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ul Lee Mar 20. 2017

2012년 12월

또다른 쉐어생을 받다

기존에 있던 쉐어생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나가고 새로운 쉐어생을 찾고 있었다. 가능하면 우리 가족과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으로 찾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교회에 다니는 권사님에게 식사 초대를 받아서 권사님 댁에서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권사님이 누군지 의아해 하며 나가보시더니 어떤 청년 한 명을 데리고 들어온다. 키가 멀대같이 크고 마른 몸매에 굉장히 조심스러운 몸가짐을 보인다. 며칠 전에 쉐어생이 필요 없냐며 찾아왔던 사람인데 그 때 빈 방이 없어서 안 된다고 했는데 너무 불쌍해 보여서 밥을 먹여서 보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다시 찾아왔는데 아직 쉐어할 집을 못 찾았다며 혹시 방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 날도 방이 없어서 밥만 먹여서 다시 내보내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물어보셨다. "집사님(나)네도 쉐어생 구한다며? 저 친구 엄청 착해보이는데 쉐어생으로 들이는 게 어때요?" 사실 아이들이 여자애들이라 남자 쉐어생을 안 들일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선뜻 하겠다고 대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 아내랑 상의해 보겠다고 하고 집에 돌아와서 얘기를 나눠보니 금전적으로 압박이 생기는 상태이기도 하고 별 문제를 일으킬 것처럼 보이지도 않아서 결국 권사님께 알겠노라고 대답을 하였다.

이틀 후, 백팩하우스-여행자를 위한 단기숙소-에서 짐을 챙겨서 우리집으로 들어온 그 청년은 굉장히 순박해 보였다. 이것저것 쉐어에 필요한 것들-주방사용, 샤워실 사용, 세탁실 사용 등등-을 알려주며 특별히 아내가 주방용품을 사용할 때 몇 가지 꼭 지켜야 할 점들을 강조해서 알려주었다. 그 중 하나는 후라이팬을 사용해서 볶음밥 같은 걸 할 때 숟가락으로 득득 긁는 건 아내가 별로 안 좋아한다고 특별히 얘기해 주었다.

이 친구는 우리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제스쳐를 굉장히 오버해서 보여주었다. 그 당시 우리집은 1, 2층이었고 1층은 거실, 주방, 주방과 이어진 다이닝룸, 세탁실 그리고 조그만 화장실이 있었고, 2층은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마스터룸(안방)이 있고 복도를 따라서 방이 3개(싱글1, 싱글2, 커플룸)가 나란히 한쪽으로 있는 구조였다. 나와 아내는 마스터룸을 사용하고 있었고 딸래미들이 커플룸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친구는 싱글2룸을 사용하고 있었다. 가끔 내가 마스터룸에서 나와서 아이들 방으로 가다가 이 친구랑 마주칠라치면 내가 가는 길에서 피해주려는 건지 복도의 벽에 딱 붙어서 내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평소에 복도(카페트가 깔려있다.)에 걸어다닐 때에도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다닌다. 그래서 너무 조심스럽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더니 괜찮다며 계속 그렇게 한다. (ㅡ.ㅡ)

어쨌든 처음 며칠은 별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찬장을 봤더니 사용한 그릇을 설거지를 안 하고 그냥 넣어놓았길래 설거지를 해놓으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설거지를 안해놓으면 벌레가 생기기도 하고 냄새도 난다고 이유를 설명해 주었는데 설거지를 정말 대충해서 다시 넣어놓았다. 기름기가 있는 음식을 먹고는 그냥 물로만 헹군 모양이다.

또다른 어느 날 세탁실을 가려고 주방을 지나는데 이 친구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후라이팬에 뭔가를 볶고 있었는데 숟가락으로 득득 긁으면서 하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OO씨, 제가 지난 번에 숟가락으로 후라이팬 긁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랬더니 화들짝 놀라며 "죄송합니다."라고 대답을 하고 하던 요리를 쓰레기통에 버리더니 방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 후로는 주방을 사용하지 않길래 그냥 주방 사용하는 것이 불편해서 사먹나보다 생각했었다.

다시 며칠이 지나고 우리방(마스터룸)에서 아이들 방으로 가다가 OO씨 방의 문이 열려있길래 슬쩍 들여다 보았다. 원래 쉐어하는 사람들의 방은 함부로 들여다 보면 안 되지만 문이 열려있기도 하고 방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고 싶기도 해서 들여다 봤는데... 글쎄, 책상(우리가 놓아준 것이다.) 위에 전기밥솥이 있고 바닥(카페트)에는 과자 부스러기가 널려있으며 반찬을 흘린 자국까지 군데군데 보여서 아내에게 청소 좀 하라고 넌지시 얘기를 해보라고 했다.

다음 날,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급박한 목소리로 이 친구에게 방 청소를 좀 하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면서 "아니 왜 한국사람들은 먹는 걸 가지고 자꾸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후로부터는 집안을 일부러 쿵쿵거리며 돌아다니고 주방용품을 갑자기 사용하면서 넣고 뺄 때 우당탕우당탕 일부러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무섭단다. 내가 일하고 있을 때는 집에 아내랑 딸 둘만 있는 상황이라 이 친구가 해꼬지를 한다면 막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어찌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이 친구를 만나서 얘기를 해볼려고 했더니 말이 안 통한다. 왜 자꾸 음식 가지고 그러냐고 하길래 '먹는 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방청소를 좀 하라는 것이고 설거지를 해놓으라는 것이다.'라고 얘기했더니 그게 먹는 것을 얘기하는 거란다. 이 때 나는 [말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이길 수가 없다.]는 말을 몸속 체험하고 있었다. 결국은 너무 말이 안 통해서 방을 빼달라고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다음 날 방을 빼겠다고 했다.

다음 날, 짐을 바리바리 싸더니 아직 집을 못 구해서 잠은 나가서 잘 텐데 짐가방 큰 건 하루만 더 보관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현관키를 잃어버려서 자기가 다시 복사해서 주겠다고 한다. OO씨가 나간 후 방에 가보니 처음 들어올 때 놓아두었던 거울도 없어지고, 몇 가지 소소한 물품이 없어졌다. 조금 후, 쓰레기를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열었더니 설거지 안 한 반찬통이며 그릇들을 몽땅 쓰레기통에 버려놓았다. 열이 확 받은 상태로 혹시나 해서 큰 짐가방을 열어보았더니 없어진 소소한 물품들이 다 가방에 들어있다.

아내는 이 친구가 화를 낸 이후로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에 이 친구가 짐을 가지러 왔을 때 별다른 얘기는 안 하고 그냥 내보냈다. 그리고는 현관키를 잃어버린 것도 몰래 따로 챙겨둔 게 아닐까라는 의심에 다음 날 나는 현관키를 통채로 새 걸로 갈아버렸다. 어쨌든 이 일이 있고난 후로는 남자 쉐어생은 절대로 받지 말자고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사람은 겉보기와 첫인상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작가의 이전글 2011년 9월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