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1 Seoul ▶︎ Paris

by 박고래

이른 아침 파리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내 옆자리는 비었고, 그 옆 통로석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비행기가 활주로를 천천히 주행하는 동안 멍하니 창 밖을 응시했다. 퇴사 후 혼자 떠나는 여행인데, 설레지 않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인 이륙 후엔 전자책을 켰다. 펼쳐 든 것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라는 책으로 여행 중 읽을 책을 구매하기 위해 들른 서점에서 제목에 이끌려 선택한 것이었다. 한참동안 책을 읽어 내려가며 마음에 드는 문구에 밑줄을 그었다.


여행은 당신에게 적어도 세 가지의 유익함을 줄 것이다.

첫째는 세상에 대한 지식이고,

둘째는 집에 대한 애정이고,

셋째는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브하그완 S, 라즈니쉬



‘나는 이 여행에서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많은 것들을 경험하겠지.’


평소와 같이 책 속에서 내 마음을 보다 선명하게 확인해줄 문구를 만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책 읽기에 더욱 빠져들었다. 그제야 여행에 대한 설렘이 조금씩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시간의 비행이라 책을 읽다가 집중력이 떨어질 때면 창 밖을 구경했다. 흙빛의 황량한, 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커다란 산맥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곧이어 얼음으로 뒤덮여 눈이 시리게 하얀, 거대한 러시아 땅이 축소 모형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바위와 산맥, 꽁꽁 얼어붙은 땅의 메마른 풍경이 계속되는 가운데 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창 밖을 구경하며 지루한 비행시간을 채워 갔다.


그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통로석에 앉았던 여자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비행기 이륙 직후부터 안대를 끼고 목베개를 밴 체 자세를 조금씩 바꿔가며 잠을 청하던 분이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끝끝내 잠들지 못한 것 같았고, 대신 나와 수다를 떨기로 마음먹은 듯 보였다.


“혼자 여행 하시나 봐요.”


새로운 사람과의 대화를 거절하지 않는 성격의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하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흰 피부, 가냘픈 몸매에 새초롬한 표정을 짓는 그녀가 예민한 사람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꽤 친밀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소 수다스러웠다. 그녀는 조용하지만 활기 띤 목소리로 자신이 여행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앞으로의 여정이 어떻게 되는지, 한국에서의 삶은 어땠었는지 등에 대해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의 이름은 미정. 한국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일을 하는 프리랜서라고 했다.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펜팔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고 있고요. 물론 이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6년쯤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많은 외국인 친구가 생겼어요.”


내가 흥미를 보이자 미정은 곧 자신이 어떻게 외국의 여러 친구들과 오랜 시간 동안 펜팔을 할 수 있었는지, 세상에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지, 그리고 그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 친구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세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녀의 앞 좌석에 앉은 외국인이 종종 뱉어내는 ‘흠’ 소리가 우리의 긴 수다에 대한 그의 불평이라는 것을 알아챘음에도, 나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그녀는 수다가 고픈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긴 비행 중이었으니 말이다.


책, <배움의 시간을 걷는다>의 일부입니다. 출간 전 사전 펀딩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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