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관계]
가끔은 너무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긴장하고, 집에 돌아오면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 애쓰고, 혼자 있을 때조차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좀 더 잘해야지. 더 실수 없이, 더 완벽하게.’ 그렇게 나는 매일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 어느새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일이 삶의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자 아이가 밝게 웃으며 달려왔다. “아빠!” 그 순간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가 잠시나마 사라졌다. 아이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이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지금, 정말 괜찮은 아빠인가. 아이가 기댈 수 있을 만큼, 믿을 수 있을 만큼 괜찮은 부모인가. 오늘 아이에게 짜증을 내지는 않았을까. 무심코 던진 말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하루를 돌아본다.
출근길 지하철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은 항상 긴장한 표정이다. 실수하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우고, 동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애쓴다.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 끊임없이 머릿속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아빠, 남편, 자식, 동료. 어느 역할 하나에도 흠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나는 점점 내 안의 중심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계속 달려가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늘 같은 질문이 맴돈다. 이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아이에게는 내가 뭔가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아침에 부스스한 머리로 식탁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아빠랑 밥 먹으니까 좋아.”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문득 깨닫는다.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 아이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주지 못한다. ‘그냥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는 위로를, 나는 나에게 하지 않는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역할을 맡든 부족함이 보이면 안 된다고 믿는다. 회의 중에도, 업무 중에도 항상 ‘완벽’을 떠올린다.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 하루가 끝나도 쉬이 머리를 놓지 못하고, ‘오늘 내가 했던 말이 괜찮았을까’ 같은 생각을 붙잡고 있다. 그렇게 나는 일에 끌려 다니고,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며, 스스로를 점점 더 조이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문득 드는 생각.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걸까,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걸까. 어릴 적 받아쓰기 시험에서 한 글자 틀릴까 봐 속상해하던 내가 떠오른다. 부모님은 한 번도 완벽을 강요하지 않았는데, 나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다. 늘 ‘좀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고, 그 마음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시험이 회의로 바뀌고, 선생님이 상사로 바뀌었을 뿐, 나는 여전히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는 아이로 남아 있다.
얼마 전, 퇴근 후 소파에 앉아 있던 나에게 아이가 조용히 다가와 손을 잡았다. “아빠, 힘들어?”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내 손을 조용히 잡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이는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그냥 아빠이기 때문에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그 진심 앞에서 나는 모든 긴장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마음속에 묻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그렇게 있어줄 수 있을까.
부모님도, 아내도, 친구들도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건 아니다. 다만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길 바랐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몰아세웠을까. 왜 늘 더 잘해야 한다고, 더 견뎌야 한다고 믿어왔을까. 어쩌면 ‘좋은 사람’이라는 틀 안에서 벗어나면 관계가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애쓰지 않는다고 해서 소중한 관계가 모두 무너지는 건 아니라는 걸. 오히려 애쓰느라 지쳐버리면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는 걸.
살다 보면 완벽하지 않은 날이 많다. 일에서 실수할 때도 있고, 가정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후회할 때도 있고, 배우자에게 다정하지 못한 날도 있다. 그런데도 내 사람들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아이는 여전히 내 품에 안기고, 부모님은 여전히 내 안부를 걱정하고, 아내는 여전히 내 곁에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조금은 안심한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믿어보게 된다.
애쓰지 않는다는 건 포기하거나 무책임하다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고, 때로는 멈춰 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완벽해지려는 대신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 아이에게 “괜찮아, 다시 하면 돼.”라고 말하듯,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말 한마디가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실수해도 괜찮고, 느려도 괜찮고, 가끔은 쉬어가도 괜찮은 사람. 애쓰지 않아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답을 찾는 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게 나도, 조금씩 나를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