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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언 Jun 24. 2021

게스트에겐 보이지 않아

우리 집 식탁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지

거실이 좁은 집에 굳이 8인용 식탁을 들였다. 명품 브랜드의 식탁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아이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생일 축하를 했다. 그리고 자주 낯선 이들과 음식을 나누었다. 


결혼 후 첫 크리스마스에 남편과 나는 친구들을 초대해 신혼집에서 홈파티를 했다. 우리만의 편안한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하고 그들에게 우리가 준비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남편과 나에겐 큰 즐거움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로 인해 생긴 인연들과 홈파티는 이어졌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주 집에 손님이 찾아오고 그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아마도 아이들에겐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에 오시는 것 같은 일상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사실 손님을 초대하는 일은 귀찮은 일이다. 쓸데없이 완벽해 보이고 싶은 욕망이 나의 어딘가에 있다가 불쑥 튀어나오다 보니,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소는 물론 메뉴 선정과 함께할 게임 목록에 음악까지 때때로 드레스코드도 정하곤 하니 손님을 초대하는 건 바쁜 워킹맘에게 벅찬 일이긴 하다. 게스트가 떠나고 난 뒤 조용한 밤에 혼자 뒷정리를 하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Photo by Cameron Smith on Unsplash

그래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초대를 이어가는 건 이 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나누는 그 시간이 행복해서다. 그런 거야 멋진 카페나 레스토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집 식탁에서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하지 마시라. 


유난히 우리 집 식탁에서 먹는 스테이크는 육즙이 더 맛있다고 게스트에게 칭찬 한가득 들어본 사람이니까. 어디 그뿐인가. 어머니가 물에 불려 갈아주신 녹두로 만든 녹두전은 어떻고, 한 겨울에 제주에서 온 귤을 일일이 까서 얼려두었다가 만드는 새콤달콤한 귤 주스는 윤스테이의 건강 주스에 버금가리라.


십 년이 넘도록 서먹한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해 커다란 식탁에 앉혀 진심을 담아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며 남편과 나는 무엇을 원했던 걸까. 아마 무엇을 원하거나 바라면서 초대를 했다면 이렇게 긴 시간 이어 오지는 못했으리라. 

그저 더 가까워지고 싶은 누군가를 초대해 마음을 담아 음식을 만들어 손때 묻은 커다란 식탁에서 함께 나눠 먹는 그것, 미소가 가득한 눈빛들을 바라보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것이 좋아서 일 테니 말이다.


올해는 코로나 집합 금지로 우리 식탁에 낯선 이는 앉지 못했다. 외출도 거의 못했지만 우리 식탁은 더 바빴다. 매일 식사를 하고 아이들 숙제도 봐주는 데다 주말에는 우리 가족 독서모임도 해냈다. 

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와 편하게 우리의 커다란 식탁 둘러앉아 새롭게 장만한 와플 기계로 크로플을 만들고 곱게 간 원두에 조심스럽게 내린 깊은 풍미의 커피를 또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작년에 남편이 공방에서 한 땀 한 땀 만들어 아직도 장식품으로 쓰이고 있는 원목 도마에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를 올려 누군가와 함께 즐기고 싶다. 


그 식탁에서 남편과 나는 미래를 이야기하며 설레었고,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행복했다. 곧 다가올 큰 아이의 생일에 우리는 또 어떤 친구를 초대할지 어떤 메뉴를 준비할지 이야기 나누며 또 행복감을 나누고 있다. 여전히 그대로인 그 식탁에서.




여성 독립매거진 2W 매거진 11호 <어떤 식탁>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aladin.kr/p/uPO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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