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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Sep 08. 2022

아내의 성역, 요리 침범기

인제 아내가 집 나가라 해도 무섭지 않게 되었다.

나는 요즘의 젊은 남성으로 태어나지 않은 게 참 다행이라 생각할 때가 있다. 라떼(?)에 남성들은 바깥 일 집안 일은 여성 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손 하나 꼼짝하지 않고도 잘 지낼 수 있었다. 그것을 서로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기 때문에 집안 일 때문에는 별 갈등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내가 아들만 둘 있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남성이 오히려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들 집에 가 보면, 종일 근무하고 돌아와서는 아내가 준비해 둔 식사를 마치면 설겆이에 청소는 기본이고 아이 식사에서부터 기저귀 갈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에서 목욕에 잠 재우기까지 … 그야말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이 거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떼(?)에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미래를 위해 자기계발을 한다는 생각에 어학책도 들추고 자격증 준비도 했던 기억이 나는 데 지금은 생각조차 못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 시대 남성들은 참 좋은 시대에 태어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집안 일을 크게 보면 육아, 요리, 세탁, 청소와 분리수거일텐데 나와 비슷한 나이로 육아가 끝난 가정에서 남성들이 가장 먼저 입문하는 영역이 청소인 듯 하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나마 청소기를 돌리고 정리하는 일은 큰 기술(?)이 필요치 않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한참 전부터 청소 일은 내가 도맡아 했다.      


다음은 도전한 분야가 세탁인데 세탁일을 도우면서는 도전하기 전에 느낀 두려움(?)은 괜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외로 세탁일은 힘들지도 않고 익숙해지면서 재미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옛날처럼 직접 손빨래를 한다면 어마어마한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기계가 거의 다 하고 나는 개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관리만 잘 하면 자신의 일상에 큰 지장없이도 가능한 분야였다. 특히, 이사하면서 구입한 건조기는 내가 쉽게 세탁 일에 진입하도록 해 준 신무기였다. 세탁물은 색깔별로 종류별로 보관해 두고 쌓이면 세탁과 건조를 번갈아 가며 하고 세탁 후에는  유튜브를 통해 익한 방법로 가지런하게 개어 놓으면 마음도 정리되는 느낌이라 좋다.        



과거보다 시간이 좀 더 많아지고, 기존에 맡아 하던 집안 일에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마지막 아내의 성역이라 여겼던 요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요리'는 정말 두려운 영역이었다. 그렇지만 인간이 고립된다고 생각했을 때, 의식주 중에 생존과 직결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가까운 대학교에 중장년들을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 참여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요리라 할 수도 없는 라면, 국수 정도 끓여 먹는 정도였는데 본격적인 요리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번 3개월 여 과정 참여를 통해 무려 30 종류의 음식을 직접 만들었다. 요리강의를 해 주시는 교수님과 조교 그리고 여성분들과 짝이 되어 만들었기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만들고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면 스스로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직접 음식 재료를 만지고 다듬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이미 죽어 있는 것을 손질했지만 맨 손으로 왕새우, 오징어, 명태 심지어 생닭까지 손질해 본 경험을 했다. 우리들의 부모들은 그런 생물을 접하기 위해서 직접 죽여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비위가 약한 나에게는 무척 다행이었다. 그리고 파, 마늘, 양파 등 각종 양념재료를 직접 썰고 다지면서 칼 다루는 법도 익히고, 국간장, 양조간장, 참치간장, 홍게간장 등 각종 간장의 쓰임새도 알게 되고, 멸치액젖과 멸치, 새우젓과 건새우 등도 활용할 줄 알고, 토마도는 익혀 먹어야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는 것, 들기름은 서양의 올리브유와 같은 좋은 기름이지만 산패하기 쉽고, 달걀은 완전식품이라 연령이 높아질수록 매일 섭취하면 좋고 반숙 상태가 가장 영양분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강한 불과 약한 불 사용과 먼저익혀야 할 것과 나중에 익혀야 할 것 등에 대한 지식도 얻었다.      


식용유는 콩에서부터 나온 기름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포도씨유 카놀라유는 무슨 기름인지 알겠는데 식용유는 뜻만 보면 먹는 기름이라는 뜻인데 어디서 나온 기름인지 궁금했는데 그것도 알게 된 것이다. 본래 이름은 대두유란다.      


다양한 요리를 접하면서 요리를 만드는 과정도 중요했지만 나에게는 요리라는 일이 두렵지 않게 된 게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요리를 많이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실 요리 강습에서 배운 대부분의 음식은 이미 마트에 가면 훨씬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쉽게 더 맛있는 요리를 접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자주 먹지 않는 음식은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것보다 외식을 하는 기쁨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요리는 요리하지 않고 재료 그대로 먹는 것이 제일 몸에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직접 요리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 레시피만 있으면 무슨 요리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은 무엇보다 큰 수확이라 하겠다.     


더 큰 수확은 인제 아내가 집 나가라 해도 무섭지 않게 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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