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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나 May 26. 2021

마른비만 헬린이의 근력일기

일상 한 단락 열 하나, 어느 헬린이의 일기

스물일곱, 인생에 처음으로 돈도 (조금) 있고 시간도 있는 시기인, 퇴사 후 백수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퇴사후 2개월 즈음 코로나가 시작되어버렸고, 내 발걸음은 여행이 아닌 헬스장으로 향했다. 2층까지 계단을 올라가면 숨을 헉헉대는 요즘의 나를 반성하며 돌아보는, 내 인생 가장 건강했던 날의 기록.


2020년 02월 01일


피티가 없는 날이지만 헬스장에 갔다. 웬만한 맨몸 운동에 운동기구 사용법도 알았겠다, 혼자서도 잘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이제는 이렇게 못하는걸 누가 쳐다보면 어떡하지, 하는 다소 자의식 과잉적인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 몸의 일부분이 오르락-내리락, 쥐락-펴락 하는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온 세상이 차단되고 나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느낌이 좋아서, 글을 쓰곤 했다. 운동을 시작하고, 제법 익숙해지면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생겼다는게 제법 뿌듯하다.


운동은 할 때도 힘들긴 하지만, 끝나고 나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 계단을 오를때도 끙-차, 의자에 앉을때도 끙-차. 자고 일어나 기지개를 펴면 느껴지는, 온몸에 짜릿한 통증. 그동안 보고,듣고,해본 것 중에 이렇게 수시로, 오래도록 그 감흥이 느껴지는 게 있었나 싶다.


입시에서도 내 성적에 ‘안전빵’ 인 학교를 지원해 무덤덤한 채로 합격발표 안내문를 보았고, 어차피 떨어지겠지. 하고 지원한 회사에서 당연한듯 불합격 통보를 받고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래’ 라며 위안을 삼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운동을 할땐 왠지 더 이상 물러서고 싶지 않다. 조금만 숨을 고르고 나면 될것 같은데, 조금만 더 힘을 주면 할 수 있을것 같은데 하는 마음으로 발끝부터 머리까지 힘을 주면, 안 들릴것 같던 바가 어느순간 쑥, 하고 들린다.


처음 사용하는 기구 앞에서면 바들거리는 나를 보며 트레이너쌤은 좀더 쉬운 다른 운동으로 바꿔서 하는걸 권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안되나보다, 하고 포기했다. 그런데 그렇게 포기해버리고 나면, 운동이 끝난 후에도 영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 몸을 원하는 자세로 만들지 못하거나, 버텨내지 못한다는건 상당히 좌절스러운 경험이다.


중량도 달지 않은 핵스쿼트 위에서 펴지지 않는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한번만 다시 해볼게요’ 라는 말이 입에서 나왔다. 오, 뭐지 나 좀 멋있는데.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오늘도 눈을 꽉 감고 바들거리며 다리를 폈다. 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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