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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Lee Mar 08. 2017

다시 2011년 9월

택배를 받다


이민을 결정하고...

한국에서의 마지막 주에 그간 살던 집에서 쓰던 것 중 멜번으로 보낸 것, 주변 분들에게 나눠 준 것을 빼고는 몽땅 버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목요일 저녁, 아파트에서 분리수거를 하는 날, 집에 있는 박스부터 못 쓰는 가전제품까지 쌓아놨던 것을 몽땅 내놓았다. 다행이 분리수거장이 내가 살던 동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 살아온 세월이 짧지 않았는지 버려야 할 것이 쌓여 있었기에 밤 열 시부터 시작한 분리수거는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경비아저씨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시기까지 하셨다. 난 그냥, "오늘은 버릴 게 많네요."라고 대답하고는 아마도 쓸 만한 게 있을 수도 있다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하지만 아저씨는 별로 신경도 안 쓰고 그냥 뒤돌아섰다.

그리고, 이제 멜번으로 가져가야 하는 짐 중 이삿짐으로 부친 물건들을 빼고 나머지를 이민가방 4개에 무게(베트남 항공은 개인 당 30kg)를 맞춰서 차곡차곡 넣었다. 30kg을 달 만한 저울이 없어서 아파트 헬스장에 몸무게를 재는 큰 저울을 잠깐 사용해도 되냐고 허락을 얻어서 물건을 다 넣은 다음 이민가방 4개를 낑낑대며 차에 싣고 다시 헬스장 앞에서 낑낑대며 이민가방을 다 내리고 지하에 있는 헬스장까지 다시 낑낑대며 옮겼다. 무게는 30kg이지만 크기가 내 몸보다 더 큰지라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내는 가방을 들기에는 너무 연약했다. 어쨌든 무게를 재어보니 두 개는 얼추 무게가 맞고 두 개는 무게가 초과되었다. 그래서 다시 덜 급한 물건들을 빼서 따로 챙겨놓았다. 이건 캐리어에 담아서 가든지, 항공소포로 보내야 한다.

이렇게 짐까지 다 챙기고 수원에 있는 아파트에서 한국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 신세를 지기로 한 서울에 있는 누나네 집으로 가서 며칠을 지냈다. 지난 번에 잠깐 얘기했지만 비행기를 타던 날, 공항에서 이민가방을 부치려고 무게를 재보았더니 하나가 무게가 초과된 것이다. 킬로 당 3만원 정도 더 부담을 해야 한다는데 4-5킬로 초과된 것을 다 지불하려니 너무 비싸다. 그래서 공항 한 쪽에 있는 한진택배사무소에서 짐 중 초과된 일부를 다시 누나네 집으로 택배로 부쳤다. 누나에게 항공으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고, 멜번의 주소를 건네줬다.

어쨌든 지난 번에 적었던 우여곡절 끝에 멜번에 도착한 후, 누나에게서 올 택배를 기다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누나에게 준 주소는 21 Robinson St., Clayton이고 실제 주소는 4/21 Robinson St., Clayton인 것이다. 나는 '/'앞에 있는 숫자를 뭘 뜻하는지 정확하게 몰랐기 때문에 누락을 시킨 것인데 막상 멜번의 집에 들어와 보니 여긴 타운하우스인데 7개의 집이 같은 번지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닛번호를 꼭 적어야 하는 상황이다. 누나에게 연락해 보니 벌써 내가 알려준 주소를 발송을 했다. 제대로 도착할 지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송장번호로 추적을 해보니 멜번의 배송센터까지 도착했고 집에 왔다가 갔는데 주소불명으로 대기 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Auspost'라는 곳에 전화를 하기로 했다. 영어로 통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마음을 크게 먹고 전화를 했다. 몇 번 신호가 가더니 전화를 받는다. 허걱, ARS다. 그런데 발음을 못 알아듣겠다. 고객센터와 통화를 해야 하는데 어떤 옵션이 통화옵션인지 알아듣지를 못하겠다. ㅠㅠ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는데도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서 포기.. 이틀 후, 둘째 딸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된 호주 시민권을 가진 한국분이 전화통화를 도와주시겠다고 한다. 그 분이 한참을 전화를 붙들고 ARS를 들어보더니 자기도 못 알아듣겠다고 한다. ㅜㅜ ARS 음질도 안 좋고 말하는 사람 발음도 안(?) 좋다.

결국은 고객센터 통화에 실패하고 이메일로 자초지종을 적어서 고객센터에 보냈더니 답변이 왔다. 이미 목적지를 찾지 못해서 발송지(한국)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며칠 후,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물건이 돌아왔다며.. 그래서 다시 정확한 주소를 누나에게 주고 다시 발송을 부탁했다. 그러자 일주일 만에 짐이 도착.

사실은 이 짐 안에 기본적인 주방용품들이 다 들어있었기 때문에 거의 한 달 동안이나 불편한 호주식 주방용품들을 사용해야만 했다. 특히나 호주의 저렴한 숟가락은 너무나 얇아서 먹다가 입을 베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이다.

어쨌거나, 호주에 정착하기 위해서 우여곡절을 참 많이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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