞아요, 그러면 안 되죠. 저는 안 그럴게요~! 뒤처리 맡겨만주십셔!!!” 라고 대답하면 허허- 웃으시면서 그 자리를 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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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해야 할까, 예쁨받는 방법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어른들을 대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나 자신을, 가끔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언니가 했던 말처럼. ‘참 징하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렸을 적엔 애교도, 붙임성도 딱히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집안이 엄하기도 했고, 말을 뗐던 3-4세부터는 '아버지, 어머니' 호칭을 쓰고 높임말을 쓰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부모님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먼 존재였다.
옷을 고르더라도 무얼 고르면 어머니가 좋아하실까, 생각하면서 그렇게 눈치를 보던 아이였고. 친척 집을 가더라도 자주 보는 사이들도 아니었기에, 입을 다물고 조용히 조용히 있다 왔던 기억이 대부분. 소심 끝판 A형이라 속상한 일이 있어도 내지르지 않고 집에 와서 울어버리기만 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랬던 내가 책 속 한 문장을 보고서 바뀌었다.
때는 2011년, 대학 1학년.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에게 표현을 많이 해라'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이 구절을 보고 난 뒤로 가족들에게 표현을 많이 하게 됐달까?
20대에 들어서고 ‘학생은 학생답게’를 외치시던 어머니는 ‘대학생이면 대학생답게’라는 마인드로 20대처럼 나를 대해주시고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던 게 내가 바뀐 큰 요인이었겠지만. 그 문장을 만나게 된 이후로 주변 사람들을 대하고 표현하는 데에 집중을 했고, 그러다 보니 내 주변을 이루는 기운이 많이 바뀌었다.
책 한 구절로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나? 싶을 수도 있지만 '아, 이렇게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해내고야 마는 게 나의 특 장점 중 하나다. 표현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그 당시엔 강하게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 같고. 물론 지금도 이 생각은 여전하다.
써 내려가다 보니, 어떤 옷을 골라야 어머니가 좋아하실까? 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은 어떻게 호응을 해드리면 이모님들이 불편하지 않고 좋아하실까? 라며 조금 더 사회적 인간으로 발전 시켜 나간 것 같기도 하네. 상대방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건 여전하다. 좋은 쪽으로 발전 시켜 나가는 건 아주 다행인 일이지만 사람의 기질 자체는 변하지 않나 보다.
사람의 성향, 성격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외부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모든 게 합이 잘 맞아야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나가는 게 아닌가. 20대에 들어서던 10년 전,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 문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한순간에 내가 변했을까?
책 속 한 문장으로 사람이 바뀌나?
한순간에 바뀌는 건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책 속 한 문장이 한 사람을 변화시켜주는 촉매제가 될 수는 있겠다. 경험했고, 그렇게 믿고 있으니.
앞으로 나는, 또 어떤 문장을 마주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