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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인원 세인 Jan 19. 2020

야생에서 사랑의 레퍼런스를 찾다

불에 탄 나무의 길에서 긴팔원숭이처럼 사랑하고 싶다

영장류를 바라보는 영장류 인간의 야생일기#5


사랑은 늘 어렵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는 수많은 미디어와 책에 존재하지만 사실상 각자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경우를 찾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드라마 <사랑의 온도>가 여태까지 본 레퍼런스 중 가장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레퍼런스였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를 엄청난 로맨티스트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회의적이지만 어느 상황에서는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하는 갈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현실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보통의 사람이기에 늘 사랑은 어렵게 다가온다.


사랑은 벼랑 끝에 위치한 마지막 도피처와 같다.


더 이상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은 아로마 테라피처럼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지만 때로는 사랑 자체가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나와는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만 존재하는 마을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외로움을 느낄 때가 꽤 있다. 그럴 때마다 사랑을 그리워하곤 한다. 하지만 너무 그리워하다 보면 사랑을 갈망하는 그 마음이 나 자신을 잡아먹기도 한다. 스마트폰 시그널이 잘 잡히지 않거나, 딱히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노트북으로 미국 드라마 <프렌즈>를 보는데, 그 때마다 현실에서 벗어나서 이상으로 빠진다. 그러나 곧 현실을 자각하고 다시 '회의적인 갈대 같은 사람'으로 돌아온다. 한국에서는 매 초마다 스마트폰과 미디어를 들여다보며 늘 회의적인 사람으로 사랑을 대하곤 했는데 말이다.


사랑을 한다면, 긴팔원숭이처럼 하고 싶다.


타국에 위치한 고도 2,000m의 산등성이 속에 위치한 마을에서 사랑의 레퍼런스를 찾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한국에서 본 수많은 미디어와 책보다도 밀림 속 긴팔원숭이로부터 유용한 레퍼런스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붉은 과일의 길'처럼 눈에 띄는 특징이 있는 숲 속 길마다 이름을 붙이곤 하는데, 어느 날 '불에 탄 나무의 길'에서 A그룹의 긴팔원숭이 부부를 만났다. 사실 A그룹의 아빠 아리스와 엄마 아유는 다른 B와 S 두 그룹 부부에 비해 상당히 먼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어시스턴트들과 함께 아빠 아리스가 각 그룹의 아이들과 한 나무에서 과일을 먹는 모습을 발견하면, 두 시간 후에야 아주 먼 나무에서 아기를 안고 다른 과일을 먹고 있는 엄마 아유를 만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부부인듯 부부가 아닌 듯한 아빠 아리스와 엄마 아유가 어느 날, 불에 탄 나무의 길에서 열정적으로 털을 고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 둘은 거진 15분 동안 열성적인 털 고르기를 한 뒤, 빠르지만 강렬하게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고는 다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러 먼 길을 떠났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외쳤다.


'드디어 찾았다, 사랑의 레퍼런스!'

늘 현실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을 하며 길을 찾지 못한 내게 한 줄기 빛이 내려온 느낌이었다. 내가 늘 고민하던 현실에는 일도 있지만 개인적인 시간, 사생활, 그리고 남들이 나와 나의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포함되어 있다. 나라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은 타인의 사랑에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고 마음대로 결론을 짓고 가십거리를 만든다. 나와 어시스턴트들 또한 A그룹의 아리스와 아유가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자, 저 둘 사이에 새로운 아기가 언제 태어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등 같잖은 우려를 하며 나름의 가십을 만들곤 했다. 그러나 사실상 그 둘은 그들만의 사랑을 하고 있었다.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아유와 아리스는 서로를 보듬을 때 보듬고, 서로를 강렬히 원할 때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이 충족되었을 때, 다시 각자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아주 효율적이면서 정열적인 사랑을 하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아유와 아리스의 큰 애들인 아모레와 아완도 나중에 각자의 배우자와 데면데면하게 지낼까 걱정된다는 말을 한 것이 후회될 정도로 아유와 아리스는 아주 좋은 사랑의 레퍼런스를 보여주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결심했다.


사랑을 한다면, 내가 그들의 '진짜 사랑'을 보았던 붉은 나무의 길에서의 긴팔원숭이처럼 사랑할 것이라고. 우리 인간 역시 사랑에 있어서는 다를 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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