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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nam Kang Oct 12. 2020

퇴근이 좋은데 퇴사할 수 있을까

퇴근은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인증'

여름휴가를 마치고 출근한 월요일 아침이었다. 부장이 나를 불렀다. “태양광이 정말 산사태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알아봐.” 제주도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이, 육지에선 집중호우로 다수의 산사태가 발생했다. 그 중 일부는 비탈진 산자락에 설치된 태양광 시설에서 발생했다. 산지 태양광이 산사태를 유발했다면, 이번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해온 태양광 정책은 근본 점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국민 안전이 달린 문제라, ‘전례 없는 폭우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고 넘어갈 순 없는 사안이다. 대부분의 기자가 ‘시키는’ 취재를 달가워하지 않지만, 이번 건은 취재해볼 필요가 있는 사안이라고 동의했다. 바로 취재를 시작했다.


우선 산림청이 발표한 산사태 현황 보도자료를 내려 받아 꼼꼼하게 읽었다. 최근 보도된 관련 기사를 검색해 읽고 중요 부분을 체크했다. 산림청의 현황 파악은 군데군데 생략된 정보가 많았다. 과연 이 짧은 기간에 피해 현장을 제대로 파악했을까, 하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었다. 좀 더 알아봐야겠다 싶은 대목은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하고, 그 옆에 질문거리를 메모했다.


불과 24시간 전 나는 섭지코지를 산책하고 있었다. 나와 나의 두 아들, 그리고 친구와 친구의 두 딸이 함께 간 여행이었다. 하늘은 새파랬고 뭉게구름이 군데군데 피어오른 화창한 날씨였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 8월인데도 덥지 않았다. 아이들은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말과 염소, 강아지풀, 세찬 바닷바람을 마음껏 즐겼다. 두 엄마도 행복했다. “내년 여름 제주도에 다시 오자”고 거듭 약속하며, 좀 더 업그레이드 된 동선을 구상했다. 24시간 후 사무실에 꼼짝없이 앉아 코를 박고 일할 줄은, 물론 그때도 잘 알고 있었다.   

  

사전 정보를 어느 정도 정리하고 산지 태양광과 산사태 관련 전문가 두세 명의 이름을 찾아냈더니 오전 11시 40분. ‘취재원 연락처는 밥 먹고 와서 찾지 뭐’ 하며 우산과 휴대전화를 들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아침에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그쳐 있었다.


서울역 부근에서 근무하는 지인과 점심 약속을 한 날이었다. 서울역과 (우리 회사가 있는) 충정로의 중간, 서소문의 한 식당에서 국수전골을 먹기로 했다. 연일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나날이었기에 ‘요즘 같은 날씨에 딱 맞는 메뉴’라며 상대는 나의 식당 선정을 좋아했다. 나와 그는 코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연신 닦아가며 국수전골을 나눠먹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아이스 카페라테를 마셨다. 좋은 강연의 조건 같은, 태양광이나 산사태와는 하등 관련 없는 대화를 나눴다. 오후 1시 10분 그와 헤어져 1시 20분 회사에 도착했다.





철저한 일의 시간

[pixabay]


이후로는 철저하게 ‘일의 시간’이었다. 나는 입사 이래 대체로 일을 잘/많이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는 내가 머리가 비상하게 좋다거나 인적 네트워크가 뛰어나서는 아니다. ‘엉덩이’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정한 ‘미션’을 끝내기 전에는 일하기를 그만두지 않는 게 몸에 밴 습관이다. 조급증도 얼마간 있어 미리 서둘러서 일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고등학교 시절 별명이 ‘또공’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또 공부한다며, 짝꿍이 짜증 섞어 지어준 별명이었다. 나는 그저 아직 공부를 다 마치지 못했을 뿐이었는데.


