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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나 Aug 16. 2021

평범한 하루도 치열해지는 여름날의 기억

일상 한 단락 열 넷, 그래도 여름이 좋은 걸

이틀 전 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휴일이 이틀이나 남아 뭘 해도 기분좋은 토요일 오후 여섯시 즈음, 생각지도 못한 가을의 프롤로그를 만났다. 곳곳에 작은 가게들이 숨어있어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은 망원동 골목길을 걷던 중, 썰렁- 하는 가을 바람이 불어왔다. 한동안 차가운 에어컨 바람 아니면 찜통, 양자택일을 하는데 익숙해있었기에, 더울 준비로 긴장했던 몸이 자연스레 풀어졌다.


'아~ 좋다!'  걸어도 걸어도 나를 따라다니는 기분좋은 바람에 팔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설레면서도, 여름이 끝나간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 아쉬움이 들었다. 남들보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면서도, 겨울보단 쨍한 여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아니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나는 여름은 평범하게 지나갈법한 하루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다. 덥지 않았다면 평온한 마음으로 수월하게 했을만한 일들도 여름에는 더위와 싸우며 어떻게든 해낸 기억으로 남는다. 이를테면  청소를 하더라도, 물걸레질을 하며 땀이   떨어지는걸 보며 늘어지는 주말에 '이거라도 열심히 하고있다'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평범한 메일을 주고받더라도 '더운 여름 건강하게  지내시느냐'  말을 들으며 무언가 대단한일을 하고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더위에 지쳐 떠난 휴가에서도, 이러니하게 뙤약볕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며칠을 보내다가 진하게 타버린 살갗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못견뎌하는 나지만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여름을 견뎌가며 치열하게 무언가를 해내고야 마는 그 순간들이 좋았던것 같기도 하다. 아직 낮에 나가기 두려운 8월 중순이지만, 썰렁한 가을 바람을 맞이하게 된다면 나는 또 여름이 지나가는것에 대한 향수를 느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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