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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Apr 27. 2024

집안에 짐승이 살아요

2404261158

글이 쓰고 싶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노랑이 까망이 짐승 두 마리가 거실 양쪽 끝에 자리 잡고 식빵자세로 앉아 나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내겐 너무도 귀여운 반려묘지만 고양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깜짝 놀랄 만큼 큰 덩치에 기겁을 할 것이다. 문자 그대로 짐승일 테다. 얼마나 큰 지 알려주고 싶어 줄자를 가지고 왔다.


어느새 기지개를 펴며 길게 널브러져 있는 노랑이를 재보았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머리부터 윤기 찰랑한 매끄러운 꼬리까지 90cm. 생전 처음 보는 줄자가 신기해 가볍게 냥펀치를 날리며 자연스럽게 앉은 자세로 바꾸길래 앉은키도 재어보았다. 40cm. 노랑이보다 2달 어린 까망이도 비슷하다. 몸무게는 노랑이가 5.5kg, 까망인 5.2kg.


이 정도 정보면 충분하다 싶어 노트북이 있는 식탁으로 이동하려는데 노랑이가 줄자에 늘어진 긴 줄에 꽂혀 물고 늘어졌다. 웬만한 장난감은 반응도 안 하던 녀석이라 결국 한 시간을 놀아주고야 노트북 전원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와 사는 삶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딸이 첫눈에 반한 노랑이를 집에 데려오고 두 달 후 남편이 첫눈에 반한 까망이를 데려온 이후 우리 가족은 그전엔 알 수 없었던 가족의 끈끈한 연대감을 제대로 만끽하며 살고 있다. 우선 가족 카톡방이 생겼다. 시시때때로 노랑이 까망이 사진을 올리고 그 사진에 환호의 답글과 공감을 남기는 대화가 오고 간다. 고양이들만 집에 남겨두고 나오게 되면 카톡방에 밥은 몇 시에 주었고 간식은 몇 번 주었으며 화장실 청소는 했는데 물은 못 갈았다고 글을 올린다. 그러면 제일 먼저 집에 도착한 사람이 물부터 갈아 주는 게 불문율이 되었다.


남편, 나, 아들, 딸 집사 네 명의 고양이 공동육아를 위해 시작된 가족 카톡방은 이제 서로의 귀가시간을 알려주고 오늘의 저녁 메뉴를 추천하거나 기분 좋은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는, 마음을 열고 대화가 끊이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고양이 없이도 이 평범한 일상이 당연한 집들에겐 그게 뭐 대단한가 싶겠지만 적어도 내겐 매일매일이 비범하고 선물 같은 일상이다.



지난주 친정집에 일이 있어 남동생과 함께 고속버스를 탔었다.

나란히 앉아 가는데 비염이 심한 남동생이 자기보다 몇 배의 비염 약을 달고 사는 내게 물었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그렇게 심한데 그런데도 좋아?"

"응!"


수십 개의 생채기가 난 양쪽 팔목과 손등을 보고 동생이 또 물었다.

"이렇게 물고 할퀴는데 그런데도 좋아?"

"응!"  

   

노랑이 첼시, 까망이 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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