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슬라브인의 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슬로베니아는 발칸반도 북서부에 자리하고 있는 조그마한 나라다. 발칸반도에서도 제일 북쪽 위치한 슬로베니아는 발칸반도에 속하지 않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유고슬라비아연방에 속해 있었기에 범 발칸반도 국가로 본다고 한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분리된 슬로바키아와 혼돈하기 쉽다. 이름도 비슷하지만 실제 민족 구성이나 종교도 비슷한 나라라고 한다. 국기에 새겨진 문양은 다르지만 백청적 스트라이프를 사용하는 국기 색깔까지도 같다.
슬로베니아는 2차 전쟁 후,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한 국가였다가 1980년 티토가 죽자 구심점이 사라진 상태에서 불어온 경제 위기로 잠재해 있던 민족주의가 살아나면서 독립을 선언한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독립한 나라다. 당시 유고연방내 가장 큰 형님은 세르비아였고 세르비아가 티토 사망 후에는 악명 높은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가 세르비아 민족 중심의 유고연방을 꿈꾸자 강력한 티토의 리더십 속에 잠잠해 있던 나라들이 독립을 선언하고 세르비아와 전쟁을 벌여 하나씩 독립하게 된 것이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유고연방의 큰 형님격으로 연방의 국방과 경찰력을 장악하고 있던 세르비아는 이들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으나 슬로베니아 내에는 세르비아 민족은 거의 없었고 세르비아가 동시에 여러 전장으로 분산하기 힘들어 전쟁 10일 만에 슬로베니아 독립을 인정하게 되면서 1991년 유고연방 내에서 최초로 독립하게 된 것이다.
슬로베니아는 유고연방 국가 중에서는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한 나라다. 2017년 기준으로 명목GDP가 2.3만 달러가 넘는다. 인구는 2백만 정도이며 국토 면적은 경상북도 면적과 비슷하고 수도는 ‘사랑스러운’이란 의미를 가졌다고 전해지는 류블랴나다. 류블랴나의 면적은 우리나라 안산시 규모이고 인구는 28만 정도다. 종교는 카톨릭을 믿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발칸반도에서는 크로아티아와 더불어 카톨릭을 가장 많이 믿는 나라가 슬로베니아인데 이것은 발칸반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오스만트루크의 지배로 양분되어 있을 때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속국이었기 때문이다.
류블랴나 도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야경에 나섰다. 도심 가운데는 다리 길이가 그리 길지 않은 류블랴니차라는 강이 흐른다. 도심을 흐르는 파리 세느강의 축소판으로 보면 되겠다. 강 주변에는 주요한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때마침 연말 축제를 위해 설치된 조명시설들이 유럽의 조그만 도심을 밝히고 있었다. 20년 이상 여행사에서 전 세계를 안방처럼 드나든 가이드에 의하면, 만약 유럽에서 한 달 살이를 한다면 자신은 망설임 없이 류블랴나를 택할 정도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예쁜 즉 뷰티플이 아니라 프리티란 단어가 어울리는 도시라고 했다.
식사 장소로 가기 하기 위해 강변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사실 다음 날 본격 관광이 시작되는 지역의 야경을 보는 셈이 되었다. 호텔에서 나와 강을 가로지르는 첫째 다리가 용의 다리였다. 용은 류블랴나에서는 특별한 상징이라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아손이 드레곤을 무찌르고 류블랴나를 구했다는 전설에서 용이 류블랴나의 상징이 되었다는데, 이아손이 상징이 되어야지 왜 용이 상징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그 외에도 정육업자의 다리, 구두수선공의 다리란 이름을 가진 다리들이 류블랴나차 강을 가로 짓고 있다.
때는 마침 연말연시 분위기에 젖어 도시 전체가 축제 중이라는 느낌일 정도로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도시의 어둠을 밝히고 있었고 도시의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역동적인 도심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연말연시를 이용한 여행의 장점 중 하나가 온 지역이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새해를 맞기 위한 축제 분위기로 이어져 어느 곳을 가더라도 그 지역 마을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연말연시 여행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류블랴나를 흐르는 강도 아담했지만 도심도 30분 정도 걸으면 주요 건물을 다 만날 수 있을 정도였다. 다음 만난 다리는 정육업자 또는 푸줏간의 다리로 불리는 다리였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주위에 정육점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지금은 정육점은 찾기 어려웠고 다리 위의 괴상한 조각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슬로베니아의 유명한 조각가의 작품으로 <아담과 이브>, <프로메테우스>, 반인반수의 <사티로스> 등의 작품이라 한다.
