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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nam Kang Feb 02. 2021

뉴욕 커피숍의 언니들

AF 맥두걸 여사와 카페 그럼피

맥두걸 스트리트(Mcdougall St).


뉴욕에 오면 꼭 가볼 곳을 구글맵에 표시하면서, ‘작은 아씨들’ 조의 하숙집과 카페 레지오(Café Reggio)가 그리니치 빌리지의 맥두걸 스트리트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맥두걸이라니, 쉽게 잊히지 않는 이 명칭은 아마도 남북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이나 뉴욕시장 혹은 그에 버금가는 정치적 입지를 다진 남성의 성(姓)이지 않을까, 상상했다.


지난해 12월 초순, 우연히 ‘그리니치 빌리지 커피 워킹투어’라는 것을 발견해 친구와 함께 참여했다. 가이드 존은 “3월 이후 첫 투어”라며 감격해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투어가 전면 중단됐고, 몇 번 화상(virtual) 투어를 진행했는데, 그닥 재밌지 않았다면서.


존은 7명의 투어 참가자들을 그리니치 빌리지의 오래된 커피원두 매장, 커피숍 등으로 인솔했다. 그리고 투어의 마지막은 카페 레지오. 1927년부터 맥두걸 스트리트에서 자리를 지킨,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숍이다.


카페 레지오가 유명한 건, 뉴욕에 카푸치노를 처음 소개했기 때문이다. 원래 이탈리아 이민자가 운영하는 이발소였고,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카푸치노를 한 잔씩 대접하다가, 카푸치노가 너무 인기가 좋아 아예 카페로 변했다고 한다. 카페 레지오는 존 레논 등 예술가과 작가들이 즐겨 찾는 단골 카페였고, 뉴욕 배경의 영화에도 종종 출연했다. 이런 유명세 때문인지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인데도 낡고 좁은 실내에 손님이 꽤 많았다. (실내영업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던 때였다.)


카페 레지오(왼쪽)와 카페 레지오의 카푸치노.


뉴욕 커피숍의 여왕, A.F 맥두걸


다시 맥두걸로 돌아와, 가이드 존은 뉴욕 커피의 역사에 걸출한 여성이 한 명을 소개했는데, 바로 앨리스 푸트 맥두걸(Alice Foote MacDougall, 1867~1945)이다. 맥두걸 스트리트가 비록 내 예상대로 18세기 뉴욕의 상인이자 군인 알렉산더 맥두걸의 이름을 딴 것이지만,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맥두걸 스트리트에서 뉴욕 커피업계의 거물이었던 맥두걸 여사를 떠올린다고 한다. 요즘도 커피 비즈니스는 주로 남성이 이끌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100년 전에 뉴욕 커피업계에 걸출한 여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맥두걸은 대조부 중 한 명이 뉴욕시장을 지낸 뉴욕 정치가 가문의 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스무 살에 14살 연상의 사업가 앨런 맥두걸과 결혼했다.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907년, 그녀 나이 마흔에 남편이 사망했다. 어린 세 자녀를 건사해야 하는 그녀는 남편이 하던 커피 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사업하는 여성이 드물었고 또 꺼려하던 시대였기에 그녀는 ‘A.F. 맥두걸’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거래처나 고객이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앨리스 푸트 맥두걸. (사진 출처 : Jessie Tarbox Beals. “Alice Foote MacDougall of restaurant fame.”


당시 사람들은 커피원두를 한 자루씩 사다가 집에서 직접 볶았다고 한다. 맥두걸은 이러한 불편을 해소해주고자 요즘 식으로 로스팅한 커피원두를 작은 봉지에 담아 판매했다. 고객은 우편으로 각 가정에 전단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모아나갔다. 하지만 ‘우편 마케팅’에 비용 소요가 꽤 크자 맥두걸은 새로운 방식에 도전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체험 마케팅이다.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이 ‘아마존고(Amazon Go)’라는 편의점을 만든 것과 같은 이치로, 맥두걸은 그랜드센트럴역에 뜨거운 커피와 와플을 파는 ‘작은 커피숍(The Little Coffee Shop)’을 열었다. 뉴요커들은 와플 굽는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작은 커피숍을 찾아 와플과 커피를 함께 구매했고, 이곳은 곧 뉴요커가 사랑하는 명소가 됐다.