여기저기 물어 취재원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구하고, 회의 중이거나 운전 중인 그들을 기다려 통화하고, 절대 쉽게 전화 받는 법 없는 관계 정부기관 담당자들에게 수차례 전화를 돌렸다. 취재 내용을 정리하고, 아직 취재가 덜 된 부분을 체크했다. 오후 4시경 팀 회의에 참석했다. 내 담당인 연재물 필자가 보내온 200자 원고지 20매 분량 원고를 뜯어고치고 제목을 달고 관련 사진을 첨부해 송고했다. 외국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다 귀국해 작은 양조장을 차리고 술을 담그는 사람들에 관한 글이었다. 산지 태양광 건은 이러한 야마로 기사 쓰겠다, 내일 오후까지 출고 가능하다고 부장에게 보고했다.


저녁 7시,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노트북을 끄고 책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루치 노동에 지친 직장인답게 생동감이란 1도 없는 발걸음으로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까 낮에 통화한 대학교수였다. 얼른 가방에서 에어팟을 꺼내 귀에 꼽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에스컬레이터에 내려 바삐 오가는 승객들과 부딪힐 리 없는 벽 쪽으로 가 붙어 섰다. “여보세요, 네 교수님, 지금 통화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그는 다소 흥분해 있었다. 나와 전화통화를 끊고 뉴스와 자료를 더 찾아봤더니 여러 사안에서 아까 얘기한 것보다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고 했다. 소음이 적지 않은 지하철 역사이고, 앉아서 그가 하는 말을 받아 적을 데도 없어 휴대전화 녹음 버튼을 켰다. 그는 내가 정부 관계자들에게서 들은 얘기를 궁금해 했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목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길 원했다.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이 (내로라하는 전문가라 하더라도) 꽤 많다. 이런 사람이 한 시간을 말하면, 그것은 기사에 아예 반영되지 않거나 많아야 한두 문장으로 축약되곤 한다. 취재기자 입장에서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상황이 허락한다면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이라도 성실하게 얘기 듣는 게 기자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가끔 그 장황한 ‘연설’ 끝에서 진주 같은 팩트가 나오고, 한두 문장일지언정 그 문장이 기사의 가치를 크게 높여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열심히 맞장구치며 그의 말을 들었다. 얘기가 샛길로 새지 않게 적당히 질문을 던져가면서. 어느덧 퇴근하는 사람들이 뜸해져 통로를 설렁설렁 오갈 수 있었다.      





'잘 했다' 말할 수 있는 하루의 마무리


“예, 교수님 말씀 감사해요. 내일 말씀해주신 사안들을 좀 더 알아봐야겠네요. 예예, 들어가세요.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저녁 8시 30분. 1시간 넘게 통화한 것이다. 내가 그에게 귀띔해준 정부 쪽 얘기가 그에게 얼마나 유용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늦은 저녁 뿜어낸 그의 ‘열정’은 다행히도 내 기사에 도움 되는 것이었다. 덕분에 내일 오전에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다. 어떻게 기사를 구성할지도 좀 더 구체화됐다.


사람들(특히 전문가들)이 기자의 취재에 성의껏 응하는 이유는 대게 기사에 자신의 이름이 노출돼 자기 커리어에 플러스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할 수 없는 선의가 분명 존재한다. 세상에, 우리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선의. 좋은 기사를 써달라는 당부. 이날 만난 것도 그러한 종류에 속했다.


이제부터 지하철 타면 집에는 밤 9시30분에 도착한다. 아직 저녁을 먹지 못해 허기졌고, 다리도 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좋았다. 이러한 퇴근의 순간을 사랑하기에.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만족감만으로도 ‘좋은 퇴근’인데, 거기에 더해 내일 하루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까지 얻었다. 숱한 뉴스에 묻힐 게 뻔한 그저 그런 기사 하나 만드는 일에 불과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나 스스로에게 ‘잘 했다’ 할 수 있는 하루의 마무리. 이런 퇴근은 흔치 않다.


사실 퇴사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18년 가까이 해온 업(業)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중이었다. 이직을 전제하지 않는 퇴사는 영원한 퇴근이다. ‘좋은 퇴근’을 다시는 경험해볼 수 없다.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열차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퇴근이 좋은데, 나 퇴사해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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