조금 더 강을 따라 걸어가니 이 도시의 가장 중심이라할 수 있는 프렌세렌 광장이 나왔다. 프렌세렌은 이 나라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다. 광장 중앙에 그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동상 뒤에는 그가 사랑했지만 그 여인의 부모의 반대로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그의 연인 율리아 프리믹이 황금가지를 들고 있다. 이 광장에서 온갖 주요한 행사가 열리는데 때마침 개최된 가장행렬 행사를 군중들 사이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동상 건너편에는 17세기 후반에 지어졌다는 분홍빛의 아름다운 프란체스카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이 광장에서 류블랴나 성을 가려면 광장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세 개로 되어 있다. 그래서 다리 이름도 ‘세 개의 다리’다. 처음에는 하나만 있었으나 나중에 두 개가 추가되었다 한다. 또 하나의 다리는 구두수선공의 다리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처음엔 정육업자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당시 황제가 돈을 주고 이전케 한 뒤에 구두수선공이 자리를 잡아 그렇게 명명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최초 다리를 지을 때 이름도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어 세 개의 다리 중 첫째 다리는 당시 지배하고 있었던 오스트리아 대공 프란츠 카를을 기념해 카를교라고 했으나 나중에 세 개의 다리로 이름이 바뀌었듯이 정육업자의 다리나 구두수선공의 다리 이름도 건축 시점에는 특별한 이름이 분명히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여러 개의 깃발을 펄럭이는 곳은 틀림없이 관공서였다. 보통은 국기, 그 지역기, 유엔기 등이 꽂혀 있는데 한 곳은 깃발이 무척 많다. 특히 무지개색으로 된 깃발이 눈에 띄였다. 그곳은 시청 건물이었꼬 성소수자를 지지하는다는 의미의 깃발이라 한다. 공기관 차원에서 그것도 보수적인 종교 카톨릭 국가에서 성소수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깃발은 내게 남다르게 다가왔다. 추가로 환경과 관련 인증을 표시하는 깃발도 함께 펄럭였다.
이곳도 당연히 대성당이 도심 중앙에 있었다. 이 성당 문에는 유명한 조각가의 부조물이 있었는데 부조물 위쪽의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과 맨 아래 구석에 살짝 새겨둔 부조물이 재미있었는데 위쪽의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나라가 독립할 때 가장 먼저 독립국가로 인정해 준 사람이 로마카톨릭 교황이었던 요한 바로로 2세여서 감사한 마음으로 새겼다고 하고, 마지막 부조물은 이 전체 문의 부조물을 만든 사람의 얼굴이었다고 했다. 이곳도 성당 내부는 볼 수 없었다.
류블랴나 성이 다양한 색의 형광 빛으로 류블라냐의 도심을 향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다음 날 올라간 류블랴나 성은 걸어서 올라가도 금방이지만 이 지역의 명물인 산악에스컬레이터 격인 푸니쿨라를 이용했다. 류블라냐 성은 12세기에 합스부르크 왕가 지배 시절 오스만 제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립되었고, 1517년 지진으로 무너졌다가 복구되었는데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나폴레옹 지배 시절에는 병원과 군대 막사로 사용되었다 한다. 내부에는 류블라냐 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종탑이 설치되어 있어 올라가 확 트인 사방에 빨간 지붕으로 빼곡한 류블랴나 시를 보며 기념 사진을 남겼다. 내부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다는데, 감옥으로 이용된 곳도 보고 내부에 개인예배실로 이용되었다는 성당도 관람했다. 이 성당은 다음 여행할 블레드 섬의 성당과 함께 슬로베니아 젊은이들이 가장 결혼하고 싶어하는 장소로 거론되는 장소라 한다.
