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난 여행

<산티아고 순례기> 프롤로그

by 박고래

“뭐가 문제니, 진은아?”


퇴사 전 대표님과의 마지막 면담을 남겨 두고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명확하게 떠올릴 수 없었다. 점심시간 카페에 앉아 퇴사 이유를 다이어리에 써내려 갔다. 철없는 선택이 아닌, 어른을 설득할 수 있는, 그러나 진정성 있는 말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그렇게 구구절절한 퇴사 이유를 몇 가지 문장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막상 대표님의 ‘뭐가 문제니?’라는 물음에, 내 입에서는 정리해둔 문장이 아닌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제가 문제예요, 회사가 아니라 제가요.”


그즈음 나는 내가 담당한 클라이언트의 신제품 출시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대표님이 직접 참여하시는 D브랜드를 담당하는 팀에도 배속된 상태였다. 입사 초반 결이 맞지 않는 사수와 일하며 손발을 맞추느라 고생했지만, 그 이후에는 좋은 팀을 만나 회사 생활에도 안착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퇴사를 하겠다는 나의 선언에 대한 반응으로 ‘뭐가 문제냐?’는 대표님의 물음은 합당했던 것 같다.


문제는 나였다. 하나의 큰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클라이언트와 대표님, 팀장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울컥 설움이 올라와 울음을 토해냈다. 뿌듯하고 기뻐야 하는 날, 왜 눈물이 나는지 나 스스로도 이유를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그날 이후 ‘이 일을 계속해도 될까?’라는, 마음속에 꼭꼭 감춰뒀었던 물음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PR은 차선의 선택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던 나는, 현실과 타협하며 ‘내가 가진 역량으로 잘 해낼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어떤 일이든 일단 주어지면 책임감 있게 맡은 일을 해 나갔지만, 한편으로는 ‘이 일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 ‘돈을 버는 것 외에 이 일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그날 나는 대표님께 이렇게 대답했다.


“대표님, 저 정말 일을 잘하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자꾸 두리번거려요. 다시 이 길로 돌아온다고 해도, 적어도 ‘제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시도를 한 번은 해봐야겠어요.”하고 말이다. 지금 나를 위해 한 템포 쉬며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보지 않는다면, 평생 겁내고 시도하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이 주홍글씨처럼 새겨질 것 같다고도 말했다.


짧은 침묵 뒤에 대표님이 고개를 끄덕이셨고, 알겠다며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조언을 덧붙여 주셨다. 그렇게 대표님과의 마지막 면담을 끝으로 나는 회사를 떠나왔다.


퇴사 후 무엇을 해야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이십 대부터 오래 품어온 ‘해외’와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합쳐, 혼자 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낯선 곳에서 나를 바라보며, 오래 해 보고 싶었던 일을 하다 보면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018년 2월 나는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지금부터 ‘나를 찾아 떠났던 산티아고 순례기’를 펼쳐보려 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사람들에게 받았던 질문, ‘그래서 너는 순례 후 무엇이 달라졌냐?’에 대한 대답을 이 글로 갈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약 800km를 걷는 동안 생겨난 길 위의 에피소드, 그리고 여행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여행의 교훈들이 당신에게도 가 닿아 좋은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책, <배움의 시간을 걷는다>의 일부입니다. 출간 전 사전 펀딩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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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이 글은 2018년 2월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었던 경험을 나누는 여행기입니다. 다시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특별하고도, 일상적이었던 여행의 기억을 공유합니다.


*참고 2) ‘카미노’는 순례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를 줄여서 부르는 말입니다. 순례길은 여러 루트를 가지지만, 목적지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어 성지로 추앙받게 된 스페인 갈리시아 주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빛나는 별 들판의 산티아고)입니다. >> 출처: 쉐어하우스, 산티아고 순례길의 모든 것, 슬로우뉴스, 2016.01.30, http://slownews.kr/50709

*참고 3)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실명 대신 이름을 변경해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