서비스 카푸치노가 인기를 얻자 이발소를 카페로 바꾼 카페 레지오처럼, 맥두걸도 내친 김에 본격적으로 레스토랑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맨해튼 43, 47, 46, 57번가에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들 레스토랑 역시 큰 성공을 거뒀는데, 비결은 ‘차별화’에 있었다. 당시 맨해튼의 식당들은 번잡스럽고 지저분했다고 한다. 맥두걸 여사는 모든 레스토랑을 유럽 스타일로 우아하고 쾌적하게 꾸몄다. 레스토랑 이름도 이탈리아어나 유럽도시에서 따온 The Cortile(안뜰), The Piazzetta(작은 광장), Firenze(피렌체), Sevilla(세비아)였다. 지저분한 식당에 질린 뉴요커들은 맥두걸의 유럽풍 레스토랑을 매우 좋아했다.


스타벅스 이후 가장 성공한 커피 기업은 자타공인 블루보틀(Blue Bottle Coffe, INC)이다. 커피산업 및 커피문화를 스페셜티 커피로 방향을 틀어버린 블루보틀은 2012년 첫 외부 투자를 받기에 앞서 책 한 권을 펴냈다.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James Freeman)의 커피 철학과 사업 방식을 보여주는 책 ‘The Blue Bottle Craft of Coffee : Growing, Roasting, and Drinking, with Recipes’. 블루보틀 매장마다 전시된 잘 디자인된 하드커버의 이 책은 블루보틀 브랜딩 작업의 시작이라 할만하다. 이후 블루보틀은 거듭 외부 투자를 유치하고, 첫 해외시장으로 일본에 진출하고, 2017년 네슬레에 자신을 매각했다.


블루보틀보다 90년 앞서서 자신의 커피 인생을 책으로 풀어낸 이가 맥두걸이다. 맥두걸은 1926년 ‘Coffee and Waffles’라는 책을, 이후 두 권의 자서전 ‘Alice Foote MacDougall : The Autobiography of a Business Woman’(1928)과 ‘The Secret of Successful Restaurants’(1929)를 펴냈다. 이들 책을 구하지 못해 읽어볼 순 없었는데, 대신 인터넷에서 그녀가 발간한 팸플렛을 볼 수 있었다.


Alice Foote MacDougall. Who is Alice Foote MacDougall? circa 1930. New-York Historical Society.


팸플렛은 제목부터가 당차다. ‘앨리스 푸트 맥두걸은 누구인가’. 어떻게 해서 커피 사업에 뛰어들게 됐고, 사업을 대하는 자신의 철학이 무엇인지 두 페이지로 설명하면서 마지막 페이지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주소를 나열해놨다. ‘어린 세 자녀를 건사하고자 사업에 뛰어든 용감한 여성’이라는 브랜드 스토리를 보여주니, 호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불굴의 열정을 보여주는 첫 문단은 이렇다.


"성공은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성공을 받아들이려는 열린 마음을 가진 이에게만 조용하게, 기대치 않게 다가옵니다. 난관은 당신이 파괴하기를 허락하지 않는 한 파괴적이지 않습니다. 당신이 난관을 짓밟지 않으면 난관이 당신을 짓밟을 수 있습니다. 난관은 기회이고 성공은 그 잔재입니다."


맥두걸의 영광스런 시절은 1929년 시작된 경제 대공황과 함께 막을 내렸다. 몇 번의 재기 노력이 실패한 뒤 맥두걸은 1935년 은퇴했다.



그랜드센트럴의 작은 커피숍

그랜드센트럴역의 렉싱턴애비뉴 쪽 출입구에 '카페 그럼피'가 있다. 맥두걸의 '작은 커피숍'도 렉싱턴애비뉴 쪽에 있었다고.


100 넘은 식당이나 카페가 많은 뉴욕이건만 ‘맥두걸 제국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그녀의 레스토랑이 있던 자리는 귀금속 가게나 프린트업체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쉬움을 달랠 만한 커피숍이 하나 있다. 맥두걸의  카페 ‘작은 커피숍 있던 그랜드센트럴역 ‘카페 그럼피(Café Grumpy)’.