유럽 지붕들은 왜 빨간색일까? 한 번쯤은 갖는 의문이다. 유럽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토양 라테라이트토, 농작물 경작에는 불리한 메마른 토질이지만 벽돌 만드는데는 제격인데 붉은 색깔을 띤다고 한다. 이 흙을 테라코타기법으로 구워 벽돌을 만들어 지붕으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이것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건축법상 제한을 둬서 통일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사랑스런 도시 류블랴나를 떠나 이 지역 최고의 관광지로 꼽히는 블레드 섬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알프스 산맥에 덮힌 흰 눈이 차창을 지난다. 알프스산이라 하면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만 생각했지만, 이번에 여행하면서 이탈리아 위에 있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알프스는 율리아 알프스산맥이라 하고, 발칸반도로 쭉 내려오는 산맥으로 이어진 알프스는 디나르 알프스 산맥이라고 함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이동하는 버스 바깥에서 펼쳐지는 눈덮힌 알프스가 다음 여행지의 풍광을 짐작케 하여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블레드 섬은 알프스의 진주, 보석으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슬로베니아뿐 아니라 유럽 내에서도 최고의 휴양지로 꼽히는 지역이다. 이 블레드는 독일 제국의 헨리 2세가 이곳 주교에게 선물로 준 지역이라는데 당시만 해도 하도 먼 곳이라 정작 주교는 생전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곳이라 한다. 알프스 산맥을 병풍처럼 두른 빙하로 채워진 호수는 수정같이 맑은 물을 담고 있고, 그 호수 중간에 있는 블레드 섬에는 고딕양식으로 뾰족한 탑이 있는 성당이 우뚝 서 있다. 그리고 블레드 섬을 감싸고 있는 호수 건너편 절벽에는 아름다운 블레드 성이 위치해 있어 와~ 하는 탄성이 절로나는 절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블레드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나무로된 배를 타야한다. 이곳은 환경 보존을 위해 18세기부터 무동력선 ‘플레트나’라는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데, 이 배의 노늘 젓는 뱃사공은 보통(?) 뱃사공이 아니란다. 뱃사공 되는 자격과 과정이 아주 까다롭다고 하는데, 가이들에 따르면 이 사업이 독점사업이라 쉽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로 알려지면서 관련 스포츠 국가대표선수 출신과 같이 쟁쟁한 사람들이 많이 지원하여 경쟁율이 높고 자격증을 따는 훈련과정도 까다롭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좀 달라보이는 풍채를 가진 뱃사공의 도움으로 동화 속에나 나옴직한 블레드 섬으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 호수 한 켠에 하얀색으로 된 건물이 있었는데 티토별장이었다가 지금은 호텔로 사용되는 곳이라고 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 최고의 실권자의 별장이 이곳에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임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블레드 섬 선착장에 도착하자 유명한 99개의 계단이 나왔다. 99계단 위에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블레드 섬에 있는 이 성당은 앞에서 언급했던 대로 이곳 젊은이들이 결혼식 장소로 사용하고 싶은 최고의 장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성당에서 결혼하기 위해서는 맨 아래 계단에서 신랑이 신부를 안고 99계단을 올라가면 잘 산다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이곳 슬로베나아 출신이다 보니 트럼프와 멜라니아가 여사가 이곳에서 결혼했다는 말들이 있는데 낭설이라 한다.
섬에서 성당 주위를 돌며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이 성당이 애초에는 슬로베니아의 고대신을 모시는 신전이었다가 종교전쟁으로 파괴되고 성당으로 건립된 후, 앞서 나온 성당들처럼 수난을 겪다가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이 성당의 역사도 천년 쯤 되는 셈이다. 성당 내부에는 소원을 이뤄주는 종이 설치되어 있다는데 그래서인지 종소리가 끊임없이 섬 전체를 울려댔다. 바깥에서는 요란스럽게 들리지만 정작 종을 치는 사람은 마치 귀가 먼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신기한 일이다. 성당 주변에서 바라보는 호수 주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모두들 인생 사진을 건져 보려고 이곳 저곳에서 셔터를 눌렀다. 섬에서 바라보는 블레드성도 일품이었다. 다시 배를 타고 나와 블래드성으로 이동했다.
블레드성은 130미터가 넘는 깎은 듯한 절벽에 우뚝 서있는 성이다. 1004년 브릭슨 주교가 방어용 탑을 설치하면서 시작해서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성의 모습을 갖췄으나 1511년, 1960년 지진으로 무너진 것으로 복구하여 1900년대 중반에야 현재 모습을 갖게 되었다 한다. 과거에는 성주가 거주하고 외침 방어용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박물관, 레스토랑, 와인판매처로 이용되고 있다. 성 주변으로 호수로 되어 있어 경관이 매우 아름다웠다. 좀 전에 들렀던 블레드 섬도 우뚝 서있는 승모승천성당과 함께 호수 저편에서 흐린 날씨 영향으로 신비에 싸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성에는 중세시대 인쇄술 그대로를 재현하는 쿠텐베르그 방식의 인쇄소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유료로 원하는 중세방식으로 인쇄를 해서 제공하는 서비스도 하고 있었다. 성 꼭대기에는 성 아래를 조망하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레스토랑에서 슬로베니아의 명물 크림케이크를 옛날 레시피대로 맛볼 수 있는 장소라 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내려가니 와인셀러가 나왔다. 가이드말에 따르면 이곳도 중세의 수도원에서 와인을 빚는 방식으로 만들어 품질 좋은 와인을 구입할 수 있는 장소라고 했다. 몇몇 일행은 이곳에서 선물용 와인을 구입하기도 했다.
슬로베니아 두 곳을 보고 이제 다시 크로아티아로 넘어가 오토캅이란 곳에서 숙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