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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Lee Mar 16. 2017

2012년 3월

하정이가 캠프를 가다

하정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지 겨우 4개월째(중간에 2달의 방학이 있었다.).. 하정이는 여기 학년으로 3학년이 되었고 겨우겨우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다행이도 (학교 전체에 3-4명 밖에 없는) 한국친구가 같은 반에 있어서 조금씩 도움을 받는 것 같았다.


여기는 3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학생들은 3월이면 캠프를 간다. 보통의 경우 2박 3일이고 잘 준비된 캠프장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한다고 하는데, 하정이를 보낼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보내기로 결정을 한다. 침낭을 가져가야 하는데 침낭이 없어서 주변 사람에게 하나 빌리고, 이것저것 챙겨서 보내고 나니 마음이 좀 그렇다. "아직 학교에 적응도 덜 되었을 텐데... 아직 엄마랑 떨어져서 자기에는 어릴 텐데.."(하정이가 2004년생이고 2012년이었으니 만으로 8살이었다.)


그리고 하정이가 캠프를 떠나기 3주 전, 나는 드디어 중고로 차를 하나 사기로 결정하고 어렵사리, 하지만 싸게 중고 캠리를 하나 구했다. 전주인이 차를 넘기며 가끔(1-2주에 한 번) 엔진오일을 채워줘야 하는 것만 빼고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호주는 한국과 운전방향이 다르다. 운전석이 오른쪽이고 차도의 왼편으로 운전해야 한다. 라이트와 깜빡이는 한국처럼 오른편, 와이퍼는 왼쪽에서 조작한다. 별도로 운전교습을 받지는 않고 20분 정도 운전하는 동안 전주인이 옆에 앉아서 몇 가지를 알려준 것이 교습의 전부이다.어쨌든 운전할 수 있는 반경은 끽해야 집에서 30분 거리이다.


캠프 두번째날, 캠프장에서 전화가 왔다. 하정이가 아파서 토해서 더이상 캠프에 참여하기 어렵다며 와서 데려가라는 것이다. 캠프장은 집에서 3시간 반 거리... 다행이 담임선생님과 얘기가 잘 되어서 중간쯤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래도 2시간 쯤 운전해서 가야하는 거리..


2시간 거리에 있는 낯선 마을로 급작스럽게 가야만 한다. 길도 모르고 중간쯤에는 산악지역을 한 시간쯤 지나야 한다. 따로 네비게이션을 장만하지 못한 나는 한국에서 얻어온 낡은 스마트폰에 있는 구글 네비를 사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걱정이 하나 있었는데 산악지역을 지나는 동안 인터넷이 안 될 가능성이 100%여서 구글네비가 잘 작동할 것인가였다. 갑작스런 상황이라 누구의 도움을 받기는 너무 시간이 촉박해서 그냥 출발을 한다.


아내와 하진이와 같이 출발한 나는 열심히 운전을 한다. 아직 살짝 낯선 오른편 운전석, 낯선 오디오, 낯선 레버들.... 게다가 제한속도 표지판을 열심히 봐야 한다. 여기는 딱지를 떼면 벌금이 기본 250불(25만원)에서 450불(40만원)이다.. 제한속도를 초과하지도 않아야 하고, 낯선 길도 따라가야 하고, 오른쪽 운전석은 아직 낯설고..


어쨌든 주거지역을 벗어나 낮은 구릉지대를 지나고 산악지역에 접어들 때까지는 괜찮았다. 산악지역에 접어드니 어두워진다. 길은 구불구불하고, 인터넷이 잡혔다 안 잡혔다 한다. 결국 인터넷이 안 잡히는 구간이 계속되는데 인터넷이 안 되어서 지도는 다운을 못 받지만 다행이 미리 설정해 놓은 루트는 알려준다. 깜깜하고 구불구불한, 처음 가보는 산길을 한참 동안 지난다. 우리차 말고는 차가 거의 안 다닌다. 10-20분에 한 대씩 차가 지나간다. 길을 잘못들면 인터넷이 안 되어서 루트를 다시 잡을 수 없다. 운전을 하고 가는 내내 계속 긴장이 되었다.


드디어 만나기로 한 마을에 도착했다. BP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당시 BP가 뭔지를 몰랐던 나는 마을을 지나가며 그런 간판이 있는지 유심히 살폈는데 운이 좋았는지 조금 후 결국 찾게 되었다. BP는 주유소였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담임선생님과 하정이는 도착해 있었고 한국어를 조금 하시는 일본인 선생님이 동행해서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하정이의 상태가 아주 나쁘진 않지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돌려보내게 되었다며 미안해 한다.


어쨌든 그렇게 하정이를 데리고 돌아오는데 한 번 왔던 길이라서 그런지 긴장이 살짝 풀리면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물론 너무너무 깜깜해서-가로등이 하나도 없음- 전조등이 비추는 구간만 보일 뿐이었다.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은하수를 본 적이 있냐고 물으니 없다고 답한다. 그래서 산 속 한가운데서 길 옆으로 차를 세웠다. 그리고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지상이 너무너무 깜깜해서인지 별들이 정말 많다. 그리고 은하수가 선명하게 보인다. 쉽지 않은 초행길이었지만 은하수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괜찮은 길이었다.


캠프를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긴 했지만 별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은하수도 볼 수 있었고.... 다행이 하정인 바로 회복되었다.. 집에서 두 시간 거리.. 아직도 이 거리 이상으로 운전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기록은 조만간 깨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멜번 생활은 또 이렇게 하나의 에피소드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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