카페 그럼피는 여성 소유 비즈니스(woman owned business)로 뉴욕시 인증을 받은 곳이다. 캐롤라인 벨(Caroline Bell)이 남편 크리스와 함께 2005년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창업했다. 스페셜티 커피를 지향하며 2009년부터 직접 커피를 소싱 및 로스팅한다. 그럼피 카페의 매장은 모두 11개. 그린포인트 1호점과 뉴저지와 플로리다에 매장을 하나씩 둔 것을 제외하고 모두 맨해튼에 있다. 그랜드센트럴역의 매장은 2014년에 문을 열었다.


지난해 11월 찾아갔던 그랜드센트럴역의 카페 그럼피는 한산했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하고, 그랜드센트럴역의 인파도 사라졌고, 같은 건물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도 문을 닫았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래도 손님이 아예 없진 않았다. 손님은 끊길 듯 끊이지 않고 한둘씩 찾아왔다. 창가의 바(bar)에 몇 개 좌석이 있을 뿐, 실내 테이블이 없는 작은 커피숍인 게 차라리 다행일까. 손님들은 당연한 듯 커피 한 잔씩 받아들고 카페를 떠났다. 역전 카페가 응당 그렇듯 이곳은 바쁜 사람들-코로나 팬데믹 이전 출근하는 직장인, 그랜드센트럴역에서 기차를 타는 승객, 그리고 뉴욕 여행자-에게 커피라는 따뜻한 안식을 안겨주는 역할을 했겠지.



‘그럼피(grumpy)’는 기분 나쁜, 짜증난 등의 뜻이다. ‘Grumpy person’이라고 하면 ‘성질머리 나쁜 사람’이란 뜻이다. 캐롤라인 부부는 유머의 코드로 ‘그럼피’를 차용한다. ‘기분 나쁜 채로 카페를 찾더라도 행복하게 떠나게 해주겠다(If you come in grumpy, you leave happy!)’는 게 이들의 모토다. 브랜드 이미지도 잔뜩 뿔이 난 사람의 얼굴인데, 보는 순간 큭 하는 웃음이 나는 그림이다. 오렌지색의 시그니처 컬러도 경쾌한 느낌이라 도저히 그럼피해질 수가 없다.


무엇이든 경쟁이 치열한 뉴욕에서 15년 만에 매장을 11개로 늘렸다는 것은 분명 성공적이라 할 것이다. 특히 캐롤라인 부부는 외부 투자를 유치하지 않고 자신들 힘으로 매장 수를 늘려왔다. 한 매장에서 쌓아올린 수익으로 새로운 매장을 여는 식으로 사업을 이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식당과 카페가 어려움을 겪듯 카페 그럼피도 마찬가지다. 최근 포브스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팬데믹에 내내 시달린 2020년 매출이 전년 대비 80% 감소했다고 한다. 7명의 사무실 직원은 단 1명만 남게 됐다. 캐롤라인 본인이다. 월스트리트가 있는 로우 맨해튼의 매장 세 곳은 영업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그래서 저는 커피를 선택했습니다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의 카페 그럼피.


얼마 전 그린포인트의 카페 그럼피에 다녀왔다. 테이블을 다 치워버려 카페 내부는 썰렁해보였다. 두 명의 직원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내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들이 캐롤라인을 찾았다. 직원들은 바로 옆 사무실 겸 로스터링 공간에서 그녀가 일하고 있다고 했다. 심각한 불황이 한 명의 여걸을 커피 비즈니스에서 퇴장하게 하는 일은 AF 맥두걸 한 명으로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공을 향한 열정에 불타오르던 맥두걸에게 커피는 그저 생계수단만은 아니었다. 맥두걸이 커피에 대해 남긴 아름다운 고백이 캐롤라인을 비롯한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


"커피는 따뜻하고 호화로운 남쪽 땅의 아름다운 식물입니다. 커피는 잎과 꽃과 열매를 동시에 맺는 불굴의 존재입니다. 커피는 희망 잃은 이에게 안락함을, 절망한 이에게 믿음을, 기력을 잃은 이에게 휴식을 가져다주는 아주 맛있는 음료입니다. 그래서 저는 커피를 택했습니다."

(Coffee, the beautiful plant of the warm, luxurious Southland ; coffee that is so indomitable that it bears leaf and flower and fruit at the one time ; coffee, the delectable beverage that carries comfort to the hopeless, faith to the despairing, and rest to the enervated; coffee was my choice.)



참고자료1

참고자료2

참고자료3

참고자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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