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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nam Kang Jan 02. 2021

기다리기만 하는 아이는 아니므로

일찍 퇴근했다고 아이 인생에 끼어들 권리는 없다

가끔은 선물처럼 이른 시각에 집에 오는 날이 있었다. 야근이 계속 이어지다 하루쯤 쉬어가도 되는 날이거나, 혹은 집과 가까운 곳에서 취재를 끝마치고 바로 퇴근하는 날이 그랬다. 이런 날이 금요일이면 주말을 일찍 시작했다는 기쁨에 나의 흥분 지수는 높아졌다. 오랜만에 집밥 해먹어야지, 모처럼 한우를 구울까? 밥 먹고 치운 뒤에 동네 산책도 나가자! 오후에 학원 가는 큰아이에게 엄마의 이른 퇴근을 알리려고 전화를 걸었다.


“준아, 엄마 오늘 너 영어학원 다녀오기 전에 집에 도착할 거 같아. 할머니 집으로 가지 말고, 바로 우리 집으로 와. 엄마가 맛있는 저녁 해놓을게. 한우 어때?


“엄마, 나 오늘 친구들이랑 떡볶이 사먹기로 했어. 나는 저녁 안 먹을게.”


서운했다. 일주일 내내 아침에 잠깐 얼굴 보는 게 전부이다시피 했는데, 그런 엄마가 직접 밥을 해준다는데 거절하다니. 현관문 여는 날 향해 도마뱀처럼 빠르게 기어와 안기던 아기는, 엄마 회사 가지 말라고 치맛자락 붙잡고 울며 매달리던 어린이는 대체 어디로 갔담.


차를 가지고 일찍 퇴근하게 된 날, 큰아이의 학원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학원에는 엄마가 데리러 왔으니 셔틀 타지 말고 엄마 차를 찾아보라고 전해 달라 부탁했다. 조수석 창문을 열고 열심히 손 흔드는 엄마를 발견하고 아이가 걸어왔다. 뒷좌석 문을 열고 앉자마자 하는 말, “엄마, 나는 친구들이랑 셔틀 타고 집에 가는 게 더 재밌단 말이야. 데리러 오지 마.”  


“엄마, 나 10분 후에 도착하는데, 애들 어딨어요?”


더운 여름 날 저녁이면 외할머니는 작은 아이와 집 근처 공원 놀이터에 있곤 했다. 유치원 다녀와서 일찍 저녁을 먹고 이제 좀 더위가 가신 시간에 놀이터에 나와 노는 거였다. 또래 친구들도 대부분 더위를 피해 저녁에 놀러 나왔기에 여름날 저녁의 놀이터는 흡사 동네잔치 분위기였다(물론 코로나19 이전 얘기다).


한 무리의 아이들 틈에서 작은 아이를 찾아내 엄마는 아직 저녁을 먹지 못했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니 집에 가자고 했다. 엄마가 와서 반가운 아이 표정은 사라지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했다.


“엄마는 집에 가서 밥도 먹고 옷도 갈아입어. 나는 더 놀 거야.”


엄마를 우주 끝까지 사랑한다는 아이가, 아직 잘 때 엄마와 붙어 자려고 하는 아이가 분명하게 나와 자신의 시간을 갈라버렸다. 작은아이마저도 엄마라면 무조건 따라나서는 아기가 더는 아니었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을 한아름 사서 다시 공원으로 나왔다. 친정엄마는 들어가시라고 하고,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 하고 외쳤다. “우리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왔어!” 작은 아이가 신이 나서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아이들은 폴라포, 삐삐코 등을 하나씩 입에 물고 다시 놀러가 버렸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비닐봉지를 손에 든 채로 아이들 노는 걸 바라봤다. 다른 엄마들이 아이스크림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줬지만, 가끔 나타나는 나는 그 엄마들의 무리에 속하진 않는다. 초보엄마 때는 이런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이제는 느긋하게 소외감을 즐긴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아이들이 껍데기를 버리러 내게 다시 온다. 물티슈를 꺼내 아이들 입가를 닦아준다.


뒤를 돌아볼 때 있어주면 그만


       

일찍 퇴근한 날엔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와 맘 편하게 저녁 먹고, 느긋하게 치우고, 날이 좋으면 동네 공원으로 산책 나가고 싶다. 하지만 엄마가 일찍 오는 날을 깜짝 선물처럼 여기던 아이들이, 이제는 엄마가 일찍 퇴근했다고 자신들의 생활을 방해하는 것을 싫어한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는 중이었고, 친구네 할머니가 저녁 먹고 놀러오라고 했으니 가야 하는데 엄마가 집에 가자고 하면 안 된다는 작은아이. 엄마가 불쑥불쑥 학원 앞으로 나타나 납치하듯 자기를 태워가지 말았으면 좋겠고, 저녁 먹고 난 뒤 할머니 집에서 만화책 읽어야 하는데 집에 가자고 재촉하는 엄마가 싫은 큰아이.


나는 서운하지만, 생각해보면 아무리 엄마라도 아이의 생활을 훼방 놓을 권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업무 지시를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 사무실에 한창 붙어있더니 꼭 필요할 땐 사라지고 없는 예측불허한 상사를 싫어하면서, 나 또한 아이들에게 나의 고무줄 퇴근 시간을 가지고 그와 비슷하게 예측불허하게 행동하는 건 아니었을까.


그 후로 작은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우선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허기를 참을 수 없겠다 싶으면 동네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을 샀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구경하며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퇴근길에 큰 아이가 학원 셔틀버스를 하차하는 장소에 차를 대고 서 있던 적이 있다. 무슨 얘기가 그리 재밌는지 아이는 친구와 재잘대며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넜다. 천천히 차를 몰아 아이 뒤를 따랐다. 아이는 친구와 학교 앞 분식집에 멈춰섰다. 차 문을 열고 인사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그만 뒀다. 아이들만의 즐거운 세계를 훼방 놓고 싶지 않았다. 큰 아이가 할머니 집으로 와서 책 읽고 있다고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원하는 만큼 책 읽은 다음 집에 오게 놔두라고 했다.

      

집에 늦게 오는 마라는 미안함 때문에 일찍 집에 오는 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잘해주려고 애쓸 필요는 없었다. 놀이터에서 한참 놀다가 뒤를 돌아봤을  엄마가 벤치에 앉아있고, 비밀번호를 누르는 대신 초인종을 누르면 현관문 열어주는 엄마가 있는 .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좋아했다. 엄마가 아이들의 주인공인 시절은 이런 식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의 배경, 따뜻하고 든든하며 무엇보다 변함없는 배경이 되어야 하